소설/용사한테는 이길 수 없다

제5장 용사한테는 이길 수 없다(完)

창고0 2020. 3. 26. 20:06

키미시마 씨는 결석한 것 같습니다.”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1학년 A반에서 나온 카츠아키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와 겐지한테 그렇게 알렸다.


결석?”


. 학교에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글쎄요, 거기까진. 반친구도 모르는 것 같아서.”


카츠아키의 표정도 목소리도 얼빠진 기색이 강하다.

나도 같은 기분이다.


어떻게 할까요?”


어쩌고 자시고, 없는데 뭘 어떻게 할거야.”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말하고, 셋이서 2학년 교실이 있는 3층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계단에 당도했을 때 나는 한 번 혀를 찼다. 그러니 그것을 들은 것인지 카츠아키가 말했다.


키미시마 씨는 용사하고 칸다 씨가 다른 사람이라고 이해했잖아요?

그러면 이제 괜찮습니다. 저희들이 제대로 확인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하지만 말야. 바보 여자는 다시 만나러 온다고 말했잖아. 그건 아직 용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겐지의 말에 카츠아키는 조용해졌다.

그렇다, 나는 그것이 신경쓰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키미시마한테 제대로 말할 생각이었다.

어째서 칸다가 예전 세계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 것인가, 기억을 부활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우리들이 누구인지를.

물론 위험이 있겠지만 그것은 각오한 바고 그리고 칸다한테 모른다고 들은 지금 상태라면

이전하고 다르게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예감도 있었다.


카스미 양은 어때?”


키미시마에 대해 꽤 신경쓰고 있었어. 심한 말을 했으니 사과하고 싶다고.”


겐지가 이런이런이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변함없이 호인이구만. 나는 전격마법 맞은 거, 아직도 열받는데.”


나도 사과하고 싶으니까 키미시마를 만나고 싶어,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고 막무가내가 된 칸다를 일단 우리들이 상태를 보러가겠다고 설득하는 건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역에서 학교까지 걸리는 등교시간을 거의 전부를 그것에 썼을 정도다.


어쨌든 내일이다. 내일 또 가자.”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에서 둘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다음날 같은 시간에 키미시마의 교실로 간 우리들 3명이 들은 것은, 오늘도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더 그 다음 날도 키미시마가 학교에 오는 일은 없었다.

 


1교시가 끝났다는 걸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교과서하고 노트를 책상 안으로 빠르게 넣었다. 일어서려고 하니 옆자리의 칸다가 물어봤다.


오늘도 키미시마의 교실에?”


, 가보려고.”


그래. 오늘은 키미시마가 와있으면 좋을텐데…….”


칸다의 걱정하는 듯한 표정은 겉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음 속으로부터 키미시마를 염려하고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혹시 내가 심한 말을 해서 쉬고 있는 걸까하고 울 것같은 얼굴로 말할 정도였다.

나도 키미시마가 학교에 오지 않아 초조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칸다같이 키미시마에 대한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그 애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내일이면 이제 실버위크가 시작된다.

칸다는 연휴를 집에서 보낸다고 한다. 가족끼리 시베리아라도 여행가주면 고맙겠지만 아버지가 계속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눈이 닿지 않는 날이 당분간 계속되는 것이다. 마나가 있다곤 해도 온종일 찰싹 붙어 있는 건 아닐 터.

게다가 마나가 키미시마가 용사의 약혼자였던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버리는 전개가 되면 역시 위험하다.

마나는 마나대로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오늘 내로 결막을 지어야한다.


키타세, 잠깐 와봐.”


교실을 나오려고 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창가에서 손짓으로 부르고 있던 것은 신문부 부장, 코마바 쿄헤이였다.


무슨 일이야?”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됐으니까 일로 와봐, 시간 뺏지 않을테니.”


무시하고 가고 싶지만,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무시해도 쫓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할 이야기를 빨리 마치는 편이 좋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창가로 향했다.


뭐야, 할 얘기라는 건?”


코마바는 아무말 없이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나하고 칸다가 찍혀있었다.

장소가 어딘지 모르지만 바깥에서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런 사진이었다.

도촬은 범죄라는 거 모르냐하고 화내고 싶었지만, 문득 기묘하게 생각되었다.

사진이 딱히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래의 꿈이 파파라치라고 공언하는 걸 꺼리지 않은 이 남자가 찍은 사진 한 장 치고는 선정성이 부족하다.


꽤나 침착하잖아, 좀 더 초조해하는 걸 기대했는데.”


침착하지 않은 상태야, 멋대로 사진이 찍혀서 열받아. 하지만 이걸 보고 초조해하면 되는거였나, 내가? ?”


어제 등교중의 사진이야, 그거.”


그건 깜짝 놀랐지만, 네가 닌자같이 그늘에 숨어서 셔터를 내린다는 건 모두 알고 있어.

이제와서 초조해할 녀석 따윈 없다고.”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너 이런 것에는 당당한 타입이냐?”


?”


그러니까 등하교에 같이 하고, 학교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

수상한 관계가 아닌가하고 의심하는게 당연하잖아?”


드디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았다. 그리고 떠올려 버렸다.

그 날 돌아가는 길 미소를 보여준 칸다를 일순간이지만, 정말로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을.

나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런 게 아냐, 나하고 칸다는 그냥 친구야.”


그런 것치고는 꽤나 즐거운 듯이 있었잖아.”


친구하고 즐겁게 대화하는게 뭐가 나빠.”


토라지지마. 점점 수상하게 보인다고.”


맘대로 해라. 그래서, 용건이 뭐야?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만이라면 이제 갈거야.”


기다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야. 학년굴지의 우등생이 전학생을 불과 반개월만에 스피드하게 공략, 그 비결은.

다음 교내신문, 그런 느낌의 기사를 넣으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일단 너의 인터뷰를 받으려고.

노코멘트라면 이쪽에서 적당히 쓸거지만, 어쩔거야.”


…….정말로 그런 기사를 만들어낸다면 고소해서 법원으로 데려가겠어. 변호사 준비하라고.”


옐로 저널리스트의 망언에 이 이상 어울릴 생각은 없다.

나는 분연하게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 얼굴이 굳어졌다.

책상이 하나, 비어있다.

내 자리 옆의 책상이.


, 이봐. 코마바, 칸다는 어디로 갔어?”


생각보다 훨씬 놀란 목소리로 물으면, 코마바가 태연하게 답했다.


아까 요시카와와 오카지마하고 같이 교실에서 나갔어.”


뭐라고?”


그 둘도 신경쓰인 거 아냐, 너하고 칸다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달려나갔다.

복도에 뛰어 나오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있다.

쉬는 시간, 복도에 나와있는 몇 명의 학생들이 벽을 만들고 있어서 언뜻 보인다.

먼 저편, 2-D반 앞 근처에 있는 칸다의 모습이.

누군가가 같이 있다. 양편에 있는 것은 코마바가 말한 대로,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일 것이다.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표정이 된 듯하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은 책망하지도 않고 길을 열어주었다.

표정까지 보이는 거리가 되었을 때, 칸다 일행하고 마주보고 있던 인물의 눈이 나를 인식했다.

입근처가 조금 움직인 후 시선을 되돌렸다.

그 인물은 한번 머리를 숙인 후 뒤를 향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떠난 뒤였다.


, 칸다!”


숨이 끊어질 듯한 나와 대조적으로 칸다는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키타세군. 오늘 말야, 키미시마가 왔어.”


알고 있어! 그래서, 뭐하러 온거야, 저 애?”


그게 말야, 지금까지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고 일부러 말하려고 와줬어.”


지금까지 죄송합니다? , 다른 건 뭔가 말하지 않았어?”


다른 것? 그게 그러니까, 감기에 걸려서 학교를 쉬는 바람에 사과하러 오는 것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어.

……, 이것도 죄송합니다.”


또 의미 모를 소리를 하진 않았어?”


아니, 그러지 않았어. 키미시마, 오늘은 대단히 침작했으니까.”


정말로? 정말로 사과한 것쁜?”


여기서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가 끼어들었다.


정말이야. 1학년, 오직 칸다한테 사과만 했어. 엄청 진지한 얼굴로.”


맞아 맞아. 사과하는 한중간에도 계속 칸다의 눈을 보고 있었어. 사실은 뭔가 째려보는게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1학년 뭐야? 왜 칸다한테 사과하는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 장소로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키미시마한테 직접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물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계단에서도, 1학년 교실이 줄지어 있는 2층 복도에서도 따라잡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키미시마의 반까지 오고 말았다.

나는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마침 교실 출입구에서 수다 떨고 있는 남학생 2명한테 키미시마한테 할 말이 있으니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키미시마요? 요새 며칠 간 계속 쉬고 있어요. 오늘도 오지 않았습니다. ? 그럴 리가 없다고요?

아니, 그렇게 말하셔도……. 저기가 키미시마의 자리입니다만, 아무도 앉지 않았고 가방이나 교과서라든가 아무 것도 없잖아요.

쉬고 있어서 그래요.”

 

내 방 책상에서 공부하던 나는 손을 멈추고 볼펜을 노트 위에 냅다 던졌다.

책상 앞에 앉은지 아직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3번째의 중단.

잡념으로 가득차서 공부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키미시마 탓이다. 키미시마가 혼자한테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인지, 신경쓰인다. 너무나도 신경쓰인다.

한마디 사과하기 위해서 감기에 걸렸는데도 무리하게 학교에 등교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칸다한테 끈질기게 물어보아도, 키미시마는 정말로 사과만 했다고 한다.

거짓말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다. 요시카와와 오카지마의 증언도 같다.


그렇다면 역시 키미시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칸다가 말한 대로, 폐를 끼친 것에 대한 걸 대단히 신경쓰고 있었던 것인가.

다음에는 제대로 된 형식으로 만난다, 그 말은 침착한 상태에서 사과하고 싶다, 라는 것 뿐인가.

아니 하지만 그럴 수 있나? 우리들은 방심시키기 위해 연극한 거 아닐까…….

나는 숨을 내쉬고는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결국, 제자리 걸음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정적으로 확답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사고는 같은 길을 더듬을 뿐.

볼펜을 줍고 손가락 위에서 빙빙 돌려봐도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려고 했다. 노트에 영문을 적었다.

하지만 흰 잔줄의 긁힌 자국이 쓰여져서 문자가 써지지 않았다. 때맞춰 잉크가 떨어진 것 같다.


이런 때에 불길한데…….”


미신같은 걸 믿는 건 아니지만 왠지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부터 쭉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한층 더 심해졌다.

두근거림은 눈 깜작할 사이에 크게 되어 안쪽에서부터 가슴을 압박하고 있다.

나는 큰 맘 먹고 칸다한테 전화해보기로 했다.

자택에서 마나한테 지켜지고 있는 칸다의 무사한 목소리를 들으면 일단 진정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휴대폰에 등록된 칸다의 번호에 전화를 건다.

무기질같은 다이얼 소리가 10, 11, 12…….

15번이 되어도, 칸다가 받는 일을 없었다.


왜 받지 않는거야…….”


방안에서 무의미하게 서성거리면서 혼잣말을 했을 때, 다이얼이 부재중 자동응답의 안내로 바뀌었다.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내 마음을 지배한 것은 이제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TV를 보느라 착신을 눈치 못챘을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중이라서 착신음을 끈 상태다.

단순히 나와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이유같은 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두근거림은 나쁜 예감으로 불리는 것으로 변화했다.


좋아, 정했어.”


칸다의 집까지 가보자. 이대로라면 공부는커녕 자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은 벌써 오후 9시를 지나고 있다.

보통이라면 이런 시간에 방문하는 것은 비상식이겠지만, 나라면 칸다를 집 밖에서도 느낄 수 있다.

칸다가 마나하고 같이 있다는 것만 안다면 안심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셔츠만 갈아입으려고 휴대 전화를 침대 위에 던졌다.

침대 매트에 떨어진 순간, 착신음이 울려 퍼졌다.

낚아채는 듯이 잡으니, 디스플레이에 칸다 카스미라는 문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착신이 온 것을 눈치채고, 회답해 온 것인가.

나는 고작 전화를 못받았던 것 가지고 허둥지둥하던 삽시간 전까지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이래도 반응이 없다.

실수로 끊어버린 건가하고 디스플레이를 다시 봤지만, 제대로 통화중이라고 되어 있었다. 전파도 좋은 상태다.

다시 한 번 더 부르려고 휴대전화에 귀에 갖다대고 입을 열려고 했다.


…….”


드디어 들려온 칸다의 목소리는 작고 갈라져 있었다.


여보세요. 그쪽 전파가 안좋아? 잘 안들리는데.”


키타세 군


, 제대로 들리게 됬어.”


몸이……와줘…….”


여보세요. 왜 그래?”


도와줘, 키타세군!”


갑작스런 절규에 내 고막이 크게 떨렸다.


