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도 절반이 지나니 이제 학생들로부터 방학병같은 것도 사라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하루의 태반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학생들 누구나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팔팔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은 이 무렵이 되면 각자의 입장이 선명하게 되기 때문인 것도 있다.
1학년은 학교생활 사이클도 새로운 인간관계도 익숙해져 힘이 넘치는 시기고, 3학년은 졸업후를 눈여겨 보느라 여러 가지로 바쁠 것 같다.
그 사이에 끼인 2학년도 한가한 건 아니다. 2학년은 2학년대로 할 일이 많이 있다.
방과후 즉 부활동이 이 스이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시간이 되면 그것이 현저해진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부에서는 3학년이 은퇴하고 있다.
그러니까 2학년은 3학년이 빠지더라도 부가 주저앉지 않도록 1학년을 끌어들여 힘내고 있다.
그것은 여기까지 미치는 청춘의 외침을 들으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아무런 연도 없는 존재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이다.
“미분 녀석, 이 나를 여기까지 애먹일 줄이야.”
나는 한손에 펜을 들고 수학을 공부하는 중.
“카츠아키, 회복이 느려. 빨리, 빨리.”
“정말이지 가끔은 겐지군이 힐러하세요…….”
겐지하고 카츠아키는 휴대형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시낭송부는 오늘도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
“아아 죽어버렸다. 드래곤의 브레스로 통구이가 됐네. 카츠아키, 네가 회복해주는게 느려서 그래.”
“겐지군이 너무 맞아서 그런 겁니다……. 다음에는 전방하고 후방을 교대하죠.”
말하는 걸 보니 동시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인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내가 또 전방을 맡을거야. 너는 후방에서 회복을―아, 오고 있구만.”
게임기를 바꾸어든 겐지의 얼굴이 올라간다.
누가 온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오늘은 무슨 용무일까요.”
“또 다시 자택으로 초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은 게임기를 책상에 놓았다. 나도 펜을 놓았다.
“여동생님과 얽히는 것도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들은 의자에 앉아 목 언저리를 정돈했다.
꽤 익숙해졌다고 해도 긴장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좀 지나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되어 이제는 잘 안다고 해도 좋을 얼굴이 들여다 본다.
“실례합니다. ―어, 어라?”
건강하게 인사한 칸다의 얼굴이 갑자기 어리둥절하게 되었다.
“오우, 카스미양. ……응, 왜 그래?”
“다들 이쪽을 향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왠지 내가 오는 거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아니, 별로 알고 있는 거 아냐. 단순한 우연이야, 우연.
슬슬 카스미양이 오지 않을까하고 이야기하고 있던 도중이었어. 그렇지, 테츠지로.”
“맞아. 그것보다 칸다는 무슨 용무야?”
“그게, 전에 키타세군한테 말했잖아. 나 수업에 쫓아가기 힘들다고.
그래서 괜찮다면 모르는 부분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부탁해도 될까?”
나는 초대도 여동생 관련도 아닌 것에 일단 마음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예전에 그런 것을 이야기 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 단 가르쳐줄 정도로 내가 잘 알고 있으면 말이지. 어느 과목이야?”
“수학. 미분이 이해가 잘 안돼서…….”
“나도 마침 그거 하고 있었어. 같이 할까.”
나는 일어서서 벽에 기댄 곳에 있는 접이식 의자를 펼쳐서 내 자리 옆에 놓았다.
엄지 손가락으로 앉으라고 독촉했지만 칸다는 약간 곤란한 듯한 얼굴을 했다.
“왜 그래? 여기에 앉아.”
“도서실에서 배우려고 했는데……. 여기서 하면 우라카와군하고 아이바군한테 폐가 되지 않을까?”
“폐같은 거 안돼. 우리들하고 카스미양의 사이인데 뭘. 테츠지로하고 마음껏 공부해도 괜찮아.
거기다가 나하고 카츠아키는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
겐지의 말끝이 사라졌다.
칸다가 내 후두부만 투시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반야가 되어있는 면상이 보였을 게 틀림없다.
“폐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자, 부디”
겐지의 뒤를 이어 카츠아키는 생글거리면서 약삭빠르게 말하고는 뒤로 슬슬 빠졌다.
그것으로 몹시 망설이던 칸다도 부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럼, 죄송하지만 실례합니다.”
칸다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내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의자를 둔 장소가 너무 가까웠던 것 같다. 최근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우습게 봤던 걸지도 모른다. 받아들여지는 빛의 파동은 수업중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이제 와서 떨어지는 것도 너무 부자연스럽고 공부를 가르치려면 필연적으로 이 거리가 아니면 안된다.
내 마음 속에서 경솔하게 맡은 것에 대한 자책감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래?”
괴로운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던 칸다가 걱정하는 듯 내 얼굴을 가까이 살펴보았다.
“나도 미분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돼서 그래.”
“그랬구나. 키타세군한테도 서투른 분야가 있었네.”
“테츠지로가 서투른 건 내가 자신 있는데.”
겐지가 훼방을 놓는다.
“알고 있다면 너도 공부해. 뭣하면 같이 알려줄까?”
“기분만으로 충분해. 두 사람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게이머들은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도록 하지.”
겐지하고 카츠아키는 의자를 칸다로부터 되도록 떨어진 구석에 가지고 나서 이쪽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리고 허둥지둥 이어폰을 끼고 휴대형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그럴싸한 핑계나 대고 말이야’라는 말을 삼키고, 나는 mm단위로 의자를 비켜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며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어때?”
“마나? 어떻냐니 평범하게 잘 있어. 무슨 일 있어?”
“전에 몇 번 화나게 해버려서 우리들을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던가, 앞으로 절대로 내 앞으로 데려오지 마라던가, 그런 말 하지 않았어?”
“설마. 싫어하긴 커녕, 너희들을 굉장히 의지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
“응. 그럴 것이 ‘만약 언니한테 조금이라도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 3명을 의지하면 돼. 분명히 힘이 되어 줄테니까’하고 말했거든.
너희들을 믿음직한 오빠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리 집은 2인 자매이고, 게다가 봐, 언니인 내가 조금 굼뜨니까…….”
칸다는 에헤헤하고 코를 긁적였다.
“……혹시 나한테 공부를 배우라는 것도, 동생이?”
“실은 그래. 사실은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면 폐가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걸 마나한테 상담했더니, ‘절대로 폐가 된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기뻐하며 가르쳐줄걸.’라고 해서.”
“……그렇구나.”
즉 이것은 마왕님으로부터 온 명령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만 도망치려고 했어도 퇴로는 이미 차단되어 있던 것 같다.
“앗, 미안. 마나가 멋대로 말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줘. 기뻐하며라니 키타세군에게 실례겠네.”
“아닙니다!”
덧붙인 칸다의 말에 반응했던 것은 카츠아키였다. 게임을 하면서 듣고 있다니 진짜 약삭빠른 놈이다.
“테츠지로군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칸타씨한테 부탁받아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에?”
“테츠지로군만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주세요, 기쁜 마음으로 돕겠습니다.
그 점을 동생 씨한테 보고할 때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그래, 나도 카스미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어!”
“고, 고맙, 습니다…….”
당황한 모습을 모이는 칸다.
나는 부실의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용감하게 큰 소리 치던 것과 반대로, 애수에 잠긴 등짝이 있었다.
구석에 있는 것을 보니 한겨울에 무심코 기어나온 해충이 연상된다.
―경솔한 행동이 살충제에 휩싸이는 운명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아는, 불쌍한 버러지.
나도 두 사람과 비슷한 모양의 등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칸다가 전학해온 반개월 즈음.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이 우는 아이도 그치는 삼마장의 말로인가하고.
정신이 들자 칸다가 살피는 듯한 눈을 이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말이 기분을 달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를 묻고 있다.
“동생의 말이 맞아. 사양같은 건 안해도 되니까 언제라도 의지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즉석 스터디 그룹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칸다는 수업에 쫓아가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기본적인 이론 부분은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르는 부분만 가르쳐주고 나머지는 실제로 문제를 풀고 해법을 패턴화하는 수법으로,
그다지 시간이 들지 않고 교과서 수준을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쪽도 결실이 있었다. 공부는 타인에게 가르치면 가르치는 쪽도 이해력이 오른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그야말로 맞는 말이었다.
머리 속에만 있던 것을 알기 쉽게 정리하여 말로 바꾸는 작업은, 자신의 지식을 정리하고 바로잡는다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빛의 파동의 영향도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지 않다. 가르친다는 신선한 행동이 집중력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으으음, 여기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방정식에 대입하면 돼. 그러면 답이 나올 거야.”
역시 학문은 좋다.
지식을 쌓아 세계의 진리를 파헤치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즐겁다.
갑자기 귀여운 무늬가 들어간 펜을 놀리던 칸다가 ‘어라’하고 소리를 냈다. 보니 노트에 써넣은 숫자에 흰 자국이 나있었다.
“잉크가 떨어진거야?”
“그런 것 같아. 곤란하네, 검은펜 다른 거 있었나…….”
가방에 손을 뻗은 칸다한테, 나는 쓱하고 자신의 펜을 내밀었다.
“이거 써.”
“괜찮아?”
“써도 돼. 많이 있으니까.”
와이셔츠의 가슴 주머니에서 다른 펜을 꺼내 손가락 위로 돌렸다.
“필통에 넣는 것 이외에도, 언제나 몸에 펜을 지니도록 하고 있어.”
“그렇구나.”
“그런 습관이 있으면 편리해. 펜이 다 떨어지는 일도 없고 게다가 언제나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구나, 역시 키타세군이야. 나도 그렇게 해볼까.”
감탄하고 있는 칸다. 겐지하고 카츠아키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다면 그 펜 줄게.”
