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앗이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나는 과학실의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칠판에 분필이 닳는 소리에 겹쳐서 소리 죽여 웃는 소리가 자욱해진다.
또 저질러버렸다. 아직 4교시인데 오늘만해도 두 번째다.
시업식부터 날수를 포함하면 몇 번인지 이제 셀 수 없다.
나는 일어서서 담임이면서 화학담당인 스즈키 선생님한테 머리를 내렸다.
하지만 스즈키 선생님은 교과서를 한손에 든 채로 뒤돌아보지도 않고 한조각의 개성도 느껴지지 않는 글자로 판서를 계속하고 있다.
이 선생님의 이런 태연자약한 모습은 진짜 본받고 싶다. 얼마나 인생경험을 길러야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제대로 앉고 나서 스즈키 선생님의 등에 한 번 더 머리를 숙이자 걱정하는 듯한 시선이 옆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것에 일부러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고 화학 교과서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려고 했지만, 안됐다.
교과서 내용도 선생님이 말하는 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얼마 안 있어 수업의 종료와 쉬는 시간의 시작을 동시에 알리는 종이 울렸다.
판서를 동강낸 스즈키 선생님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과학실에서 나갔다.
이 과학실은 4층이고 교실은 2층.
이동해야 한다.
나는 매우 무겁게 느껴지는 신체를 일으키려고 했다.
“저기, 테츠지로군―”
말 거는 소리에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인 채 천천히 그쪽을 향했다. 말을 걸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옆자리의 칸다 카스미.
“아까 쓰러졌던데 괜찮아……? 양호실에 가보는 게…”
음색에는 염려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칸다는 진심으로 내 몸을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때때로 쓰러지는 것은 빛의 파동을 가끼이에서 계속 쬔 불쾌감과 긴장 때문이다.
즉 자신의 탓이란 것 따위 알지 못하는 채다.
“괜찮아. 조금 피로가 쌓인 것뿐이야.”
“하지만 거의 매일 쓰러지고 있잖아…….”
“으, 응. 피곤함을 풀 기회가 없어서…….”
“괜한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한테 진찰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병이 걸린 거라면 큰일일 수도 있어.”
나는 애매하게 수긍했다.
“교실까지 걸어갈 수 있어? 괜찮다면 부축해줄게.”
“아, 아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봐봐!”
부축 받게 된다면 정말로 병원행이다. 나는 무의미하게 양팔로 건강하다는 포즈를 어필했다
그리고 책상의 교과서를 가지고 그 장소에서 도망치듯이 떠났다.
“기다려. 교실까지 같이 가자. 역시 걱정돼.”
거절 할 수가 없다. 나는 칸다하고 동행해 과학실을 나오게 되었다.
칸다가 전학 온 지 10일이 지났다.
아직 짧은 만남이지만,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기억을 잃은 용사의 환생은 첫인상 그대로 온화한 성격에 누구한테라도 상냥하다.
그리고 그 상냥함은 가끔 쓰러지는 나한테 주로 발휘된다.
사실은 감사해야하지만 그렇게 걱정 받으니 더욱 더 괴롭다.
칸다가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건강한 척 하면서 적당히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간다.
보통 이상으로 가까이에서 계속 쬐게 되는 빛의 파동.
2-A 교실에 도착할 무렵, 나는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키, 키타세군. 정말로 괜찮―어라? 뭐지?”
칸다는 돌연 무언가 알아차린 듯한 소리를 냈다.
상황을 보자 먼저 교실에 도착한 반애들이 칠판 앞에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연락사항이라도 나온 걸까?”
“그럴지도 몰라. 한 번 봐볼까.”
나는 칸다와 같이 군중 속에 섞여들어 갔다. 그리고 읏하고 신음소리를 내버렸다.
칠판에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져 있는 것은 한 장의 사진.
찍혀 있는 것은 괴로운 듯 입을 열고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한 명의 남학생.
대단히 일그러졌다고 할까, 무지 잘 아는 얼굴이었다. 매일 세면대의 거울에서 비치는 얼굴.
사진 찍힌 본인의 등장을 눈치 챈 반애들의 웃음 소리를 받으며, 나는 사진을 떼어내고 교실을 둘러봤다.
범인은 알고 있다. 이런 짓을 할 녀석은 한 명밖에 없다.
그러면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불량한 태도로 책상에 큰 다리를 올려놓고, 내 쪽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나는 반달음질로 그쪽을 향하고 사진과 같이 쾅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뭐냐, 이거!”
“뭐냐니, 보면 알겠지. 키타세, 너야. 잘 찍혔잖아?”
이 녀석-코마바 쿄헤이는 전혀 기가 죽지 않은채 그렇게 말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냐. 왜 이런 걸 찍어서 거기다 게시까지 했는지 묻고 있는거다!”
“넌 이런 얼간이 같은 모습을 보통 보여주지 않잖아.
사진으로 보존하고 싶은 것을 모두한테 보여주는 게 당연하지.”
“당연하다니, 너 말이야!”
“화내지 마. 좋잖아, 봐봐. 모두 기뻐하고 있어.”
그가 뒤쪽을 지적하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칠판 앞에 있던 반애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모든 얼굴이 다 웃고 있다.
카메라 기능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애도 있다.
“모두가 기뻐하는 풍경을 촬영하는 것이 신문부. 그렇잖아?”
“너무하잖아, 프라이버시라든가는 없냐! 대체 사진을 언제 찍은거야 저거.”
“3일전 화학 수업에서. 과학실 뒤에서 계속 대기했어. 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죽이면서.”
“스, 스즈키 선생님도 눈치채지 못한건가?”
“눈이 마주쳤지만 딱히 뭔 소리를 듣진 않았어.”
“그, 그래. 과연 스즈키 선생님……이 아니라, 그런 것은 어찌돼든 상관없어!”
더욱더 고함치니, 코마바는 제지하는 듯이 쾌활하게 말했다.
“조건을 붙이면 말이지, 너는 지나치게 굴러 떨어지고 있어.
기껏 찍은 레어감이 없잖아. 그러니 더 이상 구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일상이 되버리면 사진의 가치가 없어지니까 말이지.”
“이 자식……!”
나는 더욱더 나서서 덤비려고 했지만, 코마바는 살찐 체형에 알맞지 않은 속도로 의자에서 떨어져 홱 물러섰다.
“모델료로 그 사진을 줄게. 사양할 필요 없어.
메모리카드에 있는 사진을 인화하면 언제든지 늘릴 수 있으니까.”