도와달라니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지 않게 큰 소리로 불러봐도 그 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불러봤지만, 이윽고 통화가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나는 귀에서 휴대 전화를 떼고 망연하게 디스플레이를 내려다 보았다.

나쁜 예감은 아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집 현관에서 나와 밤하늘 아래로 뛰어나온 나한테 기다리는 시간은 그다지 필요 없었다.

달려오는 사복을 입은 겐지와 카츠아키가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테츠지로군! 칸다 씨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니,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아직 몰라. 뭔가 일어난 것 같지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몰라.”


물어보는 카츠아키한테 대답하고, 나는 칸다하고 했던 짧은 전화통화 내용을 두 사람한테 설명했다.

가로등이 밝히는 두 사람의 안색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 분명히 뭔가 있었구만……. 역시 키미시마와 얽힌 일인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겠죠. 키미시마 씨가 집에 와서까지 했을 지도.”


카츠아키가 입술을 깨물었다. 실의가 역력히 보이고 있다.


바보 여자가 사과하는 것만으로 끝난 게 아니였어. 카스미양한테 뭔가 한 것이 틀림없어.

빌어먹을, 오늘은 눈을 떼는 게 아니었어. 우리들이 카스미양 집에서 묵고 갈 정도로 했어야 했는데!”


떠들어대는, 겐지는 분한 듯이 주먹과 주먹을 맞부딪쳤다.

카츠아키도 동의했다. 그리고 나를 문득 보았다.

마나씨는, 마왕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키미시마 씨가 칸다 씨한테 뭔가 하려고 했어도 마나씨가 같이 있었을 텐데요.”


그것도 모르겠어. 어째서 마왕님이 키미시마를 막지 못했는지…….”


설마, 키미시마 씨한테 당한 걸까요? 저희들을 기절시킨 것 같이…….”


그거야 말로 있을 수 없겠지! 바보 여자 따위가 마왕님을 어떻게 한다니 있을 수 없지.

죽창으로 폭격기를 떨어트리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그렇다면 마왕님이 어떻게 된 것인지, 겐지군은 알고 있습니까?”


반론은 했지만, 그 대답은 준비되지 않아서 그런지, 겐지는 말이 막혔다.


여기서 생각해도 아무 소용없어. 칸다의 집으로 가보자

 칸다가 마왕님이 그렇지 않으면 키미시마가, 누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찬성입니다. 넓은 길로 가면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학생의 분수로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죠.”


우리들은 밤의 집들의 틈을 누비는 것처럼 달리면서 넓은 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3명이서 뒷자석에 앉아 운전수한테 목적지를 전했다.


서두르고 있어서, 가능한 빠르게 부탁합니다.”


돌아온 것은 예예하는 마음 없는 대답이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차 안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칸다의 집까지 15분정도 걸릴까.

말이 없는 차 안에서 기분만이 조급해진다.

아직 불이 켜진 상점이 줄지어 서있는 길에 접어들었을 때, 택시의 속도가 떨어졌다.


앞쪽 창문에 빨간 신호가 켜져 있었다. 겐지가 화내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다리를 재차 꼬았다.

무릎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사이에 신호의 색이 변하고, 기사가 액셀을 다시 밟았다.

엔진이 회전하는 소리에 또 하나의 소리가 겹쳤다. 내 휴대전화의 착신음이었다.

바지에서 꺼내고보니 디스플레이에 표시되어있는 이름은 현재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나는 귀에 대는 것보다도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 칸다


언니가 없어졌어!”


그 소리는 칸다가 아니었다.


, 마왕, 아니, 마나씨?”


마나의 이름이 나오자, 겐지하고 카츠아키도 잽싸게 이쪽을 주목했다.

그래, 마나야! 저기 언니가 어디에도 없어! 어떻게 된거야!?

설마 너희들 언니한테 무언가 한 거


, 진정해 주세요, 저희들이 무언가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진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언니가 없어졌다고!?”


없다니, 무슨 일입니까? 마나씨는 자택에 있는 거죠?

그쪽에서 뭐가 일어났는지 알려주세요.”


목욕하고 나오니까 언니가 없어졌어. 휴대전화만 거실에 떨어져있고 그래서 당신한테 전화했어…….

어떻게 된거야, 뭐가 일어난거야?”


전화 넘어서도 상당히 혼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가능한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뭐가 일어난 건지는 저도 알고 싶습니다.

지금 택시로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겐지하고 카츠키도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칸다한테 걸려온 전화에 대한 것을 전했다.


도와달라니역시 뭔가 있었잖아! 저기말야 뭔가 있던 거야?”


잘 모르니까 가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칸다는 정말로 어디에도 없는 겁니까?”


, , 내가 목욕하는 사이에 어딘가로 가버린 것 같아서


어딘가라니 가족중 다른 사람도 모르는 겁니까?”


아버지는 잔업이고 어머니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셔서 나하고 언니밖에 없었어!”


“목욕하고 계셨다고 하셨죠? 어느정도 있었습니까?”


, 삼십분 정도…….”


그렇게나!? 그럼 그 사이 계속 칸다를 혼자 둔 겁니까?”


어쩔 수 없잖아. 여자애의 목욕은 급하게 해도 그 정도 걸린다고!”


자매니까 같이 들어가면 좋았을 텐데요…….”


권했는데 거절당했어!”


나는 비어있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언젠가 칸다로부터 눈을 떼버리는 때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때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악의 사태를 불러온 것 같다.


이거 말야 역시 전에 말한 예전 세계 관계자의 짓이야? 그 녀석이 유괴라던가 한거지?”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에 숨어들어 언니를 데려간다니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거야? 문단속은 제대로 해두었는데!”


나는 판단하기를 망설였다. 키미시마의 내력을 전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 건지를.

그 답이 나오기 전에 마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설마 너희들,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어?”


, 무언가라는 건?”


그걸 묻고 있는 거야. 비밀 사항이 있다면, 말해봐.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


최후의 부분만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박력이 들어간 목소리였다나는 온 몸의 털이 한번에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겐지하고 카츠아키한테 시선을 보냈다. 어느새 두 사람도 외면하고 있었다.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짐작이 간 듯하다. 책임을 나한테 떠넘길 생각이 가득하다.


……늦었으면 좋겠어?”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나의 입으로부터 키미시마가 어떤 사람이고, 이제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말을 끝내고 나서, 잠시동안의 침묵.

살아있는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과연 그 여자인가. 마법사였던 그 여자가…….”


투덜거리는 듯한 말에, 수화구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분노가 포함되어 있다.


보고를 소홀히 한 패널티는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키미시마라는 여자가 언니한테 무엇을 했는지 알았어. ……매료마법이야.”


앗이라고 하는 소리가, 내 입으로부터 새었다.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오늘 학교에서 사과하러 온 그 때.

키미시마는 진지한 눈빛으로 칸다의 눈동자를 계속 쳐다보았다고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가 말했었다.

그 때에 마법을 건 것이다. 상대의 신체의 자유를 빼앗고 걸린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매료마법을.

전화로 몸이……라고 말한 부분도 납득이 간다.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최후에 남은 의사를 최대한 쥐어짜서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아마, 혼자가 되었을 때 발동하도록 장치해뒀을 거라고 생각해…….

언니를 장난감같이 다루다니 그 여자 용서 못해…….”


조용한 분노라는 표현으로는 전혀 부족할 정도로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마법이 걸려있다면 마력의 자취가 남아있을 거야.

이제부터 그것을 찾을 테니까, 너희들은 그대로 이쪽으로 와.

서둘러. 그 여자가 뭘 할 생각인지, 나는 알았으니까.”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어땠어, 마왕님.

바보 여자에 대해서 다물고 있던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어?”


화냈어. 패널티가 있을 거라고.”


너한테?”


우리들한테. 거디다가, 그대로 집으로 오라했어.”


그런가. ……어쩔거야? 갈거야? 아니면 야반도주로 바꿀까?”


도망칠 근성이 있으면 도망쳐도 돼.”


아니, 나도 갈게. 확고한 신념을 지킬 근성이 없으니까.”


핏기를 잃은 카츠아키의 엄마…….’라는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운전석을 향해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속도를 올려주세요.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것 같아요.”



 

목적지에 도착하고, 우리들은 택시를 그 자리에서 기다리게 하고 칸다가의 부지를 넘어갔다.

벨을 눌러봐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문을 열려고 해보니 잠겨있지 않았다.

부모님은 없는 것 같고 멋대로 들어오라는 것일까하고 해석하며 우리들은 현관에 올랐다.

며칠 전에 막 방문한 거실에 들어가니 밖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이 마나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분위기는 아니다. 종이가 활짝 펼쳐져 있는 타원형의 테이블 앞에 앉아 무엇인가 명상을 하고 있었다.


말을 거는 것이 망설여져서 아무 말 없이 가까이 가보니, 종이의 정체가 뭔지 알았다.

축척이 상당히 큰 이 거리의 지도였다.

갑자기, 마나의 손가락이 지도의 위에 놓여졌다. 손가락 끝이 움직이다가 멈추고 또 이동하기를 몇 번인가 반복되었다.

이윽고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후에 움직이지 않았다.

마나의 눈이 부릅 떠지더니,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야. 언니는 여기에 있어.”


우리들은 테이블 위를 들여다보았다.

마나의 손가락이 놓여있는 장소 그 옆에 쓰인 문자는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는


스이쇼 고등학교. 언니하고 너희들이 다니는 학교네.”


여기에 칸다가 있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그 여자도.”


학교같은 곳에 데려가서, 키미시마는 뭘 할 생각일까요?”


마나는 손가락을 지도에서 떼고 우리들을 쳐다봤다.


말했었지, 언니는 언니.

하지만 내가 봉인한 용사의 기억도 아직 존재하고 있다고.”


, .”


키미시마라는 여자는 그것을 되살리려고 있어. 혼을 동요시켜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봉인을 푸는 것으로.

너희들이 한 이야기와 언니가 있는 장소를 보고 판단하면 그것 밖에 없어.”


단정적인 어조의 추론에 입을 벌리고 있을 때, 겐지가 말했다.


, 바보 여자는 마법사이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그러려면 상당히 대규모 마법이 되겠네요.

근데 바보 여자는 그 정도까지 힘을 남겨두지 않았을 텐데요?”


보통이라면 못하겠지. 하지만 언니하고 키미시마가 있는 곳을 생각해봐.

게다가 키미시마는 잠시동안 학교에 오지 않았다며?”


겐지가 문득 뭔가를 눈치챈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런가, 대규모 마법이라도……못할 것은 없었나! 학교에 간 것도, 확실히 거기라면 공간은 충분해.”


겐지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나한테는 뭐라고 감이 잡히는 것이 없다.

거인이라는 마력이 낮은 종족이었던 나는, 마법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없다.


마법진, 입니까.”


턱에 손을 댄 카츠아키가 불쑥 말했다. 그걸로 나도 가까스로 알았다.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담아 그리는 마법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효과는 마법사 개인이 영창하는 마법을 크게 상회한다.

발동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문양에 따라 가지가지지만, 걸려 있는 봉인을 해제하는 마법진도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줘. 마법진하고 키미시마가 학교를 쉰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쉬고 있는 사이에 열심히 마법진을 그렸다는 거야. 3일이나 있으면 그럭저럭 복잡한 것도 그릴 수 있겠지.”


그린다니, 오늘 우리 학교에 있었잖아. 쉬고 있을 텐데 학교의 어디서, 어떻게 그려?”


그런 거야, 집에서 수많은 종이에 그려놓고, 나중에 연결하면 돼.”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지식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 세계와 다르게 종이의 질이 월등히 좋으니까


겐지의 설명을 카츠아키가 보충한다.


마법진은 굉장히 큰 크기가 되겠지만, 학교라면 장소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시간이라면 방해받지도 않죠. 안성맞춤입니다.”


, 그럼, 설마, 칸다는 벌써…….?”


아뇨, 마법진을 발동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아직 무사하겠죠.”


나는 휴우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만, 여유만만이라는 것도 아니야. 빨리 학교로 가자.

우리들 세명이서 카스미양을 구해내자고!”


그렇습니다. 갑시다, 저희들 3명이서. 마나 씨는 여기서 좋은 소식을 기다려 주세요.”


분주하게 발길을 돌리는 겐지하고 카츠아키. 나도 영향을 받아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기다려!”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우리들은 어깨를 떨며 움직임을 멈춘다.


뭘 멋대로 가려는 거야. 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택시를 대기시켰어도 여기서 학교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드니까요.”


서둘러야 되니 기다리라는 거야! 내 힘을 사용하면 빠르잖아.”


그럴 수는, 키미시마따위에 마왕님이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는 우리들한테 맡겨주십시오.”


? 그러니까 너희들한테 맡긴다니까. 뭘 위해서 너희들은 집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는거야.”