“에?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집에 산더미만큼 있으니까 사양하지마.”
볼펜 동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고양된 나는 억지로 칸다에게 펜을 주었다.
“그럼…….응, 고마워 키타세군. 소중히 할게.”
칸다가 펜을 받았다.
그 순간 전신에 전류가 달렸다. 칸다의 손끝이 내 손가락에 닿아버린 것이다.
직접 흘러들어오는 빛의 충격에 나는 뜻하지 않게 펜으로부터 손가락을 떼었다.
모처럼 좋은 기분이었는데 찬물이 부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칸다는 그런 나를 눈치 못채고, 가방으로부터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거기에 들어있는 토끼 스티커를 펜에 붙였다.
“에헤헤 귀여워졌다!”
정말이다. 무미건조한 검은 펜이 스티커 하나로 환해졌다. 여자애의 이런 센스는 배우고 싶어도 남자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이 펜, 소중히 할게. 키타세군처럼 항상 가지고 있을게! 필통을 잊었을 때라던가, 분명 도움이 될거야.”
필통을 잊으면 펜을 가지는 것도 잊는 거 아닌가,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딴지가 쓸데없을 정도로 칸다는 기뻐하고 있었다.
각자 새로운 펜을 사용하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휴식을 취한 것은 학문에 대한 정열을 가지고 있어도 머리와 어깨의 피로가 신경쓰이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손목시계에 눈을 돌렸다.
“벌써 5시가 지났나. 시간 참 빠르다.”
“2시간 가까이 신세지고 있었네.”
창문 밖은 아직 밝지만 하늘에는 석양빛 같은 것이 감돌았다.
이 끈질진 늦더위도 이제 겨우 가을한테 자리를 양보할 기분이 되었나보다.
끝맺기에도 알맞고 이 문제가 끝나면 마치기로 할까.
그렇게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아서 실제로 소리가 났는지 어떤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겐지와 카츠아키한테 들릴 리가 없어서 그런지 두 사람은 등을 돌린 채로 있었다.
칸다도 노크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 저편에서 그 후 아무런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
혹은 테니스부가 볼을 라켓으로 치는 소리 같은 걸 노크하는 소리로 들은 것일까.
나는 이번에야말로 아까 하려던 말을 하려고 했다.
“이 문제가―”
그 뒷내용이 소리로서 공기에 전달되는 것보다 먼저, 목소리가 지워졌다.
방의 문이 갑자기 열린 것이다.
거기에 있던 것은 칸다와 비슷한 체격의 여자애였다.
교복에 있는 학교 휘장의 색을 보니 1학년인 듯하다. 하지만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여자애는 문을 연 채로 꼼작도 않고 물끄러미 방 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했다.
“갑자기 뭐야. 아니 그보다 누구야.”
역시나 문 여는 소리는 이어폰 너머 도달한 것 같다. 목만 돌린 겐지가 그렇게 물었다.
게임의 상황이 안좋았던 것인지 조금 불쾌한 것 같다.
여자애는 눈동자를 겐지쪽으로 움직였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어리지만 눈을 가늘게 떠 위엄있는 표정에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카츠아키, 네가 아는 애 아냐? 여자와 얽힌 건 네 영역이잖아.”
재촉되자 카츠아키도 얼굴을 문으로 향했다. 외모가 좋은 카츠아키는 여자한테 꽤 인기가 있다.
마더콘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대라는 조건이 붙지만.
“아뇨, 모르는 애입니다만……. 저기, 너, 나한테 볼 일 있니?”
여자애는 그래도 입을 다문 채였다.
겐지하고 카츠아키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맞댔다.
“혹시, 입부를 희망하는 애 아니야?
상급생만 있으니까 긴장해서 제대로 말 못하는 걸지도.”
칸다가 슬쩍 그렇게 속삭였다.
신입부원일 가능성따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성가시다.
이 부는 시낭송부이면서 시낭송부가 아니니까.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여자애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 앞에 있던 것은 나―는 아니고, 내 뒤쪽.
“에? ……. 나? 나,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는거니?”
질문을 받자, 여자애가 어깨를 떨면서 부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동안 그리웠습니다, 용사님!”
정신을 차렸을 때 여자애는 온몸을 사용해 칸다한테 안기고 있었다.
나는 눈 앞에 일어나는 사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군가?
갑자기 부실로 들어와서는, 우리들을 무시하고, 칸다한테 안겨서는―
“자, 잠깐, 뭐야? 무슨 일이야? 뭐가 일어난거야?”
덮쳐진 칸다는 의자에서 떨어져서 바닥에서 여자애한테 깔리는 형태가 되었다.
게다가 완전히 혼란 상태인 듯, 껴안아진 채로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남자 3명은 눈을 껌벅거리는 걸 단지 반복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기운이 넘치는 건 정체불명의 여자애뿐.
조금 전에 위엄있는 얼굴과는 전혀 다르게 지금은 희색만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칸다한테 안겨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복도를 지나다가 그리운 기색을 느끼고, 설마, 설마하고 생각했습니다만―
용사님이 이 학교에 계실 줄이야!”
“요, 용사님?”
“예, 저의 용사님이에요! 이 따뜻한 파동, 틀림없습니다!”
여자애는 감격에 겨워 칸다에게 볼을 비볐다.
잠깐 기다려.
어째서 이 여자가 칸다가 용사인 걸 알고 있는 거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나, 겐지, 카츠아키 그리고 마나. 이렇게 4명일 터.
그런데 이 여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저 여자를 떼어놔야 해!”
의문의 답이 나오려고 할 때 카츠아키의 뒤집힌 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정신을 되찾은 나는 여자애한테 달려들어 칸다로부터 떼어놓았다.
“무……. 무슨 짓이에요!”
“너야말로 뭐지? 생판 남한테 갑자기 안겨오다니 상급생으로서 탐탁지 않구만.”
어거지로 만든 미소에 나 자신도 섬뜩한 간사한 목소리.
나는 단지 여자애의 양어깨를 뒤에서 잡고 있는 손가락에 충분히 힘을 주고 있었다.
“타인이 아니에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시낭송에 흥미가 있는 거구만.
하지만 입부하려면 일단 나하고 이야기를 해야한단다.”
“시낭송도 당신도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여기서만 하는 얘긴데, 지금 괴테도 놀랄 정도의 시가 떠오를 것 같거든.
미안하지만 좀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서로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하면서도 여자애는 어떻게든 나한테서 벗어나려고 날뛰고 있다.
하지만 이 체격차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분 나가십니다!”
겐지가 재빠른 움직임으로 문을 열였다. 나는 여자애의 등을 붙잡은 채로 강제로 부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바로 문을 닫아 안쪽에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열어주세요! 모처럼 용사님을 만났는데 당신들은 어쩔 생각입니까!”
문 저편에서도 밀어젖히려고 하고 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시낭송의 마음가짐은 고전의 마음! 예의범절도 중요하지!
예의를 모르는 너는 시낭송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
그렇게 외치는 동시에 저항이 없어졌다. 조용해졌다.
손잡이에 둔 손을 조금 느슨하게 하고 있으니 저편에서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예의를 잊고 있었네요. 용사님을 대하는데 실례했습니다.
다시 찾아올 테니 다음에는 둘이셔 편안하게 만나도록 하죠…….”
그 뒤로 복도쪽에서 반응은 없었다.
“돌아갔나, 보네.”
나는 문에 등을 맡기고 마루에 앉았다.
“카스미양, 괜찮아?”
“으, 응.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애는 왜 그러는 걸까?”
칸다가 몸을 일으켜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겁내거나 무서워하다기보다는, 영문을 몰라서 혼란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카스미양,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
“응, 모르는 애였어. 하지만, 저 애는 나를 아는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이지?”
“무, 무슨 일이라고 해도 말이지…….”
“게다가 용사님이 어떻다고―”
“아, 아니, 그런 말은 안했어. 하지 않았지. 그렇지, 카츠아키.”
“네, 말하지 않았죠! 칸다 씨가 잘못 들은 겁니다.”
“에? 아니, 그럴 리가…….키타세군은 들었지?”
“그, 글쎄. 그 애를 칸다한테서 떼어놓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어서.
어느 쪽이든 저런 이상한 여자애가 말하는 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돼.”
“으, 응. 하지만…….”
칸다는 갑자기 불안한 듯한 얼굴이 되었다.
어리둥절한 것이 약해지면서 공포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야 무서울 것이다. 본 적 없는 인간이 아우성치며 껴안으러온다면 나라도 무섭다.
“아무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우리들이 집까지 데려다줄게.”
“그래. 혼자 있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저 바보 여자가 또 올지도 모르고.”
겐지가 가방을 집으려고 하니, 카츠아키가 손으로 제지했다.
“조금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그렇군요, 10분정도면 끝나는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조금만 열였다.
그리고 복도에 그 여자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가슴에 손을 대고 호흡을 가지런히 하고 있는 칸다를 진정시키고 있는 동안 카츠아키가 돌아왔다.
“기다리셨습니다. 그 여자의 정보를 입수해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말로? 겨우 그 정도 시간으로 어떻게?”
“복도를 걷고 있던 1학년 애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녀의 용모를 전하고 알고 있냐고 말이죠.
운좋게 같은 반애여서, 바로 여러 가지로 알려주더군요. 요즘 여자애는 굉장합니다.”
예전 합성수이며 현재 마더콘인 사내, 카츠아키의 좋은 외모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칸다의 집에 도착했을 때 즈음, 칸다는 이제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
데려다 준 답례로 차라도 마시고 가라는 권유를 전력으로 사양하고 우리들은 칸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자, 3명이서 한숨을 쉬었다.
“또 다시 귀찮은 것이 굴러 들어왔군요…….”