나는 코마바를 실컷 째려본 후, 사진을 작게 둥글게 말아서, 모퉁이의 쓰레기통에 던졌다.
착지하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 기세좋게 뒤를 돌아본다.
이 녀석을 상대하고 있으면 매점의 빵이 매진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심을 굶게 된다.
“너, 컨트롤 좋은데. 야구부라도 들어가는게 어떠냐?”
그런 소리를 등 뒤에서 들으며 성큼성큼 나는 내 책상으로 향했다. 가방으로부터 지갑을 꺼낸다.
“키타세군…”
휙하고 옆을 돌아오면 자리에 돌아와 있던 칸다가 기색을 살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화난 나머지 빛의 파동조차 잊고 있던 것이다. 깨닫고 나면 소름이 돋는 동시에 머리가 식혀졌다.
“무, 무슨 일이야?”
“그……큰일이었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신 대답했다.
평정을 되찾고 나서 생각해보니 사진을 찍힌 것 정도는 눈앞에 인물이 가져온 것과 비교하면 엄청 사소한 일이다.
칸다는 내 반응에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코마바군은 어떤 사람이야……?”
“어떻고 자시고, 저런 녀석이야.
신문부 부장이고 조금이라도 재밌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사진을 찍고 싶어하지.”
짧은 설명은 꽤 생략한 것이다. 사실 신문부로서 코마바 쿄헤이는 대단한 인물이다.
들고 오는 것이 금지된 디지털 카메라를 늘 숨겨져 가지고 다니고,
운동부가 약동하는 순간부터 교사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까지 찬스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사진 찍은 실력뿐만 아니라 기사 쓰는 것도 재밌다는 평판이다.
이 남자가 망해가던 신문부에 들어오고 나서 그 때까지 누구도 흥미가 없었던 교내신문이 단숨에 명물이 된 것이다.
폐부 직전이었던 부를 다시 세운 기린아. 일부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단지, 그렇게 좋은 점까지 설명해야할 의리는 없다.
나는 대화를 중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칸다는 아직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렇게 이상해? 그 사진.”
“앗, 아니. 사진은 조금밖에 보지 않았어. 정말이야.”
“그러면 왜 그래?”
“키타세군도 애들 앞에서 저렇게 화내는 경우도 있구나 싶어서.
아이바군하고 우라카와군하고 있을 때는 그러지 않지만, 반에서는 그렇게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언제나 조용히 있으니까. 조금 놀랐어.”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 반에서 그 정도로 감정을 드러낸 적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반에서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사람을 사귀는 것이 서툴다는 자각은 있다.
옛날의 나도 그랬다. 거인족에 그런 문화가 없으니까.
대부분의 종족에 있는 연애라는 관념조차 없었다.
그것을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는지는 판명할 수 없지만 겐지와 카츠아키 앞 이외에 그런 식으로 큰소리를 친 것은 정말로 희안한 일이다.
“……혹시 ‘키타세군도 이런 면이 있다’라는 걸, 코마바군이 모두한테 알려주고 싶어했을지도 몰라. 응, 분명히 그럴거야.”
칸다는 혼자서 납득한 듯이 말한다.
“이 기억을 잃은 용사의 환생은 단지 상냥한 것만이 아니다.
엄청나게 착한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매점에서 산 찐빵과 카레빵, 우유팩을 가지고 뒷문으로 교사를 나왔다.
점심시간의 휴식처는 정해져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한다.
정면의 제1운동장과 달리 잔디가 깔린 제2운동장로 간다.
드문드문 놓여있는 벤치는 대부분 학생으로 차있었다. 나는 끄트머리에 있는 언제나 가던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오, 테츠지로. 오늘도 수고했구만.”
“임무 수행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하는게 어울리는 얼굴이군요.”
두 명의 선객, 이미 점심을 먹기 시작한 겐지와 카츠아키가 앉아 있는 벤치에 아무말도 앉고 털썩 몸을 던진다.
“잠깐, 흔들지 말아주세요. 엄마의 애정 도시락을 흘릴 뻔했잖아요.”
볼을 부플린 카츠아키를 무시하고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활짝 개었다.
태양도 밉살스러울 정도로 기운이 넘치고 ‘기상학으로 치면 가을’이라는 말이 허무할 정도로 덥고 온도도 높다.
빛의 파동보다는 낫지만 상쾌와는 동떨어진 날씨다.
“어땠어, 오늘은. 카스미양이 슬퍼할 만한 일이 있었어?”
어머니 수제 폭탄 주먹밥을 모조리 먹어치운 겐지가 평상시처럼 그렇게 물어봤다.
“괜찮아. 저런 성격이니까 말이야.
친구가 잔뜩있고 선생님으로부터도 사랑받는 것 같아. 슬픔과는 거리가 먼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
“방심은 금물입니다. 슬픔이란건 인간관계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곤란한 일이 있으면 바로 도와주세요.”
“알고 있어.”
이 10일간, 칸다가 슬퍼할 만한 일은 딱히 없었다. 것보다 가능한 슬퍼하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생각이다.
헤매지 않게 하려고 전학한 다음날 학교 안을 안내해줬다. 지우개를 잊었을 때는 내 것을 잘라 나누어 주었다.
방과후 소나기가 와서 현관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우산을 건내줬다.
점심시간의 음악을 틀어주던 시간에 스피커에서 도나도나가 흘러나왔을 때, 세 명이서 방송실에 들어가 록코오로시(응원가)로 바꿔 큰소리로 틀었다. 우리들의 부단하고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칸다는 실로 유쾌한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빵을 먹어치우고 우유를 빨대로 한번에 마신 뒤 우유팩을 난폭하게 으스러뜨렸다.
“기분이 나쁜 것 같군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까 교실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만뒀다.
이 녀석들한테까지 웃음을 사는 건 사양하고 싶다.
“뭐, 빛의 파동을 쬐고 기분이 좋아지는 전 마물이 있다면 섬뜩하겠지만요. 그 일 때문에 그렇죠?”
살짝 어긋났지만, 그것도 사실이다. 나는 수긍했다.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말이지. 학생으로서 이걸로 괜찮은가, 불안해지고 있어.”
“그렇겠죠. 공부를 빼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니까요, 인텔리는."
“인텔리라니, 내가? 딱히 그렇지 않은데.”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여름방학 전에 본 교내 테스트.
저도 겐지군도 엉망이었는데, 테츠지로군은 몇등이었나요?”
“……4등.”
그렇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머리 속까지 근육으로 되어있는 그 시절과 정반대다.