당연히 마나가 억지로라도 같이 온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당황해서 다른 두 사람과 얼굴을 맞댔다.


스이쇼 고등학교에서 너희들 3명 공통으로 애착이 강한 장소라고 있어?”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됐으니까 알려줘.”


어 그게, 시낭송부의 부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그것이 무슨?”


영문을 모르는 채로 대답하니, 마나는 테이블 앞에서 일어섰다.


너희들을 전이마법으로 그쪽으로 보낼 거야. 그쪽이 택시보다 훨씬 빠르잖아.”


전이마법이라니, 그거 최상급마법의 하나 아닙니까. 아직도 쓸 수 있는 겁니까?”


쓸 수 있어. 자신한테는 못쓰고 남한테만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말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먼저 가있어.”


그렇게 말한 마나는 양팔을 최대한 옆으로 펼쳤다오라는 것인가. 우리들은 당연히 망설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이쪽으로 와.”


재촉하는 마나한테 카츠아키가 거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기……괜찮은 겁니까? 이 마법, 최근에 사용했었나요?”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게 어떻다는 거야?”


실패하면 이차원으로 보내졌었죠, 전이마법이란 게. 택시로 가는 편이 안전한 게 아닌지…….”


……지옥으로 보내줘도 될 것 같은데. 그 쪽이 더 좋아?”


거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들은 단념하고 마나의 앞으로 나섰다.


아까 말한 장소를 머리 속에 떠올려. 그리고 그곳을 가고 싶다고 강하게 빌어봐.”


나는 눈을 감고, 매일 갔던 시낭송부 부실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린다.

거기에는 겐지가 있고, 카츠아키가 있고, 거기다 칸다가 있었다.


그럼, 갈게. 나도 바로 그 쪽으로 가겠지만, 제때 도착할지 어떤지 몰라.

그러니까 너희들만이 희망이야……언니, 부탁해. 반드시 구해줘.”


기특한 말은 마왕으로서 한 것이 아닌 칸다 카스미의 여동생으로서 한 것이리라.

그러니까 나도 마왕님의 부하가 아닌 칸다의 친구로서 대답했다.


언니에 대한 것은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들이 반드시 어떻게든 할테니까.”


언니를 좋아하는 이 여동생을 위해서도 키미시마를 저지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결의했다.


그리고그 여자를 혼내 주는 것까진 용서하지만, 죽이면 안돼.

다 죽어가도 좋으니까 살려둬. 언니를 가지고 논 것을 내가 직접 후회하게 해줘야 하니까.

태어난 것을 저주할 정도로 말야.”


농담도 참.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눈을 열었다.

거기에 마나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눈을 떴는데도 시야는 거의 어두웠다.


……전이한 것 같군요. 두 분 다 무사하죠?”


바로 옆에서 들리는 카츠아키의 목소리.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디스플레이 화면을 밝게 만들었다. 그 밝은 화면을 전등 대신으로 사용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었구만. 실패할 확률은 어느정도였을지.”


소량의 빛 속에서 겐지의 등이 움직였다. 그 팔이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형광등에 빛이 쏟아졌다.

눈에 비치는 것은 그저 몇초전에 있던 칸다의 집 거실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지금 있는 곳은 스이쇼 고등학교 시낭송부 부실이었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느껴진다. 피부를 찌르고 머리를 흔들게 하는 그 파동을. 나는 바닥에 시선을 내렸다.


아래쪽이네. 아마 1층일거야.”


마법진을 칠만큼 넓은 곳일 겁니다. 그렇다면 체육관이겠군요.”


나는 부실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등 뒤에서 겐지가 질문했다.


마왕님, 마지막에 엄청난 걸 말했는데, 들었어? 그거 진심이라고 생각하냐?”


겐지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8:2로 진심이라고 보고 있어.”


칸다의 집에서 여기까지 택시로 15분에서 20분정도 걸려.

마왕님이 도착하기 전에 우리들만으로 끽소리도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해버리고.

그 다음에 키미시마를 어딘가로 숨기자. 모습만 보이지 않게 하면 조금은 분노도 가라앉겠지…….”


그것은 10:0의 희망사항이었다.

 부실에서 뛰쳐나온 우리들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일직선으로 달렸다.

천장의 형광등이 켜져있지는 않았지만, 창문에서 달빛과 거리의 빛이 들어와 칠흑 같은 어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교내의 인상이 해가 떠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밤에 보는 학교는 무섭구만. 어둡고 아무도 없고 조용하고. 유령이라든지 나올 것 같아.”


밑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할 때에 제일 뒤에 있던 겐지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네 군단에 사령병사라던가 있었잖아. 새삼스럽게 유령이 무섭다니.”


그게 그 쪽 세계에서는 영은 평범하게 있었잖아. 우리들도 원념이 될 정도로. 하지만 이 세계에는 그런 거 없잖아.


없다면 왜 무서워 하는거야.”


없어야 될 것이 있으니까 무서운 거 아냐! 안돼, 말로 하니까 정말로 무서워졌어.

제일 뒤는 싫어, 뒤에 아무도 없는 건 위험해. 카츠아키, 나 한가운데가 좋아. 자리를 바꿔줘.”


바보같은 대화를 하고 있던 동안, 현관 앞 홀에 도착했다.

당연하지만 유리로 된 출입구는 전부 잠겨있었고 현관은 조용했다.

등교 시간과 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넘치는 곳과 같은 장소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좌측, 즉 체육관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쳐다봤다.

빛의 파동의 기색은 역시 그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체육관에 칸다가 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하다.

우리들은 현관 앞 홀을 가로지르려고 발을 내딛으려 했다.


기다려, 뭔가 있어! 저기야, 신발장 옆! 유령인가!”


나는 겐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냥 어두운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안들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누가 있었어? 설마 키미시마가


안돼, 발견됐어! , 이쪽으로 가자!”


초초한 겐지의 목소리에 나는 더욱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어둠에 붉게 빛나는 점 2개가 떠올랐다.


, 뭐야?”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서 있으니, 기분 나쁜 빛은 소리도 없이 접근해왔다.

그림자가 움직인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볼에 충격이 왔다. 비틀거리며 바닥에 한 손을 짚었다.


뭔가 때렸어!”


카츠아키의 몸이 뒤틀리는 것이 보였다. 나처럼 그림자한테 습격당한 것 같다.


젠장할, 뭐야 대체


나는 자세를 다시 취하면서 계단의 끝까지 물러섰다.


역시 유령이었어!”


유령이 때리겠냐!”


나는 어느새 계단의 층계참까지 도망친 겐지를 야단쳐서 돌아오게하고, 2개의 붉은 빛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어둠에 한층 더 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어렴풋이 사람의 윤곽을 이루고 있었고, 카츠아키의 팔을 비틀어올리고 있었다.


유령이 아니잖아! 경비 마법이잖아, 이 녀석!”


접근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배제하는, 어둠에 녹아들 것 같은 새까만 인간 형태의 경비를 만들어내는 마법.

그것이 설치되어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설치한 것인가? 물론 키미시마 밖에 없다.

카츠아키가 겨우 그림자를 떨쳐내고, 우리들이 있는 곳까지 퇴각해왔다.


“경비 마법이라면 거리를 벌리면 안전할 텐데요…….”


카츠아키의 추측이 옮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붉은 빛은 멀어져 갔다.

하지만 정지한 그 위치가 문제였다. 현관홀의 한복판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그대로 통과하는 건 무리일 것 같네.”


쓰러트리고 가죠. 3명이나 있으면 낙승입니다.”


평소에는 없는 카츠아키의 강세에는 근거가 있다. 이 경비의 공격은 아까 전같이 때리거나, 붙잡거나하는 원시적인 수단뿐.

소멸하게 하는 방법은 몸통 부분을 지면에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엄청 약한 것이다.

그래서 예전 세계에서 진심으로 경비로 사용하려는 마법사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의 용병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겉모습의 임팩트만은 대단했다.

그림자를 압축하여 사람으로 만든 듯한 외형과 어둠에 떠오르는 붉은 빛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나쁘다.

경비 마법을 모르는 자라면 그야말로 유령같은 걸로 생각할 것이다.

이를 설치한 키미시마는 만약 현관에서 누군가 오는 경우 깜작 놀라게하고 해산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저는 왼쪽에서 덤벼들겠습니다. 테츠지로군은 오른쪽.

겐지군은 저희들이 밀어 넘어트린 다음, 신체 위에 올라가 주세요 그걸로 사라질 겁니다.”


카츠아키의 속삭이는 소리는 경비한테 들리지 않는다.

청각이 없는 붉은 눈동자는 앞에 비치는 것에만 반응한다. 이런 점도 쓸모없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들은 계단에서 슬슬 떨어져나왔다. 붉은 빛이 번쩍이며 밝기가 증가한 느낌이 들었다.

이쪽이 접근하는 걸 눈치챈 것이다.


지금입니다!”


나는 움직임을 단번에 가속했다. 바닥을 차고, 오른쪽에서 경비한테 달려들었다.

뻗었던 팔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 경비의 주먹이 앞가슴에 부딪치는 것은 동시였다.

폐가 압박되어 숨이 막힌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한심하게 엉덩방아를 찢고 있었다.


이런


카츠아키도 같은 꼴이었다경비한테 팔하나로 되돌려져서 장신이 바닥에 구르고 있다.


이봐, 강하잖아!

간단하게 밀어 넘어트릴 터인데 결과는 정반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가.

경비가 약하다고 해도 그것은 무장하고 뚫으려고하는 녀석이 상대할 때 이야기.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 상대라면 충분히 강하다.

예전의 우리들이라면 한번 노려본 것만으로 지울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약하다는 지식만 있고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잘 몰랐던 것이 화였다.


잠깐 너희들 어떻게 된거야!”


우리들이 간단히 쓰러지는 것을 보고 겐지는 당황하여 브레이크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벌써 경비한테 감지되어있다.


, 기다려! 오지마, 오지마아!”


한심하게 애원하지만, 마음이 없는 마법 물체에 그런 게 통할 리가 없다.


나는 겐지의 작은 신체가 내던져지는 광경을 순간 머리 속에 그렸다.

하지만, 의외의 현상이 일어났다. 경비가 겐지를 손대는 일 없이 뚝 정지한 것이다.


, 뭐야…….? 어떻게 된거야, 이 녀석?”


겐지도 뭐가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다.

곤혹해하는 겐지를 앞에 두고 경비는 전의를 잃은 것처럼 축하고 팔을 내렸다.

그것을 보고 얼음이 녹듯 의문이 풀렸다.


그런건가 이 녀석, 겐지의 명령에는 거역할 수 없어!”


마계의 대공작은 온갖 악마를 거느린다.

마법으로 만들어난 경비, 즉 마법사의 사역마도 카테고리에서는 악마의 부류로 들어있는 것이다.


과연! 그러면 겐지군, 그 녀석은 맡기겠습니다. 이 장소에 멈춰 세워주세요!”


?”


부탁했어, 우리들은 먼저 갈테니까!”


나하고 카츠아키는 일어서서, 조금 전까지 경비가 있던 장소를 단숨에 달려서 빠져나왔다.


, 나하고 이 녀석. 둘이서만 여기에 있으라는 거야? 안돼, 무섭다고! 잠깐 기다려줘, 나도 같이

아아, 움직이지마!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기다려, 기다렷!”


부르짖는 겐지를 놔두고 나하고 카츠아키는 그저 계속 달렸다.

양호실, 진로상담실 따위의 앞을 달려갔다.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아직 괜찮겠지.”


체육관에서 느껴지는 빛의 파동은 평상시 칸다 씨의 것이니 말이죠.

용사의 기억이 부활했다면 이런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분명. ……그건 그렇다 쳐도


왜 그래?”


뭔가 저희들,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려는 정의의 편이 된 것 같네요.

구해야할 공주도 있으니 말이죠.”


아득히 먼 세계를 초월한 연인끼리의 재회를 방해하려고 하니, 말에 걷어차여 죽는 악당쪽일거

우왓!”


식당을 통과하여 복도를 통해 체육관으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달리는 우리들 앞을 가로막은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었다.

우리들은 거기에 돌진하려는 걸 멈추고 달리던 기세를 어떻게든 죽이는데 성공했다.


, 가스 폭발? 테러리스트의 폭탄인가!?”


아니에요, 화염마법입니다! 불을 잘 보세요.

이것도 키미시마 씨가 준비해놓은 겁니다!”


불은 바닥, 좌우의 벽, 천장 사방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야말로 불의 벽이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잘 보니 바닥과 벽에 탄 흔적은 없다. 마력의 힘으로 발생한 불이라는 것이 명확했다.


키미시마 녀석! 관계없는 인간이 화상입으면 어쩌지 같은 건 생각도 안하는 건가!”


생각하지 않았다보다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싶습니다만!”