카츠아키의 질린듯한 목소리가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들은 사람의 왕래가 드문 길로 역을 향하여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카츠아키가 손에 넣은 정보에 의하면, 여자애의 이름은 키미시마 노조미. 1학년으로 반은 A반, 소속부는 없음.
성적이 우수하지만 남하고 잘사귀는 성격이 아니라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고 한다.
“친구가 없는 것은 성격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칸다 씨가 있을 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전에 한번 전세가 어떻다든가 떠든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걸로 기분 나쁘다고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결정됐구만. 그 바보 여자, 분명히 예전 세계의 관계자야.”
“분명 그렇겠지.”
칸다에 대한 것을 일방적으로 알고 있고 용사라던가 빛의 파동이라던가 말했다.
그 이유는 요컨대 우리들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이 이 세계에 왔을까. 그 때 마왕성의 왕좌 주변에 있던 것은, 마왕님하고 용사하고 우리들뿐이었을 텐데.”
“그렇지? 대체 누구지, 그 여자는.”
“용사한테 님을 붙이고, 빛의 파동이 따뜻하다고 말했습니다. 용사측의 인간이겠죠.”
“그건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모르겠네.”
키미시마 노조미의 언행으로 볼 때 용사한테 꽤나 깊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의 태반이 용사를 신같이 우러러 받들고 있었다. 상대방만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도 크다.
어느쪽이든 인물을 특정하는데 판단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누군가인지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그것보다 키미시마 노조미 씨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칸다와 만나게 하는 것만은 피하게하는 게 좋겠지.
2명뿐인 상태에서 이야기라도 하게 된다면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야.
최악의 경우, 용사의 기억이 부활하게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어.”
“당분간 카스미양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겠군.”
“그래, 혼자있게 하면 안돼.”
우리들하고 같이 있으면 오늘같이 키미시마를 쫓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칸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
갑자기 저런 짓을 당했으나 칸다도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저 성격이 걸린다.
느긋하게 키미시마하고 이야기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갔으니 문제는 없겠지. 마왕님도 있고.”
“그 방면은 안심할 수 있겠어.”
칸다한테는 넌지시 마나한테 키미시마에 대한 것을 상담하도록 권해두었다.
마나라면 키미시마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해 줄 것이다.
“용사측의 인간이라면 마왕님의 어둠의 파동에 한방감이니까 말여. 우리들이 카스미양을 만지면 저승에 가게 되는 것 같이.”
“집에서는 마나 씨한테 맡기기로 하고, 학교에서는 저희들 중 누군가가 항상 칸다 씨 근처에 있도록 하죠.
같은 반인 테츠지로군이 적임이지만, 방과후에는 오늘같이 함께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요.”
나는 수긍했다. 키미시마가 다시 오지 않게 하려고라고 정직하게 말하면 칸다도 같이 돌아가는 것에 동의해줄 것이다.
결론이 나왔을 때 겐지가 북북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이거 임시방편밖에 안되는구만.”
“그렇네요. 언젠가 칸다상한테 접촉하고 말겠죠.”
“그렇게 되기 전에 키미시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키미시마가 알고 있는 용사하고 칸다 카스미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준다면, 더 이상 다가가려고 하지 않겠지.”
“그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은 알고 있으니, 조만간 저희들 쪽에서 방문하도록 하죠.”
“사리분별이 좋은 성격이라면 좋겠는데.”
“글쎄 어떨까, 그건―”
거기서 겐지의 말은 중단되었다. 멈춰서서 좁은 길의 전방을 손가락질했다.
“뭐야, 저거”
조금 앞에 있는 작은 사거리, 그 한가운데서 등을 향한채 통학용 가방을 한손에 든 키가 작은 여자애가 있었다.
뒷모습만으로 알았다. 우리들과 같은 학교의 여학생용 교복을 입고 있다.
그것뿐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여자애는 사거리에서 멈춰 선 채로 묘하게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때때로 생각에 잠기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수상하다.
뭐지하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왼편으로 향한 여자애의 옆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것은 조금 전 막 알게 된 얼굴이었다. 바로 사건 속 인물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키미시마 노조미 씨가 아닙니까!”
“정말이다 그 바보 여자네. 뭐하고 있는 거지, 저런 곳에서”
“어쩌면 쫓아온 거 아냐. 우리들, 이라기 보단 칸다를.”
“설마요 코마바군도 아니고. 그가 그런 짓을 한건 신문의 소재를 찾기 위한 거였죠.
그렇지도 않은데 쫓아오다니 그거 세상 상식으로 스토커라는 겁니다.”
그 때 키미시마가 갑자기 배후, 요컨대 이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좌우로 너무 많이 움직여서 눈이 핑핑 돌아서 그런걸까. 다리가 꼬이면서 등을 힘껏 뒤로 젖히고 말았다.
“앗, 왓…….”
어떻게든 밸런스를 잡으려고 팔을 빙빙 돌리는 키미시마. 손에서부터 가방이 흘러 떨어졌다.
“이봐요 키미시마 씨!”
카츠아키를 선두로 우리들은 달려들었다. 뻗은 카츠아키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잡는 것보다 먼저 키미시마가 결국 털썩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아야야…….”
허리만 올려서 스커트 위에서 아스팔트에 부딪쳤던 곳을 문지르는 여자애.
그것을 내려다보는 크고 작은 남자 3명.
갑자기 거북한 분위기가 흘렀다.
“……괜찮습니까. 자 붙잡으세요.”
카츠아키가 헛기침을 한 번하고 손을 내밀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다니 부끄러운 모습을…….”
문지르는 손의 반대 손으로 마주잡으려는 키미시마. 그 손이 갑자기 멈췄다.
“당신들은―”
올려다보는 눈이 우리들한테 차례대로 돌아간다.
“아까 저를 용사님 앞에서 쫓아냈던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용사님이 아니라 칸다 씨이지만. 조금 전에는 난폭한 짓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어쨌든 일어서주세요. 키미시마 노조미 씨, 당신한테 할 말이 있습니다.”
재촉당한 키미시마는 카츠아키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손을 도로 당겼다.
“……혹시 보였나요?”
뺨을 약간 붉히고 물어본다. 물론 나는 그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고 있다.
“무엇이 말입니까?”
둔감한 남자, 카츠아키가 이상하다는 듯 바보같이 정직하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저…….”
“걱정 안해도 돼. 우리들 중 누구든 어린이용 팬티에 흥미 없으니까”
보였던 것 같다. 만일을 위해서 말해두지만, 순간 눈을 딴데로 돌린 나는 정말로 보지 않았다.
키미시마는 점점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런데도 뻗친 손을 의지하여 일어서고, 치마에 붙은 모래를 3, 4번 털어냈다.
그것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면서 카츠아키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는 방치된 채로 있던 물건을 눈치챘다.
“가방, 떨어트린 채로 있는데.”
“엣? ……앗.”
그 말을 들은 키미시마가 다리를 접은 것은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확산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떠올렸다. 가방에 있는 키홀더같이 매달린 은색의 고리.
크기는 직경 5, 6cm정도일까.그리고 그것에 이상한 기시감이 떠오른 것이다.
언제 어디서 본 것일까? 나는 생각이 날 것 같았다.
“꺅……!”
과거로 여행을 떠난 의식을 짧은 비명이 되돌렸다.
시선을 돌리니 키미시마가 웅크리고 앉은 채로 얼굴을 붉히고 치마를 옷자락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보……. 보였나요?”
“무엇이 말입니까?”
“루프시킬 때냐! 빨리 이야기를 진행시키라고.”
겐지의 춉에 카츠아키가 날라갔다. 그 사이에 키미시마는 치마를 누른채로 갸날프게 일어섰다.
“그, 여러 가지로 상황이 나빠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키미시마 씨, 이렇게 빨리 당신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이야기라고 하는 건, 실은 말이죠―”
“기, 기다려 주세요.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평상시의 저로 돌아갈 시간을 주세요. 이, 이야기는 그 다음에…….”
키미시마는 등을 보이고는 사거리 한복판에서 좁은 길쪽으로 비틀비틀거리며 이동했다. 그녀는 민가 블록의 담장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양팔을 펼쳤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어깨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심호흡이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들은 그쪽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또 되돌아 왔다.
나는 눈썹을 가늘게 했다. 마주대하는 키미시마가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홍조하고 있던 볼이 지금은 눈같이 하얗게 되어있어 부끄러워했던 기색은 어디에도 없다.
가방을 가지고 서있는 것뿐인데 매우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화가 큰 것은 눈이다.
조금 전에 허둥지둥 흔들리던 눈이 지금은 차가움마저 깃드는 빛을 발하여, 우리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키, 키미시마 씨,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저희들은 결코 수상한 자가 아니니까요…….”
여기까지 대화를 이끈 카츠아키도 변화에 곤혹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이 막혀버렸다.
“이야기할 게 있다고 했는데, 저도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키미시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건 또 조금 전까지와 다르다, 담박한 억양의 침착한 목소리.
부실 앞에서 떠날 즈음에 던졌던 말과 같은 기세였다.
“그 분을 어디에 숨긴 겁니까?”
“숨긴다니, 무슨 의미죠?”
“집과 반대방향의 전차를 타면서까지 쫓아왔는데, 갑자기 그분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무언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키미시마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바로 이해했다. 칸다가 방출하는 빛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까 사거리에서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던 것은 그 탓일 것이다.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칸다가에서 마나가 방출하는 파동과 상쇄되었기 때문이지만, 그것을 우리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시 미행한 것인가!”