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학교에 다니면서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순식간에 공부의 포로가 되었다.
방과후, 시낭송부 부실에서 하는 일은 공부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공부를 했다.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있어서 공부는 그저 즐거운 것이었다.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이 설레어서 견딜 수 없다.
왜 많은 사람이 이런 걸 재미없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지 이해 못할 정도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역사라면 전쟁밖에 없고 문명이라고 하면 마법따위에 너무 의지해서
산업혁명은커녕 화약의 발명도 못했던, 예전 세계의 수준이 낮음에 싫증이 난다.
“하지만 인텔리란 그런게 아니잖아. 좀 더 공부를 잘하는 것과 다른 머리가 좋은 걸 말한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4등이라고해도 아직 더 위가 있고. 아니 애초에 공부는 등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모두 머리가 좋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모두 인텔리입니다.”
“그래, 그래. 인텔리라면 빛의 파동을 받아도 언제라도 공부할 수 있겠지.”
겐지까지 그런 것을 말하고 있다.
“남의 일이라고 그런 말을.
대체로 너희들이 엉망이라고 해도 카츠아키는 생물, 겐지는 사회과목 전체가 특기잖아. 그건 어떤건데.”
“합성수인데 거기다가 신이니까요, 저는. 생명의 신비에 동경하고 있습니다.
생물만이 아니라 보건체육도 특기입니다. 그 이상은 딱히 동경하는 게 없어서 공부 할 마음이 없습니다.”
“나는 마계를 통치하는 대공작이었잖아. 나라의 역사라든가 정치 경제라든가 지금도 흥미있어.
하지만 흥미가 있으니까 배우는 것뿐이지. 딱히 공부할 생각은 없어, 전혀.”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마!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잖아.”
둘의 불량학생같은 태도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둘은 어딘가 아랑곳하지 않은 얼굴로 넘기고는 점심과 같이 가져온 휴대형 게임기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어폰을 끼고 전원을 킨다.
“너희들 말이야, 학교에 게임기를 가져오는 건 금지라고. 들켜서 몰수되도 모른다.”
그렇게 주의해도 아무 효과도 없이 둘은 바로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겐지가 하고 있는 게임기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것에 서먹한 나라도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전설의 용사가 악의 마왕을 쓰러트린다는 내용의 게임이다.
“전직 마장인 주제에 잘도 이런 게임을 하는구나…….”
질린듯한 소리에도, 어디로부터 반응은 없었다.
이 두 사람만의 버릇인지 아니면 누구나 그런지 모르지만 게임을 할 때 두 사람의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없다.
솔직히 좀 기분이 나쁘다.
나는 두 사람으로부터 눈을 돌려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영문법책을 꺼내 펼쳤다.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짬짬이 공부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쓸 것도 제대로 가지고 있다. 볼펜이다. 이건 정말 멋진 발명품이라고 생각하다.
예전 세계에서는 종지에 기록하려면, 잉크를 일일이 준비해야했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이렇게 손쉽게 문자를 쓸 수 있다.
볼펜을 처음으로 안 어린 시절에 크게 감동한 이후로 어디에 가든지 떼어놓지 않았다.
거기서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종이는 없지만 펜만 가지고 다닌다, 뭔가 새로운 속담이 생길 것 같은데.
―휴대폰의 메모장 기능을 쓰면 되지 않습니까.
겐지하고 카츠아키가 그렇게 놀렸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아날로그의 매력을 모르다니…….”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는 영문법책에 몰두했다.
“흥, 정말 싱거운 녀석들이군. 이 정도의 실력으로 도전해오다니.”
그렇게 혼잣말을 한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쯤인가.
너무 집중하면 내 옛날 본성이 바로 입 밖으로 나와버리는 것이 나의 나쁜 버릇이다.
정신을 차리고 영문법책을 닫았다.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겐지와 카츠아키를 놔두고 교실에 돌아가려고 생각했을 때였다.
피부에 짜릿한 아픔과 불쾌감이 들었다.
“이봐……”
나는 살짝 겐지와 카츠아키를 쿡 찔렀다.
“뭐야, 좋을 때였는데. ―그래서 뭔가 기분이 안좋다고 생각했더니, 어라, 저건 카스미양이잖아.”
“뭐하고 있는 걸까요, 저런 곳에서.”
칸다는 두 명의 여학생하고 같이 있었다. 반친구들이다.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이름정도는 알고 있다.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였을 것이다.
둘 다 억척스러운 인상이지만, 나를 제외하면 칸다하고 반에서 제일 먼저 사이좋게 된 이인조다.
그 세 명이, 교사 뒷문 근처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돼, 뭔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어! 상태를 보러가자!”
게임을 좋아하는 주제에 시력이 좋은 겐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벤치에서 뛰어나갔다.
“카스미, 안되겠어. 내려올 것 같지 않아.”
“으, 응. 그러게. 난처하네…….”
칸다 일행으로부터 5미터정도 떨어진 쓰레기통 그늘에 웅크려 앉아 있을 때, 그런 대화가 들렸다.
“어이, 곤란해하는 것 같은데.”
“위험하구만, 무슨 일일까.”
“나무가 어떻게 된 걸까요.”
우리들은 속삭이면서 얼굴만 내밀어 엿보았다. 그리고 칸다 일행이 올려다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러면 녹색이 우거진 소나무에서 꽤 높은 곳에,
가지를 요령좋게 붙들고 늘어진 진한 검은색 털의 살찐 고양이가 있었다.
“얘, 야옹아. 이쪽이야.”
“그런 곳에 있으면 위험해.”
“내려오세요.”
칸다 일행이 각자 말해도 검은 고양이는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뭐가 보이는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알겠다.”
소나무 가지에 올라간 검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떨어지면 위험하니 내려주려고 하는 거겠지.
“대부분은 걱정 없을 텐데요, 저런 거는.
바람도 안불고 저만큼 큰 가지에서 떨어질리도 없고,
설사 떨어졌다고 해도 저 정도의 높이에서 어떻게 된다면 고양이 그만두는게 좋을 정도니까요.”
카츠아키는 작은 소리로 설명하는 사이에도 칸다 일행은 닿지 않는데도 손을 뻗거나,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주의를 끌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가 내려올 기색은 전혀 없다.
“역시 내린다는건 무리야. 왠지 기분도 좋아보이고, 괜찮은 거 아냐?”
“그렇습니다, 그 말대로죠. 바람 쐬고 있는 것뿐입니다.”