바닥과 벽에 탄 흔적이 없는 마법의 불이라고 해도 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열에 내쫓기는 것 같이 우리는 뒤로 물러났다.


외부에서 빙 돌아가고 싶지만, 저쪽에는 창문이 없었지.”


없네요. 체육관에 가려면 여기를 통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소화다, 소화!”


우리는 식당쪽으로 돌아가서 배치된 소화기를 가져왔다.

피난훈련때 배운 것을 떠올리면서 안전핀을 빼고 호스를 바닥의 불꽃에 향하게 했다.


문명의 힘이다, 어떠냐!”


고함을 치며 레버를 누르자 노즐에서 새로운 거품이 분사되었다.

하지만 불꽃이 사라진 순간 그 이상의 불꽃이 다시 피어올랐다.

벽과 천장의 불꽃도 의지를 가진 듯 미쳐날뛰며 소화기의 기세를 삼키고 있었다.


젠장 안되는 거냐!”


이 이상 하는 건 시간낭비다. 나는 마법의 힘 앞에 패배자가 된 소화기를 난폭하게 놓았다.

커다란 소리가 나며 복도에 불에 비친 붉은 통이 굴러갔다.


이렇게 되면-”


강제로 돌파해버릴까. 불의 벽은 약 1m. 단숨에 점프해서 넘어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이나 옷에 불이 붙으면 큰일이지만 착지한 후 그 기세를 살려 복도에 구르면 바로 꺼질 것이다.


해주마. 심두멸각하면 별 거 아냐.”


이 말을 한 스님은 타죽었지만 그것은 일단 놔두고 나는 도움닫기를 하려고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모한 건 싫으니 저는 사양합니다. 엄마가 준 피부에 화상을 입으면 안되니까요.”


그럼 불이 사라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거야? 그런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냐.”


불의 밝기로 음영이 확실히 드러난 카츠아키의 얼굴이 고민으로 물들었다. 나는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소화기가 안통하는 마법의 불이라고. 물을 부어도 아마 소용없겠지.

이제 돌격하는 수 밖에 없어. 내 말이 틀려?”


내 말을 들은 카츠아키는 뭔가 깨달은 듯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동자가 불의 벽을 향하더니 손가락 사이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법 거기에 물. 맞아, 전생 시절의 힘을 사용한다면 내쪽이 더......”


카츠아키는 휙하고 뒤를 돌더니 멈출 틈도 없이 복도를 통해 식당으로 사라졌다.

그가 다시 오렌지색의 복도에서 나타났을 때는 얼굴 실루엣이 이상하게 되어있었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온 것이다.

뭘 하려고 하는지 순식간에 이해가 됐다. 나는 교체하는 것처럼 뒤로 물러났고 카츠아키는 불 앞으로 접근했다.

카츠아키는 볼을 부풀린 채로 뒤를 돌아보고는 끄덕였다.


간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는 바닥을 차고 돌격을 개시했다.


불의 벽에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다리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카츠아키의 옆을 추월하자 그의 입에 머금은 물이 얼음의 브레스로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정전한 것처럼 주위가 어둠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의 벽이 있던 곳이었으나 통과하는데 아무런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계절에 걸맞지 않게 눈보라를 쐰 느낌이다.

나는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치챘다. 조금 전까지 불의 벽이 있었던 장소가 번질번질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그것은 얼음이었다. 투명한 얼음의 벽이 솟아있던 것이다.


-카츠아키의 힘과 키미시마의 잔류마력이 묘한 반응을 일으켰는데

얼음의 브레스가 예상 이상으로 강력하여 얼음의 벽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저도 지금 가겠습니다!”


볼이 오그라든 카츠아키가 움직이려고 했다. 자신이 만든 벽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말리는 것보다 빨리 분명치 않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안면부터 얼음의 벽에 충돌하는 소리가.

투명하고 두꺼운 벽 저편에서 키 큰 신체가 주르르 미끄러졌다.


……정신이 들면 쫓아와!”


나는 혼자서 이동하며 복도를 나는 듯이 지나치고 체육관 문 앞에 도착했다.

빛의 파동을 이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 문 저편. 칸다는 거기에 있다.

나는 문을 난폭하게 밀어서 열었다.

 



체육관 안은 조금 어두웠으나 빛이 있었다. 천장의 조명은 한두 개 정도가 불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본 시선은 바로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빛이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관의 풍경이 평상시와는 다르다는 것.

체육관의 중심에 면적이 10m쯤 되는 종이가 놓여져있었다.

거기에는 원형의 기묘한 문양이 그러져 있었고 중앙에는 여자애다운 핑크색 셔츠를 입은 소녀가 눕혀져있었다.


칸다!”


눕혀져 있는 칸다는 의식이 없는 건지 내가 외치는 소리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종이에 그려진 문양, 그것이 용사의 기억을 부활시키기 위한 마법진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경계할 여유 따윈 전혀 없었다.

조금만 달린 것뿐인데 갑자기 상반신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너무 허둥대느라 발을 헛디딘 것 같다.

그 기세로 바닥에 손을 대게 되어 포복하는 듯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젠장!”


나는 팔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싸늘한 체육관 바닥에서 손바닥을 뗄 수 없던 것이다.

손바닥만이 아니다. 무릎도 정강이도 그리고 신발의 끝부분도. 요컨대 바닥에 닿은 신체의 모든 부위가 그대로 달라붙은 것이다.

-순간접착제!?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지운 것은 뒤에서 들린 조용한 목소리였다.


꼴좋군요. 당신한테 어울립니다.”


부자유한 자세에서 돌아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교복차람의 키미시마 노조미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설마 여기를 찾아낼 줄은 몰랐네요. 혹시 몰라서 마법진 주위에 포박마법을 걸어뒀던게 정답이었군요.

수비와 불의 벽은 어떻게 된거죠? 당신이 돌파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은데 작동하지 않은 걸까요.”


키미시마.”


왜 그러죠?”


당장 칸다를 해방해줘. 지금이라면 아직 괜찮을지도 몰라.”


칸다는 비웃지도 않았다.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언성을 높였다.


칸다를 해방해! 알겠어? 이제 곧 여기에-”

마왕님이 올거야라고 말할려고 했을 때 키미시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내 입에서 말 대신에 휴우휴우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의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당신 주변의 소리를 없앴습니다. 당신의 소리가 시끄러웠으므로.”


나는 대꾸하려고 했으나 역시 목소리가 소리로서 공기에 전달되지 못했다.

-침묵마법인가

움직임과 목소리, 그 양쪽을 봉인당한 나를 차가운 눈으로 보던 키미시마가 입을 열였다.


어떻게 여기를 찾아냈는지 정말로 신기하네요.

설마 칸다 씨를 스토킹하고 있던 건가요? 최저입니다.”


그건 너잖아.


당신을 악으로 판단한 것은 역시 정답이었군요. 하지만 악행도 이제 끝입니다.

당신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도 못내니까요. -맞다, 지금 알려주겠습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는 지를.”


알고 있다. 알려주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


나의 소원-그것은 용사님의 부활입니다.

……뭐 용사님에 대한 걸 모르는 당신에게는 이 의미를 모르겠지만요.”


모르기는커녕 내가 더 녀석과 많이 만났다.

그렇게 외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될 겁니다. 칸다 씨는 용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테니까.

저를 모른다고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죠. -자 슬슬 마력이 다 찰 때가 됐네요.”


키미시마의 그 말을 기다린 것처럼 마법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는 듯 눕혀져 있는 칸다의 주변에 어슴푸레한 빛이 떠올랐다.


마법진이 발동했습니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키미시마는 나에 대해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보고는 마법진으로 향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칸다에게 나오는 빛의 파동. 그것이 평상시보다 강해졌다.

그에 맞추듯 주위에 떠돌던 희미했던 빛이 강하게 반짝이려고 하고 있었다.

설마. 설마 정말로 용사가 부활하는 것일까. 눈앞에서 두손 든 채로 볼 수 밖에 없는 건가.


기억을 되찾은 용사는 분명 나를 다짜고짜 죽일 것이다. 눈을 떴는데 거기에 마장이 있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가령 용사한테서 도망쳤더라도 사랑스러운 언니를 잃은 마왕님이 지옥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키미시마한테 꼭 전해야할 말이 있는 것이다.


“-자 용사님. 눈을 떠 주세요. 기억을 되찾고 저와 예전 세계에 대해 잔뜩 이야기해 봐요.”


황홀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강하게 빛났다.

순간 돌풍 같은 충격이 나를 덮쳤다. 바닥에 붙어있는 신체가 떠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대로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듯이 나는 수m 뒤쪽으로 날아가서 등을 바닥에 부딪쳤다.

늑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폐를 압박하였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키미시마가 뒤돌아봤다.


……뭘 하고 있는 건가요. 굉장한 소리가 났는데요.”


뭐냐니 빛의 파동에 튕겼-”


말하는 도중 나는 하고 말을 멈췄다. 몸이 더 이상 붙어있지 않다. 그리고 목소리도 나온다.

키미시마의 포박마법보다 빛의 파동이 더 강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튕겨나간 후 침묵마법의 효과범위 밖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했을 때 내 입은 말을 내뿜었다.


들어줘, 키미시마! 아까부터 용사, 용사 그러는데 네가 원하는대로 용사가 부활하면 그걸로-

그걸로 정말로 괜찮은거야? 그러면 그 용사가 기뻐한다고 생각해?

누군가를 희생하면서까지 부활하면 그 용사가 기뻐하겠냐고! 그 용사가!”


드디어 말했다, 이 말을. 흥분하여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말한 것이다.


……무슨 소리입니까? 게다가 용사님에 대해서 아는 듯이 말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알고 있다고! 나 이상으로 그 녀석을 아는 녀석은 많지 않을 걸!

드래곤의 이빨로 만든 검을 쓱 휘두르며 마물들을 베던 그 녀석을 말하는 거잖아!”


…….”


키미시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2군단이나 되는 마왕군의 병사들을 다 쓰러트리고 거기에 삼마장도!

그 끝에 마왕님까지 쓰러트린 그 녀석을 말하는 거잖아!”


, 어째서……. 당신이 그걸?”


나도 너랑 똑같아. 그 세계에서 왔다고!”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 없다는 걸 봤다는 듯.


……거짓말, 이죠…….?”


이런 때에 거짓말을 하겠냐!”


키미시마는 말문이 막혔다. 크게 뜬 눈이 깜박이지도 않았다.


너에 대한 건 잘 알고 있어. 용사의 약혼자인 그 마법사잖아!

친위군단장에게 죽었지만 브레슬릿에 혼을 옮겨서 그래서 차원의 벽을 넘어 이 세계로 왔어!

네가 예전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염원을 성취하려는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잘 들어! 용사의 기억을 되살리면

-사라진다고, 칸다가용사의 기억이 덮어씌워져서 칸다가 사라져버린다고!”


그 순진했던 얼굴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용사가 기뻐할 것 같냐! 그 녀석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는 걸 가장 싫어할 거라고!”


키미시마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꿀꺽하고 숨을 죽였다.


네가 그 녀석을 만나고 싶어하는 건 이해해, 약혼자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희생되는 칸다에 대한 것도-”


, 당신은 칸다 씨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저한테 접촉했던 건가요……?

악의 길로 유혹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하잖아! 악의 길이 뭔데!?”


키미시마의 표정이 단숨에 변했다. 냉담한 모습과 어리둥절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초조함과 놀람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왜 더 빨리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 이런-”


계속 알려주려고 했어! 근데 말하게 해주지 않았잖아, 네가!”


순간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느끼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키미시마는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얼굴로 가렸다.


나 또 저질러 버렸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점이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그건 됐으니까 이제 용사부활을 그만둘건지 말건지-”


, 그만 할게요, 물론! 칸다 씨가 사라져버리면 안되니까요!

그런 짓을 하면 용사님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테고 칸다 씨가 불쌍해요! 종이를 찢어서 당장 마법을 멈추겠어요!”


키미시마는 마법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칸다집 근처의 작은 사거리에서 말을 걸었을 때 봤던 것과 똑같았다.

그 때는 평상시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라고 했으나 그 허둥대는 모습이 키미시마의 천성일 것이다.

겨우 10m쯤 되는 거리를 달리는데 3, 4번을 넘어질 뻔하면서도 키미시마는 마법진의 끝에에 도착했다.

그 팔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종이를 찢으면 끝-

이었던 그 때.


마법진의 빛이 경련하는 것처럼 보였다. 라고 생각했는데 종이가 순식간에 문양까지 검게 물들고는

동시에 숙이고 있던 키미시마의 작은 신체가 날아갔다. 바닥에 미끄러지자마자 회전하면서 날아갔다.

그게 멈춘 건 등이 벽에 부딪쳤을 때였다.

벽에 달라붙은 키미시마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나왔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 이봐! 방금 그건 뭐야!”