나는 무심코 엉겁결에 큰소리를 냈다. 하지만 키미시마는 태연한 채로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 침착한 모습으로 보건대 본인이 말한대로 이쪽이 평상시 키미시마고,
칸다한테 안기거나 조금 전 허둥지둥했던 때가 특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하면 ‘격차가 심하잖아’하고 한마디 불평이라도 말하고 싶지만.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키미시마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이 계속 말했다.
“당신들이 그분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겠군요. 제가 말하는 ‘느껴진다’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신 거겠죠. 뭐 좋습니다.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안 것으로 충분.
재회의 즐거움은 내일로 기약하고, 오늘은 이걸로 물러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잘 계시길. 다음부터는 정면에서 제대로 말을 걸어주세요.”
작별 인사를 남기고 키미시마는 또 다시 우리들한테 등을 돌리고 떠나려고 했다.
그 매우 자연스럽게 물흐르는 듯한 동작에 우리들은 가지런지 배웅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거기서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니야, 잘 계시길이 아니야. 우리들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 뭐죠?”
정말로 잊고 있었는지, 돌아본 키미시마한테는 기죽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쩐지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 진정될 여유같은 거 안주고 바로바로 물어봤어야했다.
나는 페이스를 되돌리기 위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두 번 다시 칸다한테 용사님이라던가 말하지 말아줘.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도 삼가주었으면 해.”
“칸다라는 건, 그분을 말하는 거군요. 어째서 당신들한테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칸다 씨는 용사님같은 게 아닌, 평범한 여자애라서 그렇습니다.”
당연한 의문에 카츠아키가 단도진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평범한 여자애?”
“그렇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는 딴사람입니다.
당신한테는 유감스럽겠지만 칸다 씨도 당신을 모릅니다.”
타이르는 듯한 카츠아키의 어조. 그에 대해서 키미시마는 다물고 시선을 허공으로 옮기며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얼마 안 있어 탁하고 손뼉을 쳤다.
“과연. 그런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이해해 주셨군요. 겨우 이 정도의 설명으로 이해하다니 성적우수는 장식이 아니었군요.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만, 어째서 그렇게 된건지 설명하자면 말이죠―”
“자주 있는 일이니까요. 용사님의 힘을 인정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몰이해한 사람들하고 마주치는 게.”
“……예?”
“하지만 그것은 큰실수. 언젠가 당신들도 깨닫게되겠죠. 그분이야 말도 평범함과는 걸맞지 않는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아아, 저의 용사님. 드디어 간신히 만나게 되었군요. 길었습니다, 정말로 길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외로운 마음이었는지, 알아주실까요…….”
후반부는 억양이 없는 것이 사리지고 넋을 잃은 말투가 되어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그린 용사한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사려깊은 분위기는 외형뿐, 확신하고나면 남의 말을 듣지않는 일직선의 위험인물.
키미시마 노조미라는 인물의 본질은 이렇다고 지금 이 순간 가까스로 알았다.
“그런 게 아니고 말이죠―”
굳은 미소를 띄우면서 오해를 풀려고 계속해서 말하는 카츠아키.
그것을 겐지는 크게 한숨을 쉬며 가로막고는 질린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말해버리면 되잖아, 우리들에 대한 거.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니까, 이 꼴을 보니.”
키미시마가 용사측의 인간인 이상 우리들이 삼마장이라고 불렸던 것은 숨겨둬야 할 사항이었다.
거의 틀림없이 원한을 샀을 테니까.
갑자기 냅다 맞거나, 그 이상의 행위를 당해도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짓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겐지가 말한 대로 그것을 밝히지 않으면 무엇을 말해도 키미시마는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같은 것을 생각한 듯한 카츠아키가 시선을 보냈다. 거기에 끄덕이니 카츠아키가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키미시마 씨, 바라건대 마음이 평안한 상태인 채로 들어주세요. 저희들은 사실―”
“죄송합니다만, 슬슬 끝을 맺겠습니다. 모르는 남자하고 길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엄하게 말씀하셔서.
그러면 안녕히. 해도 떨어질 시간이니, 돌아가는 길 조심하세요.”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떠나려는 키미시마.
“아, 그래. 그쪽도 조심해―가 아니지!”
나는 몹시 당황하여 키미시마 앞으로 돌아가서 양팔을 벌려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칸다는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라니, 네 쪽이 훨씬 평범하지 않잖아!
갑자기 껴안지, 다음에는 미행하지않나, 남의 이야기를 안듣고 있고! 자각 있는 거야!”
“테츠지로군, 진정하세요!”
완전히 흥분한 나는 카츠아키의 제지에 제정신을 차렸다.
“고함쳐서 미안하다. 기분 상하지 말아줘.”
나는 순순히 머리를 내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얼굴을 든 내가 본 것, 그것은 약간의 적의를 띈 키미시마의 눈동자였다.
“저를,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런 게 아냐. 이야기만 들어준다면 그걸로 괜찮아.”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데요, 이 상황은.”
그 말을 들고 깨달았다. 키미시마의 전방을 막고 있는 나.
후방에 우두커니 선채로 있는 겐지하고 카츠아키. 마치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한 것처럼 되었다.
“아, 아니야. 애초에 네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돌아가려고 하니까―아니, 이쪽이 잘못했어.
오해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어, 정말로.”
나는 말하면서 수십보 뒤로 물러났다. 겐지하고 카츠아키도 이쪽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키미시마의 적의는 가시지 않고 눈에 머물 뿐이었다.
할 말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키미시마가 조용하게 입을 열였다.
“나는 첫인상으로 남을 판단하는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당신들을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싫은 느낌이 왔습니다.
마치 먼 옛날부터 적으로 상대했던 것 같은 불쾌함―이것이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겠죠.”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미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마음껏 미워해주세요. 하지만 말이죠, 거기에는 제대로 된 이유가―”
“오늘은 용사님과 만난 소중한 날인데, 어째서 당신들같은 사람과 만나버린 것일까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모처럼 저의 용사님과―”
“그러니까 지금 칸다 씨는 용사님이 아닙니다. 부탁이니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래, 이 이상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뭣하니 음료라도 마시는 곳에 가서, 느긋하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참을성 많게 말을 거는 카츠아키.
외모가 좋은 카츠이키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여자아이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키미시마의 표정에서는 기쁨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는커녕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츠아키 그리고 나와 겐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무게있게 입을 열였다.
“잘 알았습니다. 당신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쩔 생각인지를.”
“네?”
“저를 악의 길로 유혹한다. 요컨대 그런 목적으로 말을 걸고 있던 거군요.”
이 녀석의 머리는 대체 뭘로 구성되어 있을까. 사고경로를 어떻게 생각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인가.
“당신들이 용사님을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용사님을 악으로 타락시키기 위한 거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곁에 떨어져있던 탓으로, 이런 자들의 접근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저의 용사님…….”
“그거 말야, 그거. 나의 용사님, 나의 용사님이라니 너는 카스미양의 뭐길래 그래?”
자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중단시키는 겐지의 질문에 키미시마는 가슴을 젖히고, 자랑스러운 색을 겸한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분과 맺어지는 운명을 지닌 자입니다.”
“매, 맺어진다니,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카스미양은 여자잖아.”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만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저는 그 분의 동료이면서―그리고 약혼자였습니다.”
안면의 근육이 전부 굳어졌다.
용사의 동료로 또한 약혼자.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이 누군지 짐작가는 정도가 아닌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내 기억의 페이지는 무서운 속도로 넘겨져서, 한 명의 인물에 멈췄다.
그런가. 그랬던 것인가.
앞뒤가 맞는다는 것은 키미시마의 말이 아닌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직소퍼즐의 조각이 척척 맞는 듯한 감각을 나는 뇌내에서 맛보고 있었다.
그야, 그렇다. 키미시마가 그 여자라면 용사한테 깊은 호의를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마왕님과 용사하고 우리들 3명밖에 없었을 터인 왕좌의 주변.
그런데 이 세계에 다시 태어난 사람이 또 한 명. 그 이유도 알았다.
키미시마의 가방에 체인으로 연결되어있는 기시감이 있었던 은색의 고리에 대한 의문점이 풀린 것이다.
아니, 고리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맞는 말이 아니다. 우리 학교는 악세사리 종류를 가지고 오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키홀더처럼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팔찌다. 어디선가 비슷한 것을 보고 구매했을 것이다.
진짜일 리가 없다. 진짜는 용사하고 같이 차원의 경계에서 무가 되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저 팔찌는 용사가 유품으로서 몸에 지니고 다닌 여성용 팔찌다.
저 여자는 분명, 용사에 대한 것을 계속 지켜보기 위해 혼을 옮겼을 것이다.
……죽음의 구렁에 처하면서.
그 때문에 저 여자는 용사하고 같이, 혼이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 지금 여기서 키미시마 노조미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앞에 서있다.
누구의 탓인가.
이건 누구의 탓이냔 말야, 대체!
나는 크게 북받치는 감정을 깃들게 해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반듯한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카츠아키의 얼굴이 있었다.
“놀랐나요?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아니, 그……알겠습니다, 당신이 누군지.
그래서 대단히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저는 말이죠…….”
“이야기를 듣지 않겠습니다. 제가 악의 길로 들어서는 일 따위, 절대로 없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과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악이라고 들으면 반론은 할 수 없으니까…….
아아, 그렇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되다니……. 그 시절의 내 목 3개를 전부 조르고 싶다…….”
카츠아키는 모기가 우는 듯한 목소리로 한탄하고 푹 무릎을 떨어트리고는 지면에 양손을 대고 말았다.
마치 개구리같은 모습이 된 예전 합성수이며 수인부족의 수호신, 카츠아키.
그런 카츠아키를 왠지 이긴 듯 의기양양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키미시마.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너에 대한 것은, 잘 알았어. 이 녀석의 머리를 밟고 싶다면 몇 번이라도 밟아줘.