오카지마의 말에 반응한 카츠아키의 목소리는 당연히 우리들한테만 들리는 음량이다.
“올라갔다는 것은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진짜 그 말대로입니다. 고양이과의 신체능력을 얕보면 안됩니다.”
“그러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도 끝나니, 교실로 돌아가자.”
“멋진 의견입니다. 제발 그렇게 하도록 해요.”
“하지만…기다려, 고양이를 놔둘 수 없어.”
“왜 그리 되는 겁니까?”
카츠아키의 등이 푹하고 떨어졌다. 우리들은 그 머리를 억누르면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난처한데, 칸다의 얼굴을 봐봐. 슬픈 표정이 되어가고 있어.”
“위험해, 이거 위험할지도 몰라. 좋아, 검은 고양이는 내가 어떻게든―”
겐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칸다는 한번 더 검은 고양이를 올려다보고, 그 뒤에 눈을 내리떴다.
“야옹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게 되면, 저―”
칸다의 표정에서 슬픔의 색이 진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쓰레기통을 걷어찰 기세로 그것에서 튀어나왔다.
빛의 파동의 효과가 강하게 되어 불쾌감이 늘었지만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
“안녕,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어?”
시치미를 뗀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아, 애들아. 실은 야옹이가 나무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렸는데
위험하니까 내려오라고 말하고 있지만 듣질 않아서……”
“그렇군, 곤란하겠네. 좋아, 내가 불러볼게.”
나는 겐지한테 눈짓하면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발걸음으로 소나무에 접근하여 줄기에 손을 댔다.
여자애들 3명의 시선이 나한테만 집중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뒤에서 겐지가 세운 손가락을 검은 고양이한테 향하여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하면서 위쪽을 향해 이렇게 불러봤다.
“이봐,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내려와.”
그러면 무반응이었던 검은 고양이가 움찔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귀찮은 듯 가지에서 지면으로 내려왔다.
곧바로 유연한 움직임으로 줄기에 달려들어, 그대로 수직으로 뛰어내려서―
“아야아파,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 것은 뒤에서 손가락을 돌리고 있던 겐지였다.
검은 고양이는 도중에 줄기를 차 겐지의 머리 위에 올라타서 거기서 발톱으로 할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하라고 하진 않았잖아!”
겐지가 머리 위로 팔을 뻗었지만 허공을 갈랐다.
검은 고양이는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머리에서 뛰어내려와 그대로 제2운동장을 향해 달려갔다.
“기다려, 이 녀석!”
얼굴을 빨개진 겐지는 갖고 있던 게임기를 카츠아키한테 떠맡기고 뛰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는 잔디밭 위에서 예의있게 기다렸다. 겐지한테 기다려라는 말을 들으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착하면 그 명령으로부터 해방된다. 검은 고양이는 재차 겐지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아파아파! 할퀴지마!”
머리를 긁어대고 내려가 떠나버린다.
머리가 흐트지게 된 겐지는 더욱더 얼굴을 붉히고 쫓아간다.
아직 학생들이 남아있는 제2운동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럽게 되었다.
카츠아키가 한번 헛기침을 하였다.
“한 건 해결이군요.”
“그런거야!? 아이바군 ,괘, 괜찮을 걸까……?”
“괜찮습니다. 겐지군은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니까요.
보세요, 즐거워하고 있잖아요.”
겐지하고 검은 고양이는 잔디밭 위에서 달렸다가 멈추고 한바탕 말썽을 일으켰다.
이 행동이 반복되었다. 즐겁게 보인다고 말하면 즐겁게 안보이는 것도 아니다.
“으, 응, 그렇……겠지. 키타세군, 고마워. 야옹이를 내려다줘서.”
“천만에.”
사실 감사의 말을 받아야 할 사람은 지금 버터가 될 기세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저 남자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솔직하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아직 전원이 켜져있네요, 이거. 끄도록 하죠.”
카츠아키는 떠맡은 휴대형 게임기의 전원을 끄려고 했다.
“앗, 그거 알고 있고. 최근에 나온 거잖아.”
액정화면을 들여다본 오카지마가 그렇게 말하자, 요시카와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카스미는 게임같은거 해?”
“아니, 나는 별로. 특히 복잡한 것은 서툴러서……”
“이건 꽤 추천작이야. 옛날에 발매한 것을 다시 발매하는 거라서.
내용도 꽤 단순해.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리고 세계를 구한다고 것이 전부―"
나는 많이 초조해졌다. 이 이야기는 위험하다. 지나치게 옛날의 세계 그대로다.
“다릅니다, 달라요! 이것은 우주를 무대로, 로봇으로 싸우는 인간드라마 게임입니다!
좀비가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있으니까 칸다양한테는 절대로 추천할 수 없습니다."
역설하면서 카츠아키는 게임기를 허둥지둥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에, 그렇지 않잖아. 나도 그 게임 있는데.”
“것보다 로봇하고 좀비가 나온다니 미묘하게 흥미가 생기는데. 무슨 게임이야?”
“그, 그건―”
추궁을 당해 말이 막혀버린 카츠아키. 그 눈이 무언가를 의지하는 듯 이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을 이해했다. 끼어들 듯이 한발짝 앞으로 나왔다.
“요시카와와 오카지마는 게임에 대해 잘 아는구나?”
“별로 그런 것도 아냐. 부활동은 바쁘고, 잘 팔리는 걸 가끔 사는 정도.”
“너는 어때? 공부벌레니까 게임같은 건 안할 것 같은데.”
“공부벌레라서 그런 건 아닌데, 확실히 그다지 하지 않는다고 할까―”
그런 실속 없는 대화를 시작하면, 카츠아키의 신체가 쓱 움직였다.
그리고 여자애 3명의 배후 뒷문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에 접근했다.
물을 살포하기 위한 용도의 10M이상인 호스가 붙어있었으나 놔두고 앞쪽을 자기 입가에 대어 수도꼭지를 돌렸다.
물이 안면에 기세좋게 분출하여, 와이셔츠의 가슴팍까지 젖고 몸이 뒤로 젖혀졌다.
뭘 하고 있는지 애가 탔다. 일단 입에도 물이 들어있는 것 같다.
사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물이 뿜어져 나왔고 그러면 강한 햇빛에 바로 사라져 버릴 흔적이 지면에 나타났다.
흔적으로부터 열기가 피어올랐다.
“숨돌리기 정도라면 게임도 좋지만,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열중하는 것은―
응? 왠지 갑자기 더워졌네. 햇살이 강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일부러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열기의 원인이 지면에 뿜은 물 때문이란 것을 눈치 못채게 하기 위해서.