이런 때에 봉인의 저항이…….”


뭐라고?”


되물어도 대답 대신에 돌아온 것은 신음소리였다.


, , 괜찮은 거야?”


격돌하는 기세는 마법으로 상쇄했어요……. 하지만.”


이를 악문 키미시마는 몸을 조금씩 떨었다. 뭔지 대충 알았다. 몸을 뒤틀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못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만 가까스로 가능한 듯하다.

나는 한 번 더 아까 무엇이 일어난 건지 물을려고 입을 열였다.

그 때 시야의 색이 바뀌었다.

휘황찬란하게 하얗게 빛나고 있던 마법진에서 색이 희미해진 것이다.

마법진을 물들이던 어둠이 지금은 빛과 비슷하게 자욱해져서는 빛을 삼키려고 했다.


여기는 위험해요, 당신은 도망쳐주세요…….”


그야 도망쳐서 해결되면 도망치겠지만 그러면 사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줘.”


용사님을 봉인하고 있던 거대한 어둠의 힘…….

그것이 되살아나려고 하는 용사님한테 반응하여 빛을 삼키려고 폭주하고 있어요.

마법진으로 억눌렀을텐데 이렇게 강하다니…….”


즉 마왕님이 심어놓은 봉인의 힘과 눈을 뜨려고 하는 용사의 힘이 부딪치고 있다, 그런 건가?


,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빛과 어둠, 어느쪽이 이겨?”


몰라요, 그것은……. 하지만 빛이 이기면 용사님이 부활하고 어둠이 이기면…….”


용사가 봉인되어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해피엔딩?”


아뇨 봉인하는 어둠의 힘은 폭주하고 있습니다……. 혼을 집어삼킬 듯이…….”


알기 쉽게 말해줘, 칸다는 어떻게 되는데?”


만일의 경우지만 마음이 부서져서 폐인으로…….”


절망적인 대답 때문에 아찔해졌다.

그러면 어떻게 되든 결과가 최악이라는 소리다.


어떻게 하면 돼? 어떻게 해야지 칸다를 구할 수 있지?”


아직 어느 쪽도 이기지 않았으니까 마법의 발동을 멈추면 빛과 어둠을 수습할 수 있어요……


종이를 찢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거지? 그렇다면!”


봉인의 저항 덕분에 빛의 파동의 양이 줄어든 상태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안돼요! 지금 가까이가면 저처럼 튕겨 나갈 거예요! 저는 마법으로 충격을 경감했지만 당신은…….”


네가 움직일 수 없다면 위험하더라도 내가 갈 수 밖에 없잖아!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 리스크 없이 쉽게 칸다를 구하는 방법이!”


……어둠과 싸우고 있는 빛은 용사님입니다. 용사님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결해주실 거예요.

칸다 씨의 기억을 없애지 않고 혼이 어둠에 삼켜지는 일도 없이.

그렇게 저희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용사님은 해결해주셨어요.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 뿐이에요……. 그 때처럼 용사님한테 기도하는 것 뿐…….”


말 자체가 기원하는 듯한 키미시마의 목소리. 그것을 들은 순간 내 머리의 온도가 급상승했다.


기도!? 기도하면 해결될 것 같아!? 너희들은 불리해지면 항상 기도했던거냐!?

젠장할, 나는 이런 녀석들한테 졌던 거냐!”


, 갑자기 무슨-”


우리가 용사한테 이길 수 없었던 것은 기도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말을 내뱉고는 나는 다시 마법진으로 향했다. 지금 칸다는 빛과 어둠의 저편에 있다.

맞부딪치는 두 빛의 여파는 여기까지 닿아서 피부를 찌르르 떨리게 했다. 여기로 돌격하는 것은 분명 위험할 것이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다. 칸다와 나와 겐지와 카츠아키 그리고 하는 김에 키미시마의 내일을 위해서다.

입가를 한 번 닦고 그렇게 마음의 결심을 했을 때였다.

마법진에서 방출되는 색이 또 변했다.


, 빛이!”


어둠이 빛의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마법진 위는 어둠이 점거하여 빛은 구석으로 쫓겨났다.

아아아아아……라고 하는 키미시마의 탄식이 되돌아왔다.

퍼진 어둠이 흩뿌리는 파동에 맞은 것이다.

용사의 기억을 봉인하는 어둠은 마왕님의 힘의 일부. 그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맞으면 인간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을 기회라고 보고 달려나갔다.

어둠의 힘이 활력을 주고 있다. 지금이라면 나같은 몸치라도 100m11초대에 달릴 수 있을 거 같다.

넘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시야를 잃었지만 발밑에 있는 종이의 감각을 단서로 삼아 종이를 찢으며 나아갔다.

손에 부드러운 것이 잡혔다. 나는 그것의 일부를 확실히 잡고 뒤로 물러났다.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와 시야가 돌아왔어도 계속 뒤로 물러났다. 아직 손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그것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칸다!”


팔을 잡고 끌고 왔는데도 눈을 뜨지 않는 칸다가 명확하게 드러났을 때 나는 자기도 모르게 외치고 있었다.

어째서 눈을 뜨지 않는 거지? 설마, 설마 이미 어둠에 마음이 먹힌 건가?

불길한 생각이 가슴을 스쳤을 때 칸다의 팔을 잡은 손에서 정전기 같은 것이 정수리까지 느껴졌다.

평상시보다 훨씬 빈약한 충격. 하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칸다 안에 있는 빛의 파동이.

그럼 괜찮을 것이다. 어둠에 휩싸여도 빛의 파동이 배리어가 되어줄 것이다. 의식도 바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이라도 빨리 어둠에서 떨어져야한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나오는 파동은 위험하다.

하지만 어둠은 칸다가 사라져서 그런지 고삐가 풀린 것처럼 팽창 속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과연 도망갈 수 있을까.


뒤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벽쪽에서 낮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용사의 약혼자인 여자 마법사가 환생한 1학년은 한손으로 괴로운 듯이 가슴을 누르면서 다른 한손을 내밀고 있었다.

뭘 하려는지 짐작하는 것보다 빠르게 키미시마의 손바닥에서 눈부신 빛이 나왔다.


용사님, 저에게 힘을!”


최대한 쥐어짜낸 소리에 반응하는 듯 퍼져가던 어둠이 급격하게 시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로 찢어진 마법진으로 빨려들어갔다.

키미시마의 손바닥에서 빛이 사라지자 어둠은 먹물이 섞인 비눗방울 같은 잔재가 몇 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거대하게 퍼지던 어둠의 대부분이 마법진에 빨려들어간 것이다.


제 모든 마력을 써서 폭주한 어둠을 봉인했어요. 이제 괜찮습니다…….”


키미시마는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힘이 다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키미시마!”


나는 칸다를 업고 당황하며 달려갔다.


키미시마, 이봐,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정신차려, 이봐!”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키미시마의 턱이 움직이자 나는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칸다 씨는 무사, 한가요……?”


그래. 의식은 아직도 없지만 빛의 파동이 제대로 느껴져.”


그렇, 군요.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고 안심했다는 듯이 키미시마는 고개를 푹 숙였지만 나는 계속 말을 걸었다.


아직 자면 안돼. 또 하나의 위험이 오고 있다고.

아까 내가 도망치라고 했는데 일단 근처에 적당한 곳으로 가서 숨어.

나중에 내가 살려달라고 탄원할 거니까.”


당신은-”


?”


당신은 누구, 였나요? 어째서 그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건가요……?

당신은, 대체……?”

 

나는 아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참 새삼스럽다.

머리를 긁적이려고 했으나 칸다를 업고 있어서 그러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고나서 말했다.


삼마장,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


그거야, 그거. 그 중 하나가 나였어.”


크게 숨을 들이쉬는 키미시마. 눈이 당혹과 놀람, 반반이 되었다.


, 아니, 너를 죽인 그 괴물은 아니야! 그 녀석도 있지만 나는 아니야.

그리고 용사의 부활을 막은 것은 몸의 안전을 위한 것만은 아니야.

그것도 그렇지만 칸다가 사라지는 것을 놔둘 수 없었다고 할까, 뭐라고 하지…….”


왜인지 나는 변명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 아무튼 그거에 대해선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고 일단 어딘가로 숨어-”


어느 쪽인가요……?”


어느 쪽?


수인의 수호신이 아니라면 마계의 주인인가요? 아니면 거인족의 살아있는 전설……?”


그러고보니 그렇게 불렸었다.


용사한테 죽었으니 죽은 전설이지만 거인쪽, 일까. 그것보다 빨리-”


거인 씨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지 새된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키미시마가 안겨왔다.


그립네요. 저를 기억하고 있나요!? 용사님고 같이 있던 마법사입니다!”


, 그야 알고 있-”


그렇게 컸는데 평범한 사람의 크기가 되었네요! 커다랬으면 바로 알았을텐데!

왜 거인 씨라고 빨리 알려주지 않은 건가요? 하지만 이제부터 잔뜩 예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으음 어느 이야기부터 할까요. 제가 용사님과 함께 싸우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할까요.

아 그래도 거인 씨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키미시마의 반짝이는 눈은 칸다한테 안길 때와 완전 똑같았다. 예전 세계에서 적이었다는 건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 내 얘기? 내 얘기 같은 건 하나도 재밌지 않은데……. 아니 기다려 그럴 때가 아니잖아.”


,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점이 있어서…….”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들어줘. 예전 세계에 있던 최대의 공포가 이곳으로 온다고.”


? 그거 설마…….”


그 설마야. 마왕님이야, 마왕님. 마왕님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정말인가요!? 마왕까지 있다니 그립네요. 꼭 소개해주세요!”


있잖아……. 마왕님이 누가 되어있는지 알고 하는 말이야?

듣고서 놀라지 마라고, 여동생이야, 칸다의 여동생.”


, 칸다 씨의 여동생, 인가요? 그건 여러 가지로 의외라고 할까 뭐라고 해야하나…….”


나도 아직 반쯤은 못믿어. 하지만 사실이야. 언니를 농락하는 녀석은 용서못한다고 씩씩거리고 있다고.

자기가 직접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해준다면서.”


키미시마의 얼굴이 굳더니 그녀는 뒷걸음질을 쳤다. 마왕님에 대한 공포심이 되살아난 것 같다.


이제 10분 정도면 도착할거야. 그 전에 어딘가 적당히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줘.

집까지 돌아갈 정도로 기운이 남아있으면 그게 좋겠지만 그러긴 힘들잖아.”


나는 업었던 칸다를 정중하게 내려놓았다. 일단 찢어진 마법진을 처리하려고 한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오컬트 연구부 같은 곳이 처벌을 받을 것이다.

칸다를 바닥에 눕혔는데도 키미시마는 아직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마왕님이 10분 정도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더 빨리 올지도 몰라.

여유부릴 때가 아니라고. 숨을 장소를 못찾겠다면 시음부의 부실에 가있어, 잠겨있지 않으니까.”


……못가겠어요.”


?”


칸다 씨가 눈을 뜨실 때까지 갈 수 없어요.

왜냐면 전 칸다 씨를 없애려고 했으니까……. 직접 제대로 사과할 때까지는 못가겠어요.”


고개를 숙이는 키미시마.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지만 말이야.

상식을 뛰어넘는 위험이 오고 있다고. 지금은 상식보다 현실을 우선해줘.”


안되요, 못가요. 거인 씨 일행한테도 잔뜩 폐를 끼쳐서 저는…….”


있잖아, 그야 나도 너한테 잔뜩 뭐라고 하고 싶긴 한데 그런 것은 다 끝난 뒤에 하자고.

그리고 폐라면 니가 여기에 남아 있는게 더 민폐야.

마왕님이 너를 보고 미친 듯이 격노하여 나까지 말려들어서 죽을지도 몰라.

네가 반성하고 있는 건 잘 알았고 그건 제대로 마왕님게 전해둘게.”


키미시마는 말이 막혀 우물거렸지만 반론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일단 납득해준 것 같다.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빨리 가도록 재촉했다. 그러자 키미시마가 다시 입을 열였다.


뭔가, 쓸 것을 가지고 계신가요……?”


왜 그래?”


가기 전에 마법진에 최후의 봉인을 해놓고 싶어서요.

지금 상태라도 봉인이 풀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때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던 것이다.

뒷주머니에서 꺼낸 볼펜을 키미시마한테 건냈다.


바로 끝나지?”


“1분쯤 있으면…….”


펜을 쥔 키미시마가 발을 내딛였을 때.

시야의 끝에 검은 것이 보였다.


위험해요!”


큰 소리로 외친 키미시마가 눕혀져 있는 칸다 앞을 가로막은 것은 알았다. 그 몸이 한줄기 어둠에 휩싸인 것도.