체중을 전부 싣는 게 좋아, 너한테는 그런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너에 대한 것을 알았으니까 더욱더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거든. 부탁이야, 조금만이라도 좋아.”
물고 늘어지는 나한테 키미시마가 후우하고 작게 숨을 쉬고는 말했다.
“용사님의 지인이라 생각해서 참고 있었지만―악이라면, 그 필요는 없겠군요.”
키미시마는 쓱하고 집게손가락을 나한테 향했다.
그 손가락이 천천히 회전해―갑자기 내 의식이 안개를 낀 것같이 희미해졌다.
시야가 녹아내리면서, 다리와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이것이 용사님의 동료인 저의 힘입니다. 오늘은 조금만 잠들게 하는 것뿐이지만―
끝까지 용사님을 악의 길로 유혹하고 제가 용사님과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고 한다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저, 악한테는 가차 없으니까요.”
키미시마가 그렇게 말을 끝냈을 때 내 신체는 아스팔트 위에 쓰러지고 있었다.
조금 전 장소와 좀 가까운, 주택가의 한 구석에 만들어진 작은 공원.
설치되어있는 놀이 기구는 시소하고 그네뿐으로,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하교시간 무렵에는 초등학생들이 모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벌써 시간은 오후 6시가 지났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착한 어린이들은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저 바보 여자가 이 세계에 있는 건 네 탓이야! 네가 책임져.”
그런 작은 공원에서 아까부터 계속 큰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진정해주세요! 제 탓이라고 해도 말이죠―”
겐지한테 목덜미를 잡히면서 어떻게든 달래려고 하는 카츠아키.
나는 그런 두 명을 벤치에 앉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산 캔커피를 손에 들고서.
“네 탓인게 어딜봐도 당연하잖아! 바보 여자를 죽인 것은 너니까!”
“그, 그런 뒤숭숭한 것은 말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가 듣는다면 오해한다니까요.”
“오해가 있을까! 단순한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책임을 지고 네가 어떻게든 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
겐지의 분노는 가라앉는 기색이 없고 카츠아키는 방어 일변도다.
저항할 수 없는 수마에 습격당한 나한테 등을 빌려주고 여기까지 옮기고 난 후, 이 둘은 계속 이 상태다.
겐지의 기분은 잘 안다.
예전 세계에서 언제나 용사 곁에 있어, 마왕군하고 싸우는 용사를 지지해주고,
그 한창인 때 용사하고 장래를 약속하고, 최후에는 용사를 감싸고 죽은 여마법사.
그 자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팔찌에 혼을 이동시키고, 그것을 용사는 유품으로 몸에 늘 지니고 있었다.
그 마왕성 왕좌 앞에 나타났을 때도―그리고 마왕님한테 달라붙어서 차원의 경계에 빨려들어갈 때도.
그러니까 키미시마 노조미가 이 세계에 있다.
그것은 좋다.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왜 팔찌에 혼을 이동하는 처지가 된 것인가―
요컨대 왜 죽으면 안됬는가, 겐지가 문제 삼는 부분은 그것이다.
“네 드래곤 머리가 뿜은 독 브레스. 그걸로 그 여자가 죽었어. 잊었다고는 못하겠지.
네가 죽이지 않았으면 그 여자는 지금쯤 용사 대신 새로운 남자라도 만나서 그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전에도 말했지 않습니까, 그것은 불가항력이라고요. 저는 용사를 노렸는데, 그 여자가 멋대로 뛰어든 겁니다.
인간치고는 마력이 강하지만 실력은 저의 발끝에도 못미쳤던 그 여자를 일일이 노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3개 머리 전부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면서 마왕님께 보고했잖아!
용사의 가장 소중한 동료를 죽였습니다라고!”
“그 정도는 용서해주세요! 보기 흉하게 도망친 추태를 숨길 무훈이 필요했습니다.
그 싸움에서 저는 슬픔과 분노를 힘으로 바꿔 대폭 파워업한 용사한테 수족을 7개, 꼬리를 4개나 잘려서 죽을 뻔했으니까요!”
“용사가 우리들하고 호각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지!
덕분에 가신들은 죽어나지 나까지 죽질 않나, 산산조각이 났어! 그런 끝에는 마법사까지 이 세계에 데려와서 성가신 일을 일으켰지!
그 바보 여자가 카스미양 앞에서 예전 세계에 대한 것을 줄줄 말하면 분명히 용사가 부활할거라고!
이거저거 전부 네 탓이야, 책임져, 책임을.”
“그렇게 매우 별난 인과의 책임이라니 질수 있을 리가―”
나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위로 흘려보냈다.
캔커피 특유의 금속같은 맛은 좋아할 수 없지만, 카페인을 섭취한 덕분에 안개가 끼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쯤에서 그만둬, 겐지. 카츠아키를 나무라도 어떻게 되는 게 아니잖아.”
나는 빈 캔을 10m정도 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카츠아키한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 대부분 엉뚱한 화풀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게다가 나까지 같이 카츠아키를 나무라던 사태가 진전되지 않는다.
겐지도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서 일단 개운해졌는지, 머리를 긁으면서 한번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카츠아키는 도움받은 직후에 목 언저리를 정리하면서 물어봤다.
“테츠지로군, 잠기운은 이제 괜찮습니까?”
“커피를 마셨더니 상쾌해졌어.”
“역시 수면마법이었군요.”
“아마 그렇겠지. 이 느낌, 예전 세계에서도 맛본 적이 있어.”
“그렇다면 키미시마 씨는 예전 세계에서 마법의 힘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 되겠군요.”
“기다려, 간단히 말하지 마. 그건 안돼. 마법은 안되지.”
납득하는 카츠아키에 겐지가 대든다.
“그야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니까…….”
“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잖아. 초능력자일지도.
암시를 걸어 잠들게 하는 거, TV에서도 가끔 나오잖아.”
“비슷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더 대단한 겁니다.
마법사는 예전 세계에 잔뜩 있었지만 초능력자는 지금도 옛날에도 아는 사람 중에 없으니까 말이죠.”
“그거야 그렇지만, 왜 그 녀석만 마법이야.
우리들 같이 허접한 것하고 엄청난 차이라고.”
“역시 마법사 맞지 않습니까.”
“마력이라면 내 쪽이 몇 단계 위라고.
그런데 왜 바보 여자가 마법이고, 나는 괴기한 박쥐나 불러대는거야…….”
“겐지군은 할 줄 아는게 엄청 많았으니까요. 마법은 심심풀이 취미같은 거였잖아요.”
“게다가 바보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던데.
다음에는 이 정도로 끝나진 않는다고 말한 게 그 증거겠지.”
그렇게 말하고 겐지는 머리를 쥐었싸고 말았다.
나는 커피보다도 씁쓸한 기분으로 입을 열였다.
“문제는 그거구만.”
“네, 키미시마 씨도 모든 힘을 이어받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큰일은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저희들같이 응용성 없는 힘과 다르게 성가시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예전 세계에서 비슷한 정도로 마법을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면, 카츠아키 너는 그것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겠어?”
“설마요. 이 세계에서 마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용하면 문제가 많겠죠.”
“그렇지,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키미시마는 그것을 저질렀어.”
“그것은 저희들한테도 실수가 있었죠.
무엇보다도 저희들에 대한 것을 악인이라고 믿어버린 것이―”
“그거야. 그 녀석이 마지막에 한 말, 기억하고 있지. ―악한테는 가차 없다고.
거기서 카츠아키의 입가가 후다닥 닫혔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 말할 것같이 입술을 움직였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코마바 사건 때 예전의 힘을 사용했다. 하지만 사람 상대로 그런 것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해였지만 정말로 몸이 위험하다고 느꼈고 거기에 같이 있던 칸다를 지키기려고 했기에 사용한 것이다.
키미시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포위하는 것처럼 되었지만 구체적인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용했다.
그것은 신념에 의거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악한테는 가차 없다는 신념.
그리고 우리들을 악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우리들한테 마법을 사용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그런 건가.”
“키미시마는 분명히 칸다랑 만날 생각이야. 뒤를 쫓아 미행할 정도니까 말이지.
우리들로서 그것을 어디까지 방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상대는 마법을 사용하지, 상황이 너무 안좋아.”
마법이라고 해도 만능은 아니다. 그런 것보다 이 세계의 과학의 힘이 훨씬 더 대단한 것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키미시마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세계를 어떻게 할 정도의 힘은 지니지 않았다.
단지 개인적인 소원 혹은 욕망을 채우는 데는 지극히 유효할 것이다.
칼이나 총기같은 법에 저촉되는 물건을 소지하는 것이 아니면 증거가 남지 않는다.
가령 마법의 힘을 사용해 누군가를 다치게해도, 혹은 죽음에 이르게해도
이 세계의 과학을 전제로 한 조사에서는 분명히 범인을 판명하지 못할 것이다.
키미시마가 이제까지의 인생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카스미양에 대한 걸 제대로 처음부터 다시 말해서 듣게 하는 것도 난이도 높구만. 여하튼 그거다.”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가지고 없었으니 말이죠.
억지로 이야기하려고해도 잘 모르는 방향으로 가버리는 것밖에 상상이 안갑니다.”
“분명히 그렇게 될거야. ―용사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누구야 당신들은”
“누구냐고 한다면, 저희들은 예전 세계에서 삼마장을 했던 자들입니다만.”
“에엣, 악역비도, 용사님의 적, 나를 죽인 그 삼마장이라고?”
“그 삼마장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합니다만.”
“마물의 이야기따위 들을 것 같아! 악의 삼마장까지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용사님하고 합류 해야되겠네.
그러기 전에 그 예전 세계의 원한이다. 여기서 옛날에 죽은 나의 원수를 갚겠어. 죽어라!”