“우와, 진짜다. 땀이 나네. 엄청 강하잖아, 태양.
언제까지 여름으로 있을 거지.”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피부가 거칠어지겠어.
자, 카스미도 서둘러.”
“으, 응. 그럼 키타세군, 먼저 갈게.”
여자애 3명이 뒷문에서 교내로 사라졌다.
일단 위험은 회피했다고 봐도 좋겠지.
“저희들도 돌아갈까요, 더운 건 싫습니다.”
“그럴까…….”
우리들도 교내로 들어가려고 했다.
“진짜로 화났어! 너를 팔아 넘겨서 샤미센으로 만들어주마! 반드시 그럴거다!”
제2운동장에서 울려퍼지는 고함을 구부린 등으로 받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수업에는 집중할 수 없다. 휴식 시간에도 이렇게 마음을 졸여야한다.
―이걸로 정말로 괜찮은건가? 이런 나날이 진짜로 이제부터 계속되는 걸까?
“정말로 계속되는구나.”
걸어가면서 그렇게 말하자 양쪽의 겐지하고 카츠아키가 ‘갑자기 왜 그래?’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별거 아냐’라고 목을 흔들고는 시선을 전방에 되돌렸다.
지금은 하교 시간.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 작은 길을 같은 교복을 입은 남녀가 열을 만들어 걸어가고 있었다.
해질녘이 되었어도 여전히 강렬한 직사광선에 맞으며 정연함과 어수선함을 양립하면서.
이 상황에서 주위에서 수상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일정 거리에서 특정한 인물을 관찰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가능할 리가 없다.
그 인물은 순식간에 학생의 무리에 의해 매몰되어 버렸으니까. 하드보일드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대단한 탐정이라도 무리다.
하지만 우리들한테는 가능했다. 왜냐하면 상대가 빛의 파동을 방출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우리들은 지금 하교하는 칸다 카스미를 미행하고 있는 것이다.
불쾌감에 의지해서 상황을 살핀다. 돌아가는 길에 괜한 자극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매일하는 일과로 시낭송부 부실에서 잡담을 하는 것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칸다는 부에 속해있지 않아서 방과후 바로 귀가하는 게 일정했다. 다행한 일이다.
“여성을 미행하다니 창피한 일이지만, 여하튼 목숨이 걸려있으니까요. 용서받아야 합니다.”
내 혼잣말을 멋대로 억측한 카츠아키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곤 해도, 미행이란 건 좀 오버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따라가는 건 역까지다.
그 앞은 역시 사양하고 있다. 만약 발각된다면 스토커 키타세 테츠지로 용의자가 완성되고 학교생활은 끝장난다.
그러니까 자택은커녕 지하철로 통학하는 칸다가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미행이라는 큰일을 저지른다고는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아마도.
―정말로 좋은건가, 이걸로?
오늘 내가 이렇게 자문한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같이 명확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용사가 부활하면 살해당하니까, 이렇게 감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읏, 뭔가 왔어. 봐봐, 저쪽 저거."
역까지 앞으로 100M정도 남았을 때, 겐지가 그렇게 주위를 재촉했다.
그쪽을 보니 전방의 학생들이 길을 비키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
이 무더운 햇살 아래 검은 바탕에 금자수가 들어간 셔츠를 입었고 눈에는 선글라스를 썼다.
머리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듯 강렬한 곤두서있었다.
길가던 사람한테 이 남자의 직업이 뭘까요하고 물으면 똘마니 아니면 양키이라는 대답이 태반일 것이다.
“설마 칸다한테 달라붙지 않겠지, 저 남자.”
“겉모습은 저래도 아무나 물어뜯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 한정이지만.”
“말걸까 걱정인데. 카스미양, 귀여우니까 말이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을지……걱정이네……
억지에 약해보이는데……. 아아, 안돼, 안돼겠어. 저런 남자랑 관련되면 좋을 건 없을거야.”
하지만 우리들의 그런 비관적인 생각과 다르게, 남자는 시원스럽게 칸다의 옆을 지나갔다.
“광견병의 예방접종, 제대로 받은 것 같군요.”
카츠아키가 안심한 소리를 냈을 때였다. 남자는 갑자기 다리를 멈췄다. 그리고 우리들 앞을 가로막듯이 섰다.
“이봐, 거기 학생. 뭘 꼬라보냐, 엉?
나한테 할 말 있으면 들어줄테니까 일로 와봐.”
이게 무슨 일인가. 얽힌 건 우리들이었다.
와봐라고 해도, 진짜로 간다면 육체적 접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운동치, 겐지는 꼬맹이, 카츠아키는 장신이지만 말랐다.
요컨대 싸움이 특기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옛날과는 다른 것이다. 인간들을 공포의 구렁텅이에 떨어트린 옛날과는.
그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죄, 죄송합니다!”
우리들은 잽싸게 머리를 숙이고 곧바로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길로 도망갔다.
한 사람밖에 지나다니지 못할 것 같은 그 길을 그대로 앞다투어 달리고 오로지 달렸다.
좁은 길을 벗어나서도 전력으로 달리던 전 삼마장이 패주를 그만둔 것은, 뒤에 남자의 모습이 안보일 때였다.
“예방접종, 하, 하지 않았네요.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해주면 될 것을.”
“보, 보건소다, 보건소. 개 주인의 책임이라고, 통보해줘.”
“저 녀석이 용사라 아니라서 다행이야, 용사라면 이럴 때, 반드시 추격해오니까…….”
전신을 땀으로 적신 우리들은 집요하게 후방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그 뒤 ‘앗!’했다.
“맞다, 칸다를 쫓아가야하는데…….”
“벌써 역에 도착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땀투성이인 채로 되돌아갔다.
좁은 길로 돌아와 그 남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역쪽으로 걷는다.
학생들로 혼잡한 역 앞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니 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그 불쾌함이 느껴져서 우리들은 안심했다.
불쾌감으로 안심을 한다는 것은 미묘한 이야기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 같구나.”
“그렇네요. ……돌아갈까요, 학교로.”
우리들은 작은 무감동을 느끼면서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거스르는 것처럼 스이쇼 고등학교로 걸어갔다.
배후에서 빛의 파동의 기색이 움직이기 시작한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빛의 파동만이 아니었다. 역에서 학생들이 줄줄이 나왔던 것이다.
“뭐, 뭐야? 왜 돌아오는 거야, 모두?”