키미시마의 몸이 튕겨나가듯 날아갔다. 또 벽에 등이 부딪치게 되었고 몸을 크게 젖히더니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


, 이봐-”


그쪽으로 달려가려고 했을 때 키미시마가 손을 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체육관 중앙을 가리키고는 손을 떨어트렸다.

키미시마가 가리킨 쪽에 있는 것은 마법진의 잔해에서 솟아나온 어둠이었다.

그것이 화살같은 형상이 되어 칸다를 덮친 것이다.


절대로 풀리지 않는 게 아니였나고!”


키미시마의 말과 달리 어둠은 간단히 봉인을 풀고 나왔다.

이 끈질김은 역시 마왕님의 힘의 일부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저 어둠은 나한테 있어서는 힘을 주는 원천이다.


원흉은 마법진인가! 그러면 전부 분쇄해서 종이쪼가리로 만들어주마!”


나는 어둠과 칸다의 직선 위치에 서서 마법진을 향해 돌격했다.

어둠이 몇 번 공격했지만 모두 내 몸으로 막아 흡수했다.

이변은 마법진까지 조금만 더 가면 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뭔데.”


이변의 이유는 나중에 바로 알게 되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어둠만이 덮었으나 그렇게 어둠이 퍼져도 와넌히 사라지지 않았던 빛. 그것이 이렇게 반항하고 있다.

마왕님과 같이 용사의 힘도 이쪽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안좋은 예감만 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싸우기 전부터 패배의 가능성을 의식했다.

용사와 했던 최후의 전투. 이 감각은 그 때랑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역시라고 해야할까.

손가락이 종이에 닿기 전에 어둠이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대신 나타난 것은 그 일대의 빛.

등골이 오싹해졌다.

압력이 느껴졌다. 나는 혹독한 고통과 함께 뒤쪽으로 밀려났다.


젠장……!”


앞으로 몸을 기울여서 어떻게든 버티면서 옆을 보았다. 하지만 키미시마는 여전히 쓰러져있었다.

빛의 파동이라도 기절한 사람을 각성시켜주진 않는 것 같다.

시선을 다시 되돌렸던 때였다. 빛의 일부가 부풀더니 빛나는 탄환이 되어 발사되었다.

그것이 이쪽을 향해 오는데 그 과정이 마치 필름의 한컷, 한컷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나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뒤에 눕혀져 있는 칸다를 향하고 있다고.

칸다를 빛으로 채워서 용사의 기억을 부활시킨다는 마법진의 본래 역할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나는 빛나는 탄환을 피하지 못했다.

온몸을 덮치는 무시무시한 격통. 이 장소에서 삭제당할 것 같은 몸 안쪽에서 오는 충격.

하지만 나는 그 장소에서 버티고 막아서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질까보냐.”


계속해서 빛나는 탄환이 발사되었다. 이번에도 몸으로 막았다.


용사의 힘의 일부 또는 그 끄트머리. 그런 것에 질꺼 같아!


나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피부와 내장, 양쪽의 아픔이 너무 심해서 온몸의 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시야가 매우 하얗게 된 것은 마법진이 빛나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버틸 수 있다.

내가 이 세계로 온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서 있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면 이 정도는 버틸 수 없을 리가 없다.

나는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힘으로 빛을 향하여 외쳤다.


말해두는 건데 나는 물러나지 않을거다! 몇 번을 맞추더라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거다.

너한테 지는 것은 이제 질렸다고!”


빛 속에서 붉은 것이 뛰어올랐다. 피였다. 코피가 나온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닦지도 않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들을 리가 없는 상대를 향해 더더욱 외쳤다.


네가 이긴 것이 정의의 편이어서 그렇고 내가 진 것이 악의 수하라서 그런 거라면 지금의 나한테는 이길 수 없을걸!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를 지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악이 아니니까! 내 뿌리가 어땠든 상관없어!”


3발째 빛나는 탄환이 발사되었다. 그래도 견뎠다.


예전 세계에서는 다들 너의 등장을 기다렸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고, 용사!”


그렇게 외쳤을 때 전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리와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의 부담이 정신력을 상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양손을 크게 펼쳤다.

전진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이 장소에서 움직일 수는 없다. 이미 그렇게 결심했다. 그 때 또 빛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의식이 몽롱해지면서도 서서 버티는 나의 눈앞에 빛의 밝기가 더 강하게 되었다.

그것은 빛나는 탄환을 발사할 준비가 아니었다.

높이 그리고 넓게 퍼지던 빛의 소용돌이가 압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빛이 순식간에 작아지더니 이윽고 명확한 하나의 형태를 되었다.


…….”


그 녀석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실루엣뿐이었으나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 거기에 있었다.


너는…….”


위풍당당하면서도 훤칠한 기품도 갖춘 윤곽은 요정족의 장인이 옛 전설의 금속으로 만든 갑옷에 의한 것.

왼팔에 장비한 것은 신들이 흘린 눈물로 축복을 받아, 여러 가지 사악을 튕겨내는 성스러운 방패.

그리고 오른손으로 휘두르는 것은 물론 검.

못베는 것이 없고 구부러지지도 않고 날 하나 상하지 않는, 무엇보다도 단단하여 모든 것을 베는 검.

나는 그 유래를 알고 있다. 인간군과 싸우기 훨씬 전 아직 유명세가 평범했던 내가 쓰러트린 드래곤,

그 녀석의 이빨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몰라도 검이 된 것이다.

그렇다. 거기에 있는 것은 선택받은 자. 빛의 구세주. 최후의 희망.


용사…….”


마법진에 의해 해방된 용사의 힘의 일부였던 것이 지금 용사 본인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희미해진 시야 속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용사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쪽을 향해서.

이 녀석이 칸다와 접촉한다면 분명 뭔가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나는 바닥을 내차고 서서 펼친 양손에 더욱더 힘을 모았다.


……오려면 와라. 너는 그 녀석이 아니야, 녀석의 힘의 일부일 뿐.

겨우 그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


그렇게 말해도 용사의 걷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변할 리가 없다서두르지도 않고 이쪽으로 단지 다리를 옮길 뿐이다.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 용사는 실루엣뿐이다. 투구를 쓴 얼굴까지는 살필 수 없다.

하지만 만약 표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과연 앞을 막는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나는 용사가 태어난 마을을 군단을 이끌고 가서 멸망시켰다.

명령한 것은 마왕님이고 직접 한 것은 부하들이지만 역시 용사에 있어서 내가 가족의 원수일 터.

명확한 원망의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나를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밉고 미워서 어쩔 수 없겠지.

한 번 죽인 걸로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용사의 긴 여행을 하면서 나를 목표로 노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러 고난과 슬픔을 극복해서 그 왕좌에 도달한 것은 마왕님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지, 가족의 원수인 나를 쓰러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용사와 여러 번 싸웠다. 어느덧 내 인생의 제1목표는 용사를 쓰러트리는 것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그래도 용사의 입장에서 나는, 마왕님을 향한 긴 여정에서 단순히 방해되는 장해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장해물.

지금도 그렇게 보고 있을까.

내 영혼은 그 자리에 있으면 치워지는 운명인 장애물.

그것이, 나란 말인가.

세계가 변하고 인간이 되었어도 결국 나는 그런 존재인 것인가.


아니, 틀렸어. 그건 아니지…….”


나는 생각을 지우고는 문득 뒤를 보았다.

지금 내 뒤에 있는 인물은 그 때와 다르다. 나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왕님이 아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착하고 게다가 무사태평한 끝에 좀 얼빠졌지만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친구를 위해서라면 큰 소리를 낼 수도 있다.

내 뒤에 있는 자는 그렇게 좋은 녀석이다. 나의 친구다.

그 녀석을 지키려고 하는 내가 단순한 방해물이어서 되겠는가.


작고 약한 인간이여, 하지만 용기 있는 자여! 와라!

이 앞에 가려면 내 시체를 넘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의식해서 말한 것이 아닌 내 천성으로 한 것이다. 어딘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먼 옛날 최후의 전투가 시작될 때 내가 말한 것이었다.

용사가 다가온다.

빛의 파동은 이제 온 몸을 삼키는 촘촘한 쇠사슬처럼 되어있어서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드디어 용사가 가까이 왔다.

본체와 일체화한 것 같은 빛으로 만들어진 검이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갔다.

나는 그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장이여 일어나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의 힘을 받아라!”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은 지금 막 검에 힘이 모였을 때였다. 그것은 죽음 앞에 둔 환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두 귀로 들은 것이다. 체육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같이! 동시에 몸을 묶는 사슬이 잘려나갔다.

그것만이 아니다. 넘치는 힘이 몸 안쪽에서 솟아났던 것이다.

마장이라도 불린 거인이었던 그 시절과 비슷할 정도의 힘이 이 몸에 머문 것 같았다.

온 몸이 상쾌할 정도로 중량감이 있는 둔기가 되었다.


그 녀석은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용사의 힘의 일부일 뿐이야!

해치워도 언니한테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 그러니까-이겨버려, 마장!”


그 외침을 들으면서 나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예전 세계에 있던 전투 중에서 최고의 일격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용사와 벌인 최후의 싸움에서 한 방 휘두른 그 공격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시원스럽게 용사가 피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죽었버렀지만 그래도 생애 최고의 일격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지금 휘두르는 공격도 그 일격에 지지 않을 정도의 것이었다.

체중을 실은 파워, 바람소리가 날 정도의 스피드, 허를 찌른 절묘한 타이밍.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런 손맛이 없었다.

오른팔이 덧없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또 용사가 피한 것이다.

대체 뭐냐, 이 녀석은! 가장 중요한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에서 휘두른만감을 담은 인생최고의 일격.

그것을 두 번이나 손쉽게 피해버렸다!

꼴사납게 자세를 무너뜨린 나를 향해 다시 검이 다가왔다.

직접 흘러들어오는 빛의 파동. 솟아나오는 힘을 가졌어도 저항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몸이 가라앉아 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다!”


무릎을 꿇으면서 본 것은 머리 위를 넘어 날아가는, 작은 몸집의 인영이었다.

괴조같은 움직임을 한 그 녀석은 겐지였다. 손에는 용사의 장비와 짝을 이루듯 꺼림직한 암흑의 검을 쥐고 있었다.

그 도신에는 박쥐와 검은 고양이 거기에 까마귀, 검은 양이 포함된 13마리의 불길한 생물의 환영이 감겨있었다.

급강하한 겐지가 용사와 대치했다.

먼저 날아가 버린 건 겐지였다. 강력한 마력으로 실체화한 암흑의 검은 빛의 검에 막히고 일방적으로 부서진 것이다.

짝을 이룬듯 보였던 것은 겉모습뿐이었던 것 같다. 박쥐와 까마귀의 환영도 시원스럽게 소멸하였다.


이거라면 어떻습니까!”


이번에 외친 것은 카츠아키였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말한 그 입으로 화염을 토해냈다.

화염은 작열의 구체가 되어 용사를 빨아들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용사가 검을 휘두르자 화염은 두 개로 갈라졌다.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지고는 소리도 없이 소멸하였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검을 휘두룰 때 생긴 충격파가 카츠아키에게 직격했다.

장신의 몸이 기울어지며 쓰러졌다.


-결국 이건가.

삼마장은 또 다시 셋이서 시원스럽게 지는 건가.

하지만-아직이다.

우리들의 패배가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분이, 계신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셨던 그 분이.

체육관의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으면서도 나는 얼굴만 들어 바라봤다.


일단 말해두는 건데 너희들을 정말 쓸모없다든가, 왜 이렇게 약한거야? 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해하지마.”


겐지와 카츠아키를 동반하고 이 체육관에 나타난 인물.

몸을 구속하던 빛의 파동을 없애고 어둠의 힘을 부여하여 우리들의 힘을 일시적으로 되살렸던 인물.

마나가 와준 것이다.

용사가 몸의 방향을 처음으로 바꾸었다. 문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마나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체육관 안에서 빛을 오로지 삼키는 어둠에.

마왕님의 상징, 어둠의 파동. 그 방출이 눈에 보일정도로 강해졌던 것이다.

밤보다 더 깊은 어둠에 휩싸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마나를 보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얼른 끝내자. 당신도 이런 건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둠이 굽이쳤다. 마치 사냥감을 삼키는 커다란 뱀처럼 빛을 습격했다.

그에 반응하여 용사는 손에 든 검을 휘둘렸다.

체육관 전체를 떨리게 하는 듯한 충격이 발생했다.

어둠과 빛의 파동이 격돌한 것이다.

마나와 용사의 중간 지점에서 부딪친 서로의 파동은 일방적인 힘의 차이를 드러내었다. 물론 용사가 밀렸다.

전에 마나가 말했다. 파동을 다루는 싸움이라면 자신이 당연히 위라고. 그 말이 사실로서 눈앞에 전개된 것이다.

어둠이 굽이치며 빛을 누른다. 용사한테 닿는 것도 시간의 문제였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내가 안도했을 때였다.