작은 연극을 끝낸 두 사람의 어깨가 푹 떨어졌다.
나도 두 사람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가 될 것 같은 예감을 하고 있다.
키미시마를 멈추려고 한다면 마법의 힘으로 반격당해서 죽음. 그렇다고 해서 키미시마를 방치한다면 용사가 부활해서 죽음.
어느 쪽의 길을 선택해도 기다리는 것은 같은 결과.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 놓여있는 상황인 것이다.
“왜 저런 여자하고 결혼의 약속을 했을까, 용사.
약점이라도 잡힌 거 아냐. 그렇지 않으면 빚이라도 지고 있다던가.”
“정말 그래요. 저의 엄마같이, 라는 것은 불가능한 소리지만, 좀 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여성하고 약혼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요.
뭐, 이 세계에 와서 성격이 바뀌었다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요. 저희들과 마왕님처럼 말이죠.”
“용사한테 구애되는 것이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
남자같은 건 별의 수만큼이나 있는데 왜 바보 여자는 용사한테 구애된 채인 거야.
모처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자신이 되었으니까, 새로운 남자를 찾으란 말이다.”
“그렇게 말해도 예전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다시 태어나서 지키려고 한다. 감동적인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의 그늘에는 나쁜 역할만 억지로 맡는 녀석이 언제나 있는 법이야.
우리들 같은 게 그거라고…….”
“내일이라도 준비할까요, 유언시…….”
“이번에야 말로, 처음이자 마지막 부활동을 할 때가 왔나 보군…….”
두 사람의 어조는 점점 어둡게 되어간다.
하지만―나는 아직,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우리들이 불리한 역할을 억지로 맡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인과응보라고 단념도 하고있다.
하지만 용사의 기억이 부활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다.
용사가 눈을 뜨면 인격이 덮어 씌어져 칸다 카스미는 사라진다고 마나가 말했다.
그 선량하기만한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라진다.
그런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칸다의 인생은 칸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서서, 의기소침해있는 겐지와 카츠아키의 등을 강하게 두드렸다.
“기합을 넣어. 삼마장이 머리를 맞댔는데, 용사의 동료A따위한테 좋을 대로 당해서 되겠냐.”
그런 논법으로 나는 두 사람을, 그리고 자신을 분발시켰다.
아직 속수무책인 것이 아니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빠른 시간에 집을 나온 나는, 학교 근처 역을 나왔을 때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 전차가 도착할 즈음, 주위는 역에서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그 사람의 큰 파도 안에서, 나는 목적의 인물을 재빠르게 발견했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느끼는 것을 의지해서 찾아낸거지만.
나는 학생들의 틈을 누비며 그쪽을 향한다.
그렇게 하니 햇빛이 심해져 땀의 양도 증가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이렇게 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칸다, 안녕.”
“앗, 키타세군, 안녕. 정말로 같이 가주는 구나.”
“어제 문자로 약속했잖아. 당분간은 학교갈 때 같이 가자고.”
“그랬지만―일어나는 거 힘들지 않아? 키타세군 평상시에는 조금 더 늦은 전차를 타고 있지?”
“일찍 일어나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냐.
게다가 그것을 타면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는 정도니, 좀 더 빠른 게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참이였어.”
나와 칸다는 등을 나란히 해서 학생들의 흐름에 맡기며 걸었다.
하늘은 오늘도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해가 가장 높아질 쯤에는 틀림없이 더워질 것이다.
나는 그런 하늘 아래를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물론 키미시마 노조미가 접촉해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렇다곤 하지만 내 자신은 키미시마가 그렇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다. 게다가 너무 시끄럽다.
키미시마는 아마 조용한 장소에서 칸다하고 단 둘이 될 수 있을 때에 만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칸다를 무방비하게 놔두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그러니까 역에서 학교까지 가자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칸다의 자택에서 역까지는 마나가 동행한다고 하니 그쪽은 걱정이 없다.
전차 안도 학교로 향하는 학생이나 출근하는 회사원으로 꽉 찼으니, 만나려고해도 만날 수 없다.
“저기 키미시마라는 애에 대한 거라면 그렇게 신경 안써도 괜찮아.
어제는 뭔가 잘못 알고 그랬을거야, 분명.”
칸다가 염려하는 듯이 말했다. 근처를 살피는 나를 헤아렸을 것이다.
어제 해어진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전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 저건 좀 평범하지 않았어.”
“하지만 만약 또 어제같은 일을 당하면 스즈키 선생님께 상담해 볼거야.
그러니까 키타세군이 그렇게 걱정해주지 않아도―”
“마나는 뭐라고 말했어? 이야기 했겠지?”
“그건……키미시마에 대한 것은 키타세군 일행한테 맡겨, 라고 말했지만…….”
“그것 봐. 마나의 말이 맞아.”
“하지만―”
“게다가 우리들은 친구잖아? 같이 학교에 가는 것이 그렇게 이상해?”
좀 비겁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칸다는 이제까지 고민했던 표정을 지우고, 생긋 웃었다.
“그렇네,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 ―고마워, 키타세군. 앞으로 의지할게.”
그 말과 빨려 들어갈 듯한 미소에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당황하여 눈을 돌렸다.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어.
만약 또 키미시마가 칸다한테 뭔가 하려고 한다면 그 때 말해줬으면 하는게 있는데―”
키미시마 대책으로 구상한 작전. 나는 그것을 진지한 표정을 지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등교시간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순조롭게 교실에 도착했다.
그 뒤로 오전 수업, 점심시간, 오후 수업도 평범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한시도 칸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역시 키미시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이대로 평화롭게 지나가는 것일까.
―알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고.
HR이 끝난 직후, 나는 자리에 서서 칸다한테 말했다.
“그럼, 돌아갈까. 방과후에 딱히 볼일은 없지?”
“응, 나는 아무것도. 하지만 키타세군은 괜찮아? 시낭송부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자유로움이 포인트인 부니까.”
쿡하고 웃는 칸다하고 둘이서, 교실을 나왔다.
“키미시마는 오지 않았네. 역시 그것은 뭔가 잘못알고 그랬나봐.”
교문을 나오면서 칸다는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응, 그럴거야’하고 수긍했다.
“그러면 좋겠네. 그렇게 된다면 나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같이 돌아가자.”
“아,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걱정해주는 키타세군한테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나, 키미시마한테 감사하고 싶을 정도야.”
“감사? 왜?”
“왜냐면 이렇게 친구끼리 학교에 등하교하는 기회를 주었잖아. 안그래?”
심장이 기묘하게 두근거렸다. 칸다가 보여준 악의라곤 하나도 없는 미소에.
아침과 똑같이 볼에 혈액이 집중하는게 나한테도 느껴진다.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했다.
칸다의 미소는 정말로 매력적이라고. 좀 더 확실히 말하면…….귀엽다, 고.
거기서 퍼뜩 제정신을 차렸다.
대체 뭘 들뜨고 있는 거냐, 나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자신을 타이르기 위해서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는 건 좋지만 만약 키미시마가 다시 오면 아침에 말했던 것, 잊지 말아줘.”
“으, 응……. 괜찮아, 제대로 말할 테니까.”
학교에서 역까지의 여정 그리고 전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눈을 빛내며 주위를 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전차에서 내리고 역에서 나왔을 때, 나는 칸다한테 확인할 겸 물어봤다.
“마나는 집에 있지?”
“응. 오늘은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어.
마나도 굉장히 걱정하고 있거든. 아침에 역까지 같이 가자고 한 것도 마나가 꺼낸 말이야.
중학교가 반대방향이라 지각할지도 모르니 거기까지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를 혼자 두기 싫다고 하더라.”
“좋은 여동생이구나.”
“응! 자랑스러운 여동생이야. ―하지만, 말이야.”
“왜?”
“가끔 무서운 걸 말하니까, 그게 걱정이야. 사실은 말이야 키미시마에 대한 것을 상담했을 때, 굉장히 화를 내더라고.
내가 이야기를 매듭지을테니 그 키미시마라는 사람하고 만나게 해줘! 라면서.
그런 짓을 하면 위험하니까 안된다고, 어떻게든 진정시켰지만…….”
내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새어나왔다.
칸다를 통하면 마나한테 키미시마는 용사의 동료였던 여마법사라고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그 판단이 대정답이라고 확신했다. 예전 세계의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이 정도다.
용사하고 유대가 깊었던 약혼자라고 알려진다면 틀림없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 사건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들만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새로이 했다.
“평소에는 굉장히 착실한데, 나에 관한 일이 되면 바로 흥분하더라.
……그렇게 의지가 안되는 언니인걸까, 나는.”
그 뒤로 당분간 수업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면서 둘이서 칸다의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갔다.
얼마 안 있어 큰 길을 꺾어서 주택가가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사람의 왕래는 거의 없다. 란도셀을 맨 초등학생하고 가끔 스쳐지나갈 정도다.
도중에 몇 번이고 뒤돌아봤지만, 키미시마의 모습은 없었다.
어째서 접촉하러 오질 않는거지?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칸다의 집에서 언니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어둠의 파동을 방출하는 인물을 눈치챈 것인가?
그래서 공포에 질려 도망간 것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키미시마의 파동을 느끼는 능력은 우리들보다 꽤 낮다.
그건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 시낭송부의 부실 앞을 지나고 나서 칸다의 존재를 눈채챈 것이나,
어제 칸다의 위치를 간단하게 놓쳐버린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장소라면 나라도해도 어둠의 파동을 느끼는 건 할 수 없다. 하물며 키미시마한테도 무리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오늘은 쭉 같이 있었지만, 내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언젠가는 칸다를 혼자 두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분명히 있을 때, 두 사람을 만나게 해야한다.