“모르겠지만 뭔가 있었구만! 카츠아키, 칸다양 보여? 분명 있을거야!”
“으으음―있습니다! 뭐, 뭔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못마땅한 얼굴이라니 무슨 뜻이야!”
“그건…곤란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스, 슬퍼하는 건 아닌가?”
“그런 말을 들으니, 슬퍼하는 것 같기도……어쨌든 말을 걸어보겠습니다!”
카츠아키는 장신을 살려, 위에서 칸다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들은 학생의 무리에 밀리지 않도록 자전거 주차장쪽으로 이동했다.
“다들, 같은 시간이라니 드무네. 오늘 부활동은 쉬는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바로 모습을 드러낸 칸다한테 나는 앞으로 넘어질 기세로 물었다.
“으, 응. 저기, 지하철이―”
“지하철은 어찌되든 좋아. 칸다에 대한 걸 알고 싶어!
곤란한 일이라던가, 고민하는 일이라던가, 무언가 있는 거 아냐!?”
“이, 있지만. 그래도, 그다지 큰일은…….”
“어떤 작은 일이라도 좋아! 사양하지 말고 우리들한테 말해줘.”
“그, 그럼……. 그게 말이야 열기로 레일이 비뚤어져서 지하철이 정지한 것 같아.
원래대로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해서……”
“……그것 뿐?”
“그…그게 다야.”
미안한 듯이 말하는 칸다. 우리 3명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
“3명 다 왜 그래!? 괜찮아?”
30도 기울었지만 어떻게든 신체를 제대로 되돌리고 우리들은 가지런히 머리를 숙였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야. 잘 모르겠지만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럼, 갈게.
이 주변은 아직 잘 모르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탐험해볼래. 다들, 내일 또 만나.”
뒷모습에 힘없이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내 가슴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혼자서 탐험할 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리고 생각 했을 때는 입을 열고 있었다.
“기다려줘.”
칸다가 돌아보았다.
“아. 아직 뭔가 있어?”
“저기 말이야, 이 주변에 카페가 있는데, 좋다면 다 같이 거기로 가지 않을래.”
겐지하고 카츠아키의 눈이 휙하고 나를 향했지만 상관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했다.
“우리들, 느긋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잖아. 게다가 겐지하고 카츠아키에 대한 것도 친구가 됐지만 아직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탐험은 다음 기회로 하고―”
거기서 더 말하기 전에, 칸다의 표정이 바뀌었다. 꽃피는 듯한 미소를 지은 것이다.
“응! 가자!”
나도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칸다의 옆에 섰다.
그리고 나서 겐지와 카츠아키를 재촉하려고 했지만, 조금 의외로 그럴 필요도 없이 둘 다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번 나쁜 일을 시작한 바에는 끝까지’입니까. 그런 건 자포자기하고 하는 겁니다.”
걸어가면서 속삭이는 카츠아키의 소리가 거북했다. 탐험하는 칸다가 걱정된다면 하던대로 뒤에 숨어서 따라다니면 된다.
같이 카페에 갈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단지 그것이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물론 나는 자포자기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기억을 잃은 용사가 우리들 앞에 나타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슬퍼하면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그것을 막아야 한다.
전력을 다해 칸다에 대해 신경쓴다. 그것은 이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통 그늘에 숨는다거나, 미행한다거나, 그런 것은 역시 싫다.
어차피 같이 있는다면 좀 더 당당하게 같이 있고 싶다. 모처럼 친구가 되었으니까.
빛의 파동은 여전히 몸에 침투하고 있다. 피부가 아프고, 기분도 나쁘다.
그렇다곤 해도 이것을 가까이에서 쬐는 일상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같이 있어도 놀랄 일이 없도록 최소한 소리를 지르고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찍 할수록 좋다.
겐지와 카츠아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따라온 것이다.
4명이 걸어가고 있는데 칸다가 느닷없이 쿡쿡 웃었다.
“갑자기 왜 그래, 카스미양.”
“사실은 지하철이 정지되었다고 들었을 때, 너희들이 있는 곳에 갈까하고 생각했어.”
“우리들이 있는 곳이라니, 시낭송부 부실에?”
“응. 하지만 부활동의 방해가 되니까 그만뒀어.
그런데 너희들하고 만나서 게다가 같이 가자고 권유해줬으니까 정말로 기뻤어. 고마워, 다들.”
“뭘 말하는 거야. 우리하고 카스미양은 친구잖아.
저런 좁은 부실이라도 좋으면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어.”
카페에서 나오자 해가 꽤 떨어진 상태였다. 좀 전까지는 밝았는데 지금은 꽤 어둑어둑하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뀐다, 그 경계일 무렵에는 자주 있는 일이다.
해가 머지않아 질 것이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꽤 오래있었네. 순식간이었어.”
“커피 한잔으로 오래 있었는데 가게 사람한테 미안한 일 한 것같아.”
“카페는 그걸로 장사하는 겁니다.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그보다 빨리 돌아가자. 어두운 건 싫어하니까, 나.”
우리들은 커피 향기가 감도는 카페 밖을 걸어갔다.
“여기에서 역은 어느정도?”
“15분 정도인가.”
이제 막 나온 카페는 당초 계획한 역앞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역앞에 카페는 지하철이 정지되어 시간을 보내려하는 스이쇼 고등학교 학생.
게다가 같은 역을 이용하는 타학교 학생들로 가득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카페를 돌아봤지만 어디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한적한 주택가에 외따로 가게를 차린 카페까지 발을 들인 것이다.
주택가의 샛길을 걸어가면서 칸다가 ‘으응……’하고 양팔을 펴고 말했다.
“즐거웠어. 다들 정말로 재밌는 사람들이니까.”
카페에서 한 대화는 그런대로 고조됐다고 생각한다. 칸다는 자주 배를 누르고 웃고 있었다.
단지 웃겼던 건 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언행 전부다.
냉방된 점내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가끔 수상한 거동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의미가 불명한 헛소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했던 것일까.
……이상했겠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사소한 것에도 야단스런 리액션을 취하는 개그맨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피곤했지만 빛의 파동에 왠지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효과가 사라지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심하게 긴장해서 수업중에 의자에서 떨어지거나 대화중에 깜짝 놀라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빛의 파동에 익숙해졌다기보다는 칸다 카스미라는 사람이 그곳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키타세군은 정말로 공부를 잘하네.”
“잘한다고 할까, 좋아하는 것뿐이야. 칸다는 싫어해?”
“싫어하진 않지만……잘하진 않아.