어둠을 빛을 억누르지 못했다.

게다가 더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빛이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힘의 일부라고는 해도 역시 용사야. 봉인했을 때보다 더 강해졌어. 이쪽도 전력으로 갈게…….”


마나가 파동을 더 강하게 방출했다. 하지만 다시 억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기는커녕 빛이 중간 지점을 넘어 마나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거짓말이지……? 이 내가, 이렇게…….”


마나의 입에서 초조해하는 소리가 새었다. 농담이나 장난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마왕님이 궁지에 몰렸다.

직접 진심으로 방출하고 있는 어둠의 파동조차 밀어내는 빛의 파동. 그걸 맞으면 마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칸다만이 아니라 마나도-

나는 일어서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빛의 검으로 베인 나한테는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겐지와 카츠아키도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일어서지 못한다면 적어도, 적어도 마나의 원호라도 해야한다. 마장의 힘은 아직 이 팔에 남아있다.

나는 던질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있어야할 것이 없었다.

핏기가 가신 상태에서 시선만 움직여보니 여러 번 날아가는 동안 주머니에서 떨어진 듯, 10m 이상 떨어진 벽쪽에 휴대폰이 떨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꼴이냐. 이래서는 원호도 할 수 없다.

필사적으로 침식을 막고 있으나, 조금씩 확실하게 빛에 몰리던 마나를 나는 방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점점 절망이 가슴 속을 지배하였다.

키미시마한테 줬던, 키미시마와 같이 날아간 볼펜.

그것만이라도 좋다. 그거라도 괜찮으니까 그게 내 손에 있다면-

그 때였다. 눈앞에 있는 바닥에 굴러떨어진 것이 보여.

그것은 검은 볼펜이었다.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본 적 있는 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는 펜은 키미시마가 나타나기 전에 내가 공부를 가르쳐줄 때 칸다한테 준 것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저게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칸다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것으로 내 휴대폰과 똑같이 소동의 한중간에 떨어졌을 것이다.

머리 속에 칸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펜, 소중히 할게. 키타세군처럼 항상 가지고 있을게!

칸다는, 정말로, 가지고 있어준 것이다. 매료마법에 걸려서 몸의 자유를 빼앗기면서도 펜만은 놓지 않았다.

소중히 한다고 말해준, 내가 준 검은 볼펜을.

나는 손을 뻗어 펜을 집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누운 채로 양팔을 휘둘렀다.


이 세계의 격언을 하나 알려주마. 너한테 딱이거든, 용사!”


내가 던진 볼펜은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면서 일직선으로 돌진하여 마나를 파동으로 압도하는 용사의 흉부에 부딪쳤다.


펜은 검보다 강하다고!”


빛이 흔들리며 파동의 방출이 아주 잠깐 약하게 되었다.

표정이 없는 용사의 얼굴이 처음으로 이쪽을 향했다.

계속해서 약하게 날개짓하는 박쥐의 환영과 작고 작은 화염구가 용사한테 날라왔다.

용사의 얼굴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 작은 틈이 패배의 원인이다. 지금 누구랑 싸우는지 알고 있는 건가?

마장따위와는 급이 다르다.

어둠의 일족을 힘으로 통일하고 여세를 몰아 인간의 여러 나라들을 공격하여 그 전부를 멸망시키기 직전까지 간 공포의 상징.

마왕님이라고.


잘했어!”


어둠의 파동이 단번에 압도하기 시작했다.

손 근처까지 왔던 빛의 파동을 삼키고 게다가 한순간에 중간 지점까지 돌아가고서는 마침내 용사까지 삼켰다.

어둠은 체육관의 허공에만 머물지 않고 빛나는 빛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둠이 펼쳐지는 것이 뚝 멈췄다. 그리고 바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색이 흐려졌다.

어둠이 개었다.

거기에 있던 것은 파괴된 마법진뿐.

빛의 파동은 잔재조차 남지 않았다.

그리고 용사의 모습도 사라져 있었다.

-끝난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언니!”

그녀는 휘감긴 어둠을 없애고나서 한숨도 쉬지 않았다.

마나는 쓰러진 우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누워있는 칸다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언니.”


발을 멈추고 칸다의 옆에 웅크리고 앉은 마나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언니가 언니인채로 있어서 다행이야.”


그 말과 표정으로부터 명확해졌다. 칸다는 무사한 것이다.

어느새 온 몸의 아픔이 사라져 있었다. 몸에 들어간 빛의 파동도 전부 소멸한 것 같다.

나는 일어서서 우선 겐지 그 다음에 카츠아키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세명이서 칸다 자매를 바라봤다.

칸다를 꼭 껴안던 마나. 그 표정은 그 마왕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애로 가득차 있었다.

칸다도 눈을 뜨지는 않았으나 매우 편안한 얼굴이다.

나는 상황을 잊고 따뜻한 마음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 상황을 잊고 있던 것이다 나는. 지금의 칸다한테는 빛의 파동이 거의 방출되지 않았다.

거기에 맞춰서 마나도 어둠의 파동을 방출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다.

언니 곁에 있던 마나한테 엄청난 속도로 돌격해오는 그림자. 나도 겐지도 카츠아키도 그 녀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있던 것이다.


……?”


멈출 틈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공포의 대명사, 악의 권화, 어둠 그 자체, 지옥에서 온 군림, 극악비도의 구현화, 종말예언의 정체…….

옛날 딱 들어맞는 이명이 산만큼 있었던 마나. 그리고-


마왕 씨!”


그 마나를 껴안고 있는 키미시마 노조미. 여느 때처럼 반짝이는 표정이었다.

어둠의 화살을 맞아 기절했던 것, 마왕님에 대한 공포를 떠올렸던 것은 대체 뭐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깐, 왜 포옹을 당하고 있는 거야 나?”


마나 역시 기가막혀하고 있다.


마왕 씨는 정말로 강하시군요! 대단해요, 용사님의 힘을 봉인하다니!”


, . 뭐어 좀 위험했지만……. 이 아니라!”


마나는 키미시마를 뿌리치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이 애가 이번의 원흉인 용사의 약혼자 맞지!? 설명해봐 왜 그런 애가 나를 껴안으려고 하는 건데!”


, 그것은 키미시마가 그런 사람이라서…….”


나는 횡설수설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정체를 밝힌 나를 껴안았던 것을.

그리고 키미시마는 용사가 부활하면 칸다가 소멸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

그것을 안 다음에는 필사적으로 부활을 막으려고 했다는 것을 전했다.


“-그러니까 예전 세계의 관계자라면 누구라도 좋았다. 그런 말이야?”


, 예에, 아마도…….”


전 마왕군 일동이 모여서 키미시마를 바라봤다. 키미시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기뻐하던 기색도 사라져 있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에 공포를 느꼈는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 입에서 조그만한 소리가 나왔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각오는, 되어있습니다. 저는 칸다 씨를 소멸시키려고 했습니다.”


, 각오가 되어있다니, ,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말하는 거야?”


키미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뒤이어서 말을 하려고 했다.


……몰랐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지만 말이지. 언니를 없애려고 했어. 용서못해.”


마나가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그것이 칸다를 삼키려고 퍼지기 시작했다.


기다려주십시오!”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어둠의 침식이 뚝 그쳤다.


뭔데?”


……겐지 군. 먼저 말하세요, 양보하겠습니다.”


, 아니 난 아무말도 안했어. 테츠지로 녀석이 지금 말한 거라고.

자 테츠지로 잭임을 가지고 뭔가 말해.”


!? 나말이야?”


누구라도 상관없어. 뭔데?”


전에 살려달라는 탄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나는 할 수 없이 가능한 마나와 시선을 마주않도록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죠. 키미시마를 용서해줄 수 없을까, 해서…….”


?”


키미시마가 악의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언니 분도 이렇게 무사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털어서 나오는 먼지의 양이라면 키미시마보다 이쪽이 훨씬 많으니까…….”


우리들이 누군가를 악으로 규정하고 단죄할 권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먼지를 털어내면 질식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


쌓아올린다면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수준이죠, 후지산을…….”


겐지와 카츠아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정렬하여 그 자리에서 정좌했다.


부탁합니다, 키미시마를 용서해주세요!”


세 사람은 체육관의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미시마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고개를 들어.”


우리들은 흠칫흠칫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마나가 있었다.


그런 건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이제 마왕이 아니니까.”


, 죄송합니-"

우리들은 또 머리를 조아려버렸다. 그 도중에 문득 알아차렸다.

이제 마왕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것을. 그 의미를 물으려는 것보다 빨리 마나가 키미시마한테 말했다.


한가지만 확인하게 해줘. 당신은 용사의 부활을 이제 두 번 다시 꾀하지 않는다. 그렇게 약속할 수 있어?”


……. 칸다 씨를 사라지게 하면서까지 용사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용사의 약혼자야. 그러면 어떤 고난을 넘어서라도 그 염원을 이루려는 것이 보통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거야?”


왜냐면, 이제, 더 이상 쓸쓸하지 않으니까요…….”


……?”


키미시마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단번에 흘러나왔다.


, 외로웠습니다, 계속!

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다시 태어났더니 용사님과 만나긴커녕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혼자서 알 수 없는 곳에 내보내진 것 같아서…….

사실 예전의 세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저의 기억과 힘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해져서…….

그럴 때 용사님과 만나게 되어 흥분하여 이런 짓을 저질러버렸습니다…….

하지만 같은 세계에서 온 여러분과 만났으니까 용사님에 대한 건 이제 괜찮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이 다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키미시마가 견디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애가 말한 거 어떻게 생각해?”


이해가 안되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세명 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만났지만 이 연령까지 계속 혼자였다면 자신의 기억에 의문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기억을 증명할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야 사리분별이 잘 안되겠죠…….”


그런,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마나는 흐느껴 우는 키미시마를 지그시 보고서 이윽고 불쑥 말했다.


이 애를 용서해달라는 의견이 세 개. 다수결이라면 과반수로 이미 정해진거지.”


우와 민주적인 생각이군요.”


사회 선생님이 말했어. 민주주의가 세계의 정의니까 다수결에 따르라고.”


, 그럼. 마나 씨도-”


응 나도 용서할게. 그리고 너희들이 그렇게까지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잖아.

왜냐면 그게, 옛날의 너희들의 주인이었으니까.”


말의 흐름을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이 통하는 마왕이었으니까. 그 이미지를 깨는 건 왠지 마음에 걸리거든.”


분명히, 확실히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마나가 농담 좀 한 것이다.

웃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성 이외의 부분들이 여기서 웃으면 다 끝나버린다고 경고했다.

마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나는 마음을 읽힌 게 아닐까 동요했으나 다른 것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 용서해주는데 조건이 있어!”


조건, 입니까?”


이 애가 또 다시 용사를 부활시키지 못하도록 너희들이 확실하게 감시할 것!

만약 이 애가 마음이 변해서 이상한 짓을 한다면 너희들도 같은 죄로 벌을 줄거야.

어떤 벌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받아들일 수 있겠어?”


시대착오적인 연좌제.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한 말을 취소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울상이 된 얼굴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는 만족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상냥함조차 느껴지는 목소리로 키미시마한테 말했다.


이렇게 됐으니 이야기한 결과 다수결로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어.

이 구제불능의 삼인조를 본받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모처럼 새로운 인생이잖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적당히 살아.”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용서한 것은 우리들 뿐이야. 사과해야할 사람이 또 하나 있잖아?”


…….”


키미시마는 눈물을 닦고 일어서서 마나와 같이 칸다의 곁으로 향했다 .나와 겐지와 카츠아키도 그 뒤를 따랐다.

5명이 주위를 에워싸는 것을 기다린 것처럼 칸다의 입에서 으으응……이라는 소리가 새었다. 그 후 몸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말해두는 건데, 언니의 한표는 백표랑 똑같아.”


민주적이 아니라는 것을 살짝 귓속말로 들은 키미시마가 한층 더 긴장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칸다의 눈꺼풀이 살짝 열렸다. 한 번 눈부셔서 감은 후에 이번에는 눈꺼풀이 크게 열렸다.


……. 안녕.”


제일 처음에 말한 것은 그거였다. 그리고 멍한 눈동자가 자기를 지켜보는 다섯 사람들에게 차례로 움직이더니-


……어라, 마나? 나 자고 있었어? , 키타세 군? 아이바 군과 우라카와 군, 키미시마 씨?

, 왜 다들 내 방에? 어라, 여기는 어디야? 학교의 체육관? 지금 체육 수업이…….

아앗 나 왜 이런 복장이야---어라?”

 

 



, 겐지, 카츠아키 3명은 몸을 질질 끌고 가는 것처럼 역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하늘에 잔뜩 있는 별들과 빛나는 전등의 빛을 받으면서 뚜벅뚜벅, 뚜벅뚜벅.


지쳤어. 뭔가 이제 흐물흐물이라고 나.”