이렇게 된다면 죽이 되는 밥이 되든 해야한다. 나는 큰 맘먹고 발을 멈췄다.
“맞아 키타세군한테 배운 대로 많은 문제를 풀려고 했는데, 하나 푸는데도 시간이 걸려서 꽤나 어려워서―어라, 왜 그래?”
몇걸음 앞서간 칸다가 이야기 도중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돌아봤다.
“저기 말야,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지. 거기에 조금만 들르지 않을래?”
“공원에? 어째서?”
“방금 말했던 거 알려줄게. 키미시마는 내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고.”
“그건 기쁘지만……. 그럴거면 내 집에서 하는 게 좋지 않아? 밖이면 덥잖아?”
“아니, 방문하면 마나한테까지 신경쓰이게 만들어버리니까.
그리고 밖에서 공부하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아. 머리에 잘 들어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근처 모퉁이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하니 조금 뒤에서 칸다도 따라왔다.
“그러네,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공부하면 기억하기 쉬울지도. 그럼, 부탁할게.”
공원에 도착하니, 놀고 있는 애는 하나도 없었다.
어제 휑했던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인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안성맞춤이다.
칸다는 벤치에 앉고서 바로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냈다.
“그러니까 어제 그 문제가―”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나는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내 주의력은 방금 들어온 공원의 입구에 쏠리고 있다.
종이하고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멈췄을 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 이거다. 이 문제가 어려워서, 풀지 못한 채 잤어. ―키타세군?”
그 목소리도 단지 소리로서 귀에 도달할 뿐.
“키타세군, 왜 그래? ―앗”
눈치 챘을 테지. 칸다가 숨을 삼켰다.
“왔군.”
나하고 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한 명의 소녀가 서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키미시마 노조미는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 표정은 사라져 있다. 그런데도 어딘가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다, 라는 건 아닐 것이다.
약혼자였던 인물과 만난 것이다. 그야 기쁠 것이다.
키미시마의 발이 멈췄다. 그 눈은 오직 칸다한테만 향해있다.
“어제는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놀라게 해드렸던 것,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키미시마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 목소리도 평정함을 가장했지만 조금 날카로워져있다.
다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눈치 채지 못할 수준이다. 사정을 모르는 인간―예를 들면 칸다라던가.
“아, 아니, 괜찮아. 놀랐던 것은 정말이지만…….”
칸다는 당황하긴 했지만 평범하게 응답해서, 나는 눈을 부라렸다.
이야기가 다르잖아! 아침에 키미시마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렇게나 말해줬는데.
초조해하는 나를 뒷전으로, 칸다는 계속해서 말했다.
“어제 일은 뭔가 착각한 거였지?”
“예. 그 때 일은 부디 잊어주세요.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서, 진심으로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착각은 누구나 하는 거니까.”
“참으로 친절한 말씀…….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그렇게 거창한 일도 아니야. 그것보다, 얼굴을 들어줘.
누군가가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어라, 뭔가 이거, 예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대가 명확하게 저를 용서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 그러니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니까.”
“용사한다, 라고 말해주세요.”
“으, 응. 그럼, 용서할게.”
그 순간, 키미시마의 얼굴이 올라가―그대로 굉장한 기세로 돌진했다.
말릴 틈도 없이, 가방을 팽개치고 양팔을 넓히고 칸다한테 다이브한다.
“아아, 용사님! 그리웠습니다!”
문제집이 허공에 춤췄다.
“키미시마, 진정해―”
덮쳐진 것같이 안겨진 칸다는 손발을 파닥파닥 움직였다. 그 눈이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아연하고 있던 나는, 그걸로 간신히 제정신을 찾았다.
“결국 그렇게 하는거냐!”
나는 키미시마를 떼려고 등을 밀어 저쪽으로 보냈다.
“키, 키타세군―”
나는 칸다하고 키미시마 사이에 섰다.
키미시마는 천천히 가방을 주웠다. 키홀더 모습을 한 은색의 팔찌가 흔들렸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눈을 돌렸다. 조금 전과는 정반대로 침착한, 차가운 눈.
어제 근처의 사거리에서 우리들을 볼 때와 같은 빛을 띄는 눈.
키미시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좋았다. 위험한 것을 말하기 전에 단숨에 매듭지어야겠다.
나는 기대를 가지고 벤치에서 일어선 칸다를 보았다.
하지만 시원스럽게 배신당했다.
칸다는 큰 가슴을 상하운동시키면서도, 나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키미시마한테는 뭔가 깊은 사정이 있을 거야, 분명. 그렇지 않으면 이런 짓, 두 번이나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심한 말은 할 수 없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사람이 좋잖아.
칸다는 얼굴이 굳어진 나로부터 키미시마한테 시선을 옮겼다.
“저기, 키미시마, 용사님이란 건―”
“안돼!”
나는 소리쳐서 그 소리를 지웠다.
칸다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한 순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나를 보는 키미시마의 눈에 약간 열기가 깃들게 되었다.
“저는 당신을 배려해줬습니다.”
“어디가 배려야. 질리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으면서―”
“당신이 용사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이 공원에 왔죠.
틀림없이 이대로 집까지 데려간다고 생각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겁니다.
당신이라고 해도 용사님 앞에서는 본성을 나타내고 싶진 않았겠죠.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군요.”
“키, 키타세군의 본성?”
칸다가 얼빠진 소리를 내니, 키미시마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용사님, 이 남자와 가까워져선 안됩니다. 당신에게 해로운 인간이에요.”
“그……그래? 어째서…….?”
“이 남자는, 악인입니다.”
“아, 악인? 키타세군이?”
“누구한테도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용사님이라면, 정체를 간파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 그럴 수가. 키타세군은 매우 상냥한 사람이야. 전학 온 날에 친구가 되어주었고,
집에도 놀러 와주었고, 공부도 알려줬어. 악인이라니―”
“속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달콤한 얼굴을 해서 용사님한테 접근하려는 것이 이 남자의 수단이니까요.
뒷면에는 거무칙칙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 증거로 제가 어제 이 남자하고 그 동료들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무슨 짓을 당한거야…….?”
“허를 찔러 저를 넘어트리고 달콤한 말로 악의 길로 유혹하려고 했습니다.”
안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기다려기다려기다려! 갑자기 뭘 말하는 거야! 완전 엉터리잖아!”
“한마디 더 하자면, 속옷까지 봤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보, 보지 않았어, 보지 않았다고! 정말로 안봤어, 나는!”
나는 미국사람 같이 커다란 손짓 몸짓을 하면서 칸다한테 부르짖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나니 안심시키는듯한 미소가 되돌아오고, 나만 들리는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키타세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있어.”
그것으로 나도 어느정도 냉정함이 돌아왔다. 거칠었던 호흡을 정돈하고 키미시마를 노려봤다.
“이제 됐으니까 얼른 돌아가. 너는 칸다한테 접근해도 될 사람이 아냐.”
“돌아가는 것은 당신입니다. 모처럼 용사님하고 재회할 수 있었는데,
그 장소에 당신같은 악인이 같이 있으면, 추억이 더러워집니다.”
“키, 키미시마, 그런 말투는―”
“조용히 해줘.”
대화에 끼여든 칸다한테 단호하게 말하자, 키미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누구한테 그런 말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튼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장소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거군요?”
“당연하지. 떠날 이유가 없어.”
“그러면 또 잠들어 주세요.”
키미시마가 어제 헤어질 때 했던 것같이 나한테 손가락질을 했다.
수면마법을 걸 생각이다. 칸다한테 예전 세계의 힘이 보여지면 위험하다. 게다가 마법이라면 변명을 할 수 없다.
나는 칸다의 시선을 가로막아 섰다. 허리에 힘을 넣어 그 자리에서 버텼다.
어제와 같이 기습이라면 몰라도, 오는 걸 알고 있으면 그렇게 쉽게 걸리진 않는다.
제대로 정신만 차린다면 지금 나라도 충분히 할만하다.
그럴 터 였는데.
“뭐, 뭐라고…….”
머리 안에 안개가 껴서, 그것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눈이 풀리고 있는 걸 자신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바보 같은. 빛의 파동을 지근거리에서 쬐고 있어서 힘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수면마법따위에 걸릴 리가―.
거기서 하나 잊고 있었던 것을 눈치챘다. 빛의 파동은 마물의 힘을 저하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용사측의 인간의 힘을 증폭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즉 이 마법은 어제보다도 강력하다. 지키는 대상이 호위하는 쪽의 힘을 줄어들게 하고, 적의 힘을 강하게 하는 웃기는 사태가 된 것이다.
예전 세계에서는 상식이었던 것을 잊었던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하면서, 단순한 방법으로 수면마법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또 하나의 대중적인 저항법을 고르기로 했다. 나는 앞니로 입술 끝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아픔과 함께 쇠맛이 입안에 퍼졌다.
동시에 잠기운도 싹 사라졌다.
나는 눈꺼풀을 똑똑히 열고 여마법사를 정면에서 응시했다.
“……실패했네요. 둔한 사람한테 잘 안걸리는 것이 단점이군요.”
입술을 깨물었던 것은 눈치 못한 듯, 어조는 냉정하지만 조금 놀란 얼굴이 된 키미시마.
나는 피를 핥고 삼키면서 그 안쪽 공원의 입구에 시선을 돌렸다.
신체에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수면마법을 견뎠다곤 해도, 키미시마의 수단은 이것만이 아닐 것이다.
예정대로 빨리 움직여주지 않으면 언제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까.
벌써 상황이 이상하게 된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
대체 어디에서 이쪽의 상황를 살피고 있는 거야?
가슴을 바짝바짝 태우는 나한테 키미시마가 엷은 미소를 띄웠다.