시간을 들여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래?”
“나 기억력 좋지 않을지도.”
“그러지 않다고 보는데.”
“아니, 맞아. 나, 굼뜨니까……. 맞다, 키타세군.
만약 괜찮다면 이번에 시간 있을 때라도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나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을 충분히 이용하면 돼. 공부만이 장점인 남자니까.”
“하늘은 두 가지를 다 주지 않는다는 격언의 산증인입니다.
운동은 서투르고 겉모습이 확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 특기도 없음.
공부를 빼면 무(無)로 돌아갈 것 같은 사람이니까요.”
말참견을 하는 겐지와 카츠아키.
‘그럼 너희들의 장점은 2개 이상있냐’하고 소리치며 따지려고 했지만 그것을 삼키고 나는 심술궂게 말했다.
“겐지는 사회과목 전체, 카츠아키는 생물이 특기야. 이것에 한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르는 과목이 그쪽이라면, 이 둘한테 배우면 돼.”
“으……응. 그런데 특히 못하는 건 수학하고 영어야.”
나는 ‘그건 아쉽네’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보건체육도 특기라고 가르쳐주지 않은 것 감사합니다.”
카츠아키가 속삭였지만, 딱히 배려해준 건 아니다. 나도 그런 건 말하고 싶지 않다.
걸어가다보니 순식간에 해가 어둠에 떨어졌다. 밝은 빛은 가로등과 집집마다 방출하는 빛뿐이었다.
언제나 이용하고 있는 역은 학교가 인접한 중심가를 건넌 그 앞에 있다.
그 중심가까지는 여차여차해서 주택가의 좁은 길을 걷는다. 그렇게 가고 있을 때였다.
전방의 길이 갑자기 어둡게 되었다. 길가를 비추는 가로등은 하나도 켜지지 않은 채, 인접한 집들에서도 빛이 비춰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뭐가 어떻게 된 건 아니다. 대그룹도 아니고 이 거리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상태도 아니다.
우리들은 이렇다 할 것 없이 조용한 채로 어둠 안으로 들어갔다.
“응……?”
어두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고 나서 바로 오른쪽 어깨가 손가락으로 몇 번인가 두드려졌다.
눈을 돌리면 겐지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다.
턱으로 지시했다. 우측―이 아니라, 후방으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를 돌아봤다. 그러면 길가에 있는 전봇대의 그림자에 숨으려는 듯 무언가가 움직였다.
나이까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인간이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머리를 짜냈지만 모르겠다. 단지, 이쪽을 살피는듯한 동작을 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왜?
“이쪽으로 갈까요 가까우니까.”
카츠아키가 그렇게 말하고 갑자기 왼쪽으로 꺾었다.
그 소리는 조금 굳어있었다. 이 녀석도 배후의 누군가 있다고 눈치챈 것이다.
꺾인 길 앞도 어두웠다. 게다가 전에 가던 길보다 더 어둠이 길게 이어졌다.
겐지나 카츠아키 중 누군가가 작게 혀차는게 들렸다.
그 길을 조금 더 갔을 때 다시 등을 두드려졌다. 등뒤를 보면 또 전봇대에 몸을 반쯤 숨긴 누군가가 있다.
이제 단언할 수 있다. 이 녀석은, 우리들을 쫓아오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우리들을……?
그건 모르겠지만, 수상한 자인 건 확실하다.
최근 그런 사람이 나왔다는 정보는 들은 적이 없지만, 반대로 말하면 일년 내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전봇대에 숨으면서 뒤를 쫓고 있는데 그 녀석이 수상한 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소리를 크게 지를까. 그렇게 생각했다. 현관을 어둡게 한 집이 많다고 해도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
집에 있는 사람이 알아채면 경찰에 신고해 줄 것이다.
“왜 그래? 다들 조용해져서는……”
칸다가 이상한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소리를 크게 지르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기분 나쁘지만 단지 상황을 살피고만 있으면 해는 없다.
무모하게 칸다를 무서워하게 만들면 안된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냐’라고만 대답하고 조금 걸음을 빠르게 했다.
하지만 곧 ‘아무것도 아냐’가 틀린 것이 판명되어버렸다.
“이봐 저거……”
나는 전방을 엄지로 가리켰다. 수상한 그림자가 이번에는 전방 20M정도 앞 길모퉁이에서 살피고 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선수 친 걸까. 상대는 상당히 재빠르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이군요―뒤에 아직 녀석이 있습니다.”
카츠아키 낮고 찬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 말대로였다.
배후의 수상한 사람은 변함없이 전봇대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전방에 나타난 수상한 자는 아무래도 두 명인 것 같다.
“불길한 느낌밖에 안들어. 너희 둘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와 카츠아키는 동조하며 수긍했다. 확실히 미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없애도 싶어도 없애지 못하는 본능의 부분, 거인족 최강의 전사의 감이 위험을 알리고 있다.
이치에 맞게 생각해도 그렇다. 후방에서 따라오는 것도 수상해서 방향을 바꿨는데 그 앞에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으로 ‘상황을 살피고만 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 짜여진 계획에 의한 행동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짓까지하는 상대의 목적은 아직 모른다. 단지 나라고 해도 뉴스는 본다.
영문 모를 사건이 매일 가득하다. 본인이 죄가 없어도 재난이 덮치는 시대라는 지식은 있다.
이 길에서 유일한 전등, 반짝반짝 점멸하는 밝기 아래에서 카츠아키가 다리를 멈췄다.
“하겠습니다, 저는. 소리를 크게 질러도 경찰이 오기 전에 당해버리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칸다씨하고 제 몸을 지키기 위한 거라면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이야, 너?”
놀라서 되물은 나에게 대답한 것은 겐지였다.
“나도 할거야. 주먹 하나로 어떻게 할 자신은 아예 없지만. 너는 어떤데?”
“그야 자신 없지.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한 나한테 겐지는 눈을 움직였다. 그 앞에 칸다가 있었다.
칸다가 자극을 받는 일이 일어나버려도 괜찮은거냐.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알았어, 나도 할게.”
나는 민가의 담장 아래서 작은 돌 두 개를 주웠다.
카츠아키는 통학용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내 내용물을 입에 머금었고, 겐지는 한손을 들고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모두, 뭐하는 거야……?”
어리둥절하면서 묻는 칸다는 세 명의 수상한 자―아니 습격자에 대한 것을 완전히 모르는 것 같다.
빛의 파동은 건재해도 용사로서의 기억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우리들과는 다르다.