갑자기 겐지가 슬쩍 그렇게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습니다.”


나도 그래. 내일이 연휴라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오른팔을 어루만졌다.

학교에 나온 후부터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한 것이다근육통이다.

불길한 검을 마력으로 실체화시킨 겐지는 오한과 권태감을 느낀 것 같고

작열의 불을 뿜은 카츠아키는 목소리가 쉰데다 입술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서……요약하면 구운 문어처럼 되었다.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될지도 모른다.

5일 전에 시작된 이 사건이 어쨌든 끝났다는 생각이 피로가 되어 몸과 마음을 짓누른 것이다.


누워서 설을 지내는 게 아니라 누워서 연휴를 지내게 되겠구만 우리들.”


너랑 같이 취급하지마. 오늘 푹 자서 피로를 풀고 그 다음에 착실하게 공부하면서 지낼거니까.

걱정되는 일이 해결됐으니 오랜만에 집중할 수 있겠어.”


너는 그것 뿐이구만…….”


당연하지. 공부야말로 학생의 본분이니까 말이지.

카츠아키는 뭔가 예정 있어? 괜찮다면 같이 공부할래?”


카츠아키는 가볍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엄마랑 쇼핑이라는 아주 소중한 예정이 있으니까요.”


거기서 일단 대화가 끊겼다.


칸다한테도 권해볼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겐지는 앞을 향해 원망스러워하는 말을 했다.


근데 저쪽은 기운 넘치는구만…….”


칸다 자매 그리고 키미시마는 우리들보다 조금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다.

내용까지는 다 들리지는 않지만 때때로 웃음 소리가 들렸고 그 때마다 즐거운 듯한 옆얼굴이 보일락 말락 했다.


우리들은 이번 사건에서 부외자에 가깝잖아. 근데 왜 이쪽은 지치고 당사자인 저쪽은 저렇게 기운이 넘치는 거야?”


신기한 일이군요.”


바보 여자도 아까 울면서 사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고 있고, 어떻게 된거야.

마왕님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고.”


여성은 알 수 없군요.”


카스미 양도 이상하잖아. 왜 저렇게 시원스럽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거지?”


집까지 키미시마가 와서 나가서 함께 놀고 있는 도중에 잠들어서 키미시마가 학교의 체육관까지 옮겼다.

언니가 집에 없는 것을 안 마나는 오빠처럼 의지하고 있는 우리들을 불서 같이 체육관으로 갔다.

칸다가 눈을 뜬 게 딱 그 때. 이것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당황해하는 칸다한테 마나가 한 설명이었다.


이상하잖아. 왜 믿을 수 있는 건데. 어디부터 딴지를 걸어야 하는 거냐.”


마나 씨는 옛날부터 미아가 된 칸다 씨가 있는 장소를 딱 맞췄다고 하잖아요.

이번에도 그거랑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그렇다고 해도, 키미시마가 집에 오지도 않았잖아. 놀았다는데 놀지도 않았고.

체육관으로 옮겼다니 왜 그렇게 되는데. 애초에 사람 하나를 여자 고등학생이 어떻게 옮긴다는 건데.”


매료마법의 영향으로 기억이 애매하게 된 탓이겠죠. 그리고 세세한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니…….”


세세한 거라는 게 뭘까……. 정말이지 기억이 없다고 해도 그 용사의 환생이라니.

빛의 파동이 없으면 절대로 못믿었지. 아니 진짜로 그 용사인가?

우리도 마왕님도 사실 전혀 다른 누군가를 착각한 거 아닐까.”


아뇨 틀림없는 용사입니다.”


카츠아키가 그렇게 뚝 단언했다.


또 딱 잘라서 말하는구만.”


마나 씨가 세계정복이 어찌돼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분명 칸다 카스미라는 사람이 언니여서 그런 거겠죠.

마왕을 봉하는 것이 용사라면 칸다 씨 이상의 용사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알고 있는 용사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아무런 희생을 내지 않고 그것을 달성했으니까요.”


……뭐 그렇지.”


나는 납득하고 수긍했으나 겐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 감동의 용사와 마왕 자매의 그늘에 희생이 고려되지 않은 우리들이 있다는 거지.”


과장이 심한데. 희생까지는 아니잖아.”


충분히 희생이야. 한발짝 잘못 됐으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용사의 모습을 한 빛에 날라갔을 때 저세상의 시가 떠올랐다고.”


……기이하네, 사실 나도 그랬어. 베어졌을 때 떠올랐지.”


저도 그랬습니다. 설마 시낭송부의 첫활동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발표할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어떨까……. 생명줄 없이 줄타기를 앞으로 계속 할 거 같은 예감만 드는데……."


이 때 앞에서 걸어가던 세명 중에 마나가 뒤를 돌아봤다. 그대로 다리를 멈추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들 너무 어두운 거 아니야? 무슨 일이야.”


……장래의 불안을 느꼈습니다. 인생계획을 다시 짤 필요가 있는 거 같아서.”


뭐야 그게?”


겐지는 대답 대신에 어깨를 처지게 하였다.


뭐 너희들의 장래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데. 그것보다 오늘은 그럭저럭 내 기대에 부응했잖아.

너희들에 대한 평가점을 +1 해줄게.”


……영광입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손을 써야 됐으니까 감점 3. 그리고 노조미에 대한 보고를 소흘히했으니까 감점 10점.

다 더하면 어라, -12점이잖아. 패널티는 적당히 생각할테니 잘 부탁해.”


바보 여자를 지켜보는게 패널티가 아니었나요?”


무슨 소리야. 그것과 이거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럼 어떤 패널티를 줄까. 생각하는게 즐겁네.”


매우 들뜬 마나의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점점 더 축 처지는 겐지의 어깨. 나는 그것을 곁눈질하고는 화재를 돌렸다.


그런데 도착하는 게 상당히 빠르셨네요. 제 계산으로는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택시 운전사를 위협해서 속도를 내게 했다든가는 설마 하지 않았죠?”


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시간이 걸리니까 택시를 타지 않았어.”


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학교까지?”


부유마법으로 날라왔어. 차타고 도로로 가는 것보다 날아가는 편이 빠르니까.”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내일 아침신문 지방란에 UFO가 나타났다든가 소녀의 망령을 봤다든가 라는 기사가 실리는 건 봐줬으면 좋겠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안봤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라고 물으려고 했으나 카츠아키가 앗하는 소리를 내었다.


택시를 사용하지 않았다니. 저희들이 탄 거를 마나 씨 집 앞에 기다리게 했는데……. 가서 괜찮다고 되돌리셨나요?”


? 아니 그러지 않았는데.”


그럼 요금 카운터는…….”


계속 올라가는 거 아냐? 잘 모르지만.”


, 그럼 요금은 누가?”


너희들이잖아 당연히. 타지도 않은 내가 지불을 해야겠어?”


하지만 칸다 씨 구출작전에 필요한 비용이 자기부담이라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카츠아키의 정론에 거북한 침묵이 흐른 뒤 마나는 천천히 척하고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너희들의 패널티를 정했어! 택시비를 내도록!”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칸다와 키미시마가 있는 곳으로 잔달음질로 뛰어가버렸다.

높은 위치에 있던 카츠아키의 머리가 낮아졌다.


……엄마. 모처럼 주신 용돈을 이런 곳에 써버리는 걸 용서해주세요.”


한탄하는 소리는 아스팔트 지면의 빨려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요금을 줄이기 위해 달릴만한 기력은 없는 것 같다.

마나가 떠나고 난지 얼마 안있어서 종종걸음으로 온 인물이 있었다. 칸다였다.


셋 다 오늘은- 어라, 아이바 군과 우라카와 군,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거야!?

어딘가 몸이 안좋은 거야? 아니면 설마 마나가 뭔가 심한 말을 한 게-”


아니 둘 다 좀 지쳐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것보다 무슨 일이야?”


칸다는 겐지와 카츠아키를 신경쓰는 듯 했으나 두 사람이 다리를 움직이는 것만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나와 나란히 서서 말했다.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안했어. 마나 씨가 불러서 따라간 거 뿐이니까. 그리고 감사는 학교에서 나갈 때 여러 번 들었는데?”


응 그래도 계속 말하고 싶었으니까.”


우리들은 친구잖아. 이 정도로 하나하나 감사하다고 하면 좀 어색하잖아.”


……전학 오고 나서 계속 모두한테 신세만 졌는데. 그래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친구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적어도 우리들은 그래. 훨씬 더 옛날부터 겐지와 카츠아케한테 신세를 졌지만 저쪽도 나한테 신세를 졌어.

칸다가 볼 때는 이런 우리들은 친구 사이가 아닌 걸로 보여?”

칸다는 놀란 듯 눈을 끔뻑이면서 우리들을 차례대로 보았다. 그러더니 쿡하고 웃었다.


매우 사이 좋은 친구 사이로 보여.”


카스미 양, 속으면 안돼. 맞는 말은 테츠지로가 우리들한테 신세를 졌다는 것 뿐이야.

우리들은 친구라는 그런 좋은 게 아니야. 그냥 질긴 악연이야.”


그 말이 맞습니다. 이런 인연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갔으면 하는데 말이죠.”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하는 겐지와 카츠아키. 그 말에도 칸다는 쿡쿡 웃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지만 칸다는 우리들로부터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칸다는 얼마 안 있어 다시 입을 열였다.


모두 고마워.”


이제 괜찮아. 감사인사는 이제 됐어. 우리들에게 말할 건 마나 씨한테 해줘.”


그게 아니야. ……있잖아 나, 꿈을 꿨어.”


? 아까 잠들었을 때?”


. -꿈 속에서 말이야, 나는 내가 아니었어.

갑옷을 입고 검을 가지고 옛날 이야기에 나올 거 같은 괴물과 싸우고 있었어……. 엄청 무서웠어.”


나의 다리가 멈췄다. 겐지와 카츠아키도.


그렇구나, 그건 무섭겠네. 응 무서워, 무서워하는게 당연해.”


엄청 무섭네요. 저도 닭살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괜찮아! 그런 꿈은 두 번 다시 꾸지 않을 테니까. 여기에 있는 모두가 보증할게.”


멈춰선 칸다한테 우리들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 . 그래서 말이야 그 꿈에 대한 거 말인데-”


이제 괜찮아. 무서운 꿈을 떠올릴 필요는 없어.”


아니, 여기서부터가 좋은 장면이야. 꿈 속의 나는 괴물한테 질 것 같았는데 그것을 구해준 사람들이 있었어. 누구인거 같아?”


……누군데?”


키타세 군, 아이바 군, 우라카와 군, 셋이서. 세 사람이 괴물을 쫓아내고 나를 구해줬어. -그러니까 고마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처음에는 작았는데 점점 커져서 웃음이 되었다.

겐지와 카츠아키도 웃고 있다. 어느새 세 명 다 크게 웃고 있었다.


역시 웃기지, 이런 유치한 꿈은. 아 왜 내가 이야기했을까…….”


얼굴을 붉히면서 몸을 움츠린 칸다한테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좋은 꿈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꿈은 꿈일 뿐이지만 좋은 꿈이야.”


……그런건가. 응 나도 좋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어!”


칸다도 웃었다. 겐지와 카츠아키가 무슨 일인지 뒤돌아봤지만 우리들은 계속해서 웃었다.

이윽고 웃음을 멈춘 칸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건?”


이제부터 잘 부탁한다는 악수!”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려고 손을 내민 칸다의 저편을 바라봤다.

마나는 방긋 웃으면서 보지 못한 척했다. 그게 전부였다.

칸다가 빛의 파동을 다시 방출하게 되자 어둠의 파동으로 그것을 상쇄하고 있으나 직접 만져도 괜찮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을 내밀었다.

아픔과 충격의 저편에서 느껴지는 작고 부드러운 감촉. 날아갈 것 같은 의식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자 드디어 손이 떨어졌고, 그 다음에 겐지와 카츠아키한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웃으면서 손을 흔든 칸다가 제자리에 돌아가자 이번에는 마나와 키미시마가 둘이서 웃었다.

남은 세 사람이 방금 전 삼도천을 건널 뻔 했다는 것을 모른채.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나인데 이제부터 잘부탁한다니……. 진짜로 평생 휘둘리는 거 아니야, 이거?”


겐지가 숨을 거칠게 쉬면서 그렇게 말하니 카츠아키도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겠죠.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칸다 씨가 용사 이상의 용사라면 저희들 같은 건 저항할 수 없으니까요.”


……알고 있어. 그 말이 맞아. 상대가 용사라면 우리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지.”


체념의 기운이 가득한 두 사람에게 나는 휘청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크게 동의했다.

세계는 변했다. 가치관도 변했다. 용사와 마왕님도 변했다. 우리들도 변했다. 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래. 우리들은, 용사한테 이길 수 없어.”


고개를 드니 맑게 갠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