“돌아가고 싶어졌습니까? 상관 없어요.
쫓아가거나 하지 않을테니까 부디 좋을대로 돌아가세요.”
“시끄럽구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누군가 도와주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건가요.
혹시나 악인 동료인 그 두 사람을 기대하고 있는 겁니까?”
“시끄럽다고 말했잖아. 대체로 말야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순순히―”
“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동료들은 이쪽에 오지 못하니까요.”
“뭐라고?”
“제 뒤를 쫓아오고 있더군요. 질리지도 않고 악의 길로 꾀어낼 생각이었겠죠.
그러니까 얌전하게 있게 해줬습니다.”
“얌전히 있게 해줬다니 너 녀석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신과 똑같이 잠들게 하는 것이 실패해서―”
몇 개의 빛의 선이 키미시마의 손가락에 휘감기듯이 움직였다.
―전격마법인가.
“보입니까? 이것도 저의 힘의 한가지입니다.”
“그 전기로 해치운건가? 겐지하고 카츠아키를?”
“말했을 텐데요. 저는 악한테는 가차없다고.”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기까지 한 것인가.
우리들이 예전에 삼마장이었다는 것을 알고 전격마법을 사용했다면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 정도로 원한을 갖고 있어도 짚이는 데가 충분하니까. 하지만 키미시마는 모른다.
우리들이 예전 세계와는 무관계인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용했다.
잠들게 하는 것뿐인 수면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절시키는 데 유효하지만 전격마법은 아픔을 동반한다.
우리들은 악인이라고 믿고있는 키미시마가 마법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인정했어도,
그 정도까진 하지 않겠지하고 어디선가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거인족 최강의 전사라고 불렸던 나도, 이제와서는 싸움의 감이 둔해져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해져있다.
겐지하고 카츠아키는 어딘가에 떨어져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키미시마가 나타나서 형세가 불온해지면 결사의 각오로 칸다를 메고 나른다.
내가 몸을 날려 키미시마를 저지하는 틈에 멀리 도망친다는 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키미시마의 수단에 의해 그것은 벌써 불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흘끗 등 뒤를 보았다.
칸다는 나하고 키미시마의 대화를 이상한 듯이 듣고 있을 뿐이었다.
겐지하고 카츠아키에 대한 건 전해지지 않았고, 마법을 사용하는 키미시마의 모습은 내가 등으로 안보이게 하고 있으니까.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내가 부탁한 말은 해주지 않을 것 같다.
칸다하고 눈이 마주쳤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 그 입이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저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게 각오했다.
여기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하는 수 밖에 없다.
“……무엇을 할 생각이죠?”
발밑에서 새끼손가락 손톱의 반도 안되는 크기의 돌을 주운 나한테, 키미시마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작은 돌, 이라기 보단 자갈 한 알에 가까운 그것을 오른손에 쥐었다.
표적은 팔찌를 가방과 연결해주는, 체인. 그것을 이 자갈 알맹이로 끊어버린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키미시마라도 동요할 것이다.
그 틈에 죽을 기세로 칸다를 들어올리고, 여기에서 도망친다.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지 않다. 칸다가 여기에 있으니까. 나를 예전 유리몸의 에이스라고 믿고 있는 듯하니까 일단 괜찮은 것일까.
마나가 말한 대로 의심이 축적되면 위험하다.
하지만 이거 말고 여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던질 생각입니까? 그걸로 만족한다면, 하세요.”
키미시마는 손바닥을 보여주는 듯이 행동하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하지만 손으로 막으려는 것이 아니다. 뭘 했는지 나는 안다. 아마 장벽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날아오는 것을 튕겨내는 것이 가능한 마법이다.
하지만―마장의 팔에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다.
“폭력은 안돼에!”
등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은 자갈 알맹이가 손에서 떨어지려는 그 순간이었다.
내 팔의 근육이 흔들렸다.
그리고 놓친 자갈 알맹이는 방벽이 있을 터인 공간을 돌파하고―
체인은커녕 통학용 가방에도 스치지도 못하고 공원의 구석에 있는 나무줄기에 부딪쳐서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목만 움직여 뒤를 돌아봤다.
“그렇지. 안 되겠지, 이런 것은. 저런 힘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아. 멈춰줘서 고마―”
감사의 말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가슴에 뭔가가 꽉 누르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되돌리니 키미시마가 눈앞에 서있었다. 닿아있던 것은 소녀의 작은 손이었다.
다음 순간, 강렬한 전격이 신체를 통과했다.
털썩하고 무릎이 떨어졌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저런 걸로 제 장벽을 부수다니―조금 놀랐네요. 고맙습니다, 용사님.
저를 위해서 큰소리로 저 남자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려주셨군요.”
키미시마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전격마법에 당해서 의식이 몽롱해진다.
완전히 의식이 사라지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용사님, 용사님을 대신해서 악을 심판했습니다. 이걸로 이제야 둘이서―”
“키타세군!”
칸다가 달려오는 것을 간신히 알았다. 그 뒤 곁에서 웅크리고 앉은 것도.
그리고 나를 향해 목소리가 안될 정도의 절규를 질렀다.
“키타세군, 어떻게 된거야!? 정신 차려!”
칸다가 내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대량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의 파동이 전격마법 이상으로 충격을 주어, 내 안에서 날뛰었다.
“저기, 괜찮은 거야!? 키타세군, 키타세군!”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 손을 치워줘. 이대로라면, 괜찮지, 않게 될거야…….
중단되려는 의식에서 그렇게 호소해도 전해질 리가 없다. 칸다는 나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용사님. 그런 악인은 이제 어찌되든 상관없어요.
그것보다 드디어 둘만 있게 되었군요. 이 날을 쭉 기다려왔습니다, 저의 용사님.”
삼도천의 차가움을 드디어 실감하기 시작할 때였다. 키미시마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흔들림이 멈췄다. 손이 내 어깨에서 떨어져, 일어서는 기색이 있었다.
“……당신이 키타세군한테 뭔가 한거지?”
“예?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시고.”
“어째서―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째서라고 말씀하셔도…….이 남자는 악인이고 게다가 용사님과 저의 사이를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꼴이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칸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먼저 입을 연 건 칸다였다.
“―모르겠어.”
“네…….?”
“나는 당신따윈 몰라.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따라다니지마! 나는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까!”
“모, 모른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확실히 저의―”
“모른다고 했으면 모르는 거야! 나뿐만 아니라, 키타세군한테까지 심한 짓을 하고―
미안해, 키타세군. 내가 제대로 말을 안했으니까…….”
칸다가 또 내 곁에 웅크리고 앉는 것을 알았다.
“거, 거짓말이시죠? 모습은 바뀌어버렸지만, 용사님.
저는 당신의 약혼자예요? 어째서, 모른다는 말씀을…….”
“뭘 말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용사님? 약혼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그냥 고등학생이야!? 당신의 망상같은 거에 끌어들이지 말아줘!”
칸다가 외치는 소리에는 눈물이 섞여있었다.
“망상이라니―저, 저는.”
“듣지 않겠어! 당신이 뭐라고 말해도, 나는 더 이상 듣지 않을거야!
그러니까―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줘!”
그 후로 들리는 것은 흐느끼는 소리뿐.
빛의 파동에 의한 충격과 아픔이 전격마법의 그것을 덮어씌워서,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한 나는 생각했다. 잘 말했다, 라고.
칸다가 외친 일련의 말들. 그것은 오늘 아침에 키미시마가 오면 말하도록 전해준, 키미시마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내가 생각한 것이다.
한번은 거부되고, 이 상황에 가서 말하게 된 것이다.
―그 뒤는 키미시마가 알아줄지, 그렇지 않을지뿐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얼마 안 있어, 계속 잠자코 있던 키미시마가 불쑥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여쭤보게 해주세요.”
“뭐, 뭐를?”
“조금 전 저는 이 남자의 악행을 열거했고, 그것을 이 남자는 부정했습니다.
―저와 이 남자, 어느쪽을 믿습니까?”
“어째서, 그런 것을?”
“부탁합니다. 알려주세요.”
잠시 후에, 칸다가 말했다.
“키타세군을 믿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
또 다시 침묵.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길다.
정적을 견딜 수 없던 내 고동이 두사람한테까지 들리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 키미시마가 명확한 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칸다 언니.”
부르는 법이 새롭게 되었다. 용사님이 아닌 칸다 언니라고, 확실히 말했다.
결론이 나오기 전에 구두 소리가 들리고, 내 등에 또 손이 놓여졌다.
충격도 아픔도 없다.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했다. 칸다의 손이 아니다. 그렇다면 키미시마의 손인가.
상쾌한 기분과 함께 온몸에 감각이 돌아온다. 아마, 치유마법을 받았을 것이다.
손이 떨어지고, 바로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불필요한 고통을 전해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칸다 언니의 친구분.”
“키미시마…….?”
“칸다 언니, 당신한테도 사과하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저의 착각으로 인해 꺼림직한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정이 얇은, 산뜻한 목소리.
“아냐, 나야말로 심한 말을 큰소리로 말해버려서…….”
당분간 멀어지는 구두 소리가 귀에 닿았다.
신체에 힘이 돌아왔다고 해도, 아직 일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엎드려 누운 채로 턱만 들어올렸다.
등을 돌리고 걷고 있는 키미시마의 모습이 시야에 있다.
나는 말을 걸려고 했지만, 마비된 혀가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키미시마―”
“오늘은 이걸로 실례합니다만―또 가까운 시일에 만나러 오겠습니다. 제대로 된 형식으로.”
그런 말을 남기고 키미시마는 달려갔다.
가방의 팔찌도 그것에 맞춰 흔들렸다. 크지만 확실히 체인에 연결된 채로.
소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공원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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