“미안해, 칸다. 어떻게 해서든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키타세군, 뭔데?”
“그러니까……눈을 감고 한 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는 건 어렵다는데. 알고 있어?”
“엣? ……아니, 모르지만 그런거구나?”
“1분정도 할 수 있다면 대단할 정도야.
칸다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왠지 갑자기 신경쓰여서……지금 해줄 수 있어?”
“응, 괜찮아.”
칸다는 순순히 눈꺼풀을 내리고,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앗, 진짜다. 어렵네…….”
흔들흔들 거리지만 들어올린 다리가 바로 지면에 닿을 것 같진 않았다. 자기를 굼뜨다곤 했지만 균형감각은 좋은 것 같다.
굳게 눈을 감은 표정은 진지하다. 그 때문에 미묘한 죄악감이 솟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절대로 보여줘선 안된다. 과거와 연결된 힘을.
우리들은 한 다리로 서있는 칸다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카츠아키가 후방에서 쫓아오는 한 명을 맡고, 나와 겐지는 전방에 나타난 두 명을 맡는다.
“나와 카츠아키는 괜찮지만, 네가 걱정이야. 다치게 하면 안돼.
취조당한다면 변명은 안통할테니. 겁을 줘서 쫓아내기만 해야돼.”
“알고 있어.”
나와 겐지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을 때 박쥐 몇 마리가 상공에서 떠돌기 시작했다.
점멸하던 전등이 이 때 완전히 꺼졌다.
“그러고 보니 너, 이럴 때 언제나 하던 대사 있었잖아. 그거 해줘. 부탁한다. 어깨에 들어간 힘 좀 빼고 싶어.”
어쩔 수 없이 나는 헛기침 한 번하고, 칸다에게 안들리게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작고 약한 인간들이여, 내가 직접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트려 주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해라.”
예전 마계의 대공작이 실컷 웃음을 터트렸다.
“안돼겠어, 몇 번을 들어도 웃겨. 니 부하들도 네가 그렇게 말하는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고 있었겠지―”
놀리는 건 거기서 중단되었다. 우리의 배후에서 카츠아키가 상대할 습격자의 행동한 기색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전봇대에서 사람의 형체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금속 덩어리 같은 것이 번쩍하고 희미하게 빛났다.
“차, 차거, 차가워!”
절규 어린 비명이 들렸다. 그것은 카츠아키의 입에서 안개처럼 된 물이 분출되는 소리가 들렸던 그 순간이었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들은 적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은 어찌되든 좋다.
배후를 신경쓰고 있는 틈에 전방에서 두 명의 습격자가 소리없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가라!”
먼저 반응했던 건 겐지였다. 하늘을 가리키던 손을 내리자, 동시에 날개 소리가 들렸다.
상공에서 떠돌던 박쥐가 일제히 습격자 두 명의 머리 위를 어지러이 날기 시작한 것이다.
발길이 멈춰지고 까야, 꺄아하는 비명이 들렸다. 여성의 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정신적 여유는 없었다.
“움직이지 마!”
나는 팔을 크게 휘둘러, 쥐고 있던 작은 돌 두 개를 같이 던졌다. 손바닥은 땀으로 질척거려서, 목표를 맞추는 일은 없었다.
작은 돌은 각자 두 사람의 안면을 스쳐 담장에 격돌하여, 툭하는 소리를 내며 튀었다.
두 습격자의 무릎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장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카츠아키가 상대한 쪽도 움직이지 않는다. 최초의 한 방으로 상대는 전의를 잃은 것 같다.
―우리들의 승리다.
나는 칸다가 있는 곳으로 뒤돌아보려고 했다. 그 때 전등이 다시 켜졌다.
빛은 이번에는 점멸하지 않고, 습격자의 모습을 비추었다.
나는 멍하게 되었다.
전등의 아래에서 비추어진 두 사람의 습격자, 그 얼굴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의 여자―가 아니라 두 사람의 여학생.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였다.
“너……너희들…….”
둘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볼 뿐이었다. 지금 뭐가 일어난 것인지 모르는 듯이.
“뭐야 너희들, 낮에 카스미양과 같이 있었던 애들이잖아! 그렇다는 것은 뭐야 설마 내부의 범행인가!
너희들 사이 좋은 척해서 카스미양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한거냐!”
흥분한 상태로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를 추궁하는 겐지. 그것이 두 사람의 눈의 초점을 되돌아오게 하였다.
두 사람은 주저앉은 채이지만 강한 기세로 똑똑히 말했다.
“―뭐냐니, 너희들이야 말로 카스미한테 무슨 짓을 할 작정이었어!”
“맞아, 이런 어두운 밤길로 데려가다니!”
“……어?”
우리들이 칸다를 데려갔다고? 뭘 말하는 거지 이 둘은?
배후에서 작은 비명이 들렸다. 목을 돌리고 다시 경악했다. 다른 습격자 한 명도 또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안개처럼 뿜어진 물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터.
심히 혼란한 상태로 멍 때리고 있는 신문부 부장, 코마바 쿄헤이가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거기에 있던 것이다.
작은 비명을 지른 것은 칸다다. 소동의 기색을 알아채고 눈을 떠보니 최초에 본 것이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있는 코마바의 모습.
그거야 비명 하나 나오는 게 당연하다.
“코, 코마바군이죠, 이 분? 신문부 명물인? 왜, 왜 여기에?”
카츠아키도 그저 허둥지둥대고 있었다.
그 때 여자애의 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 코마바잖아!”
“왜 이 녀석이 여기 있는거야!”
“어? 두 사람 다 이 녀석에 대해 몰랐어?”
“알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신문부의 카메라 자식!”
“이 녀석이 같이 있다는 것은, 당신들 카스미의 사진을 찍게 하려고 했던 거지!”
오카지마의 그 말에 요시카와도 화난 얼굴이 되었다.
“기, 기다려줘, 뭔 소린지 모르겠어. 둘이 여기 있는 건 코마바와 아예 관계 없는 거야?”
“뭘 말하는 거야! 너희들이 코마바와 같이 있다면, 더더욱 카스미를 구해내야 되겠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카스미, 가자! 무서웠겠지만, 이젠 괜찮아. 우리들이 왔으니까.
이 녀석들 얼굴을 다음에 본다면 지명수배 포스터에 있을거야!”
“앗…….”
요시카와가 억지로 손을 잡아 칸다를 끌고 가는 듯이 걸어갔다. 그것을 겐지가 쫓아갔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줘. 뭐야 지명수배서는! 통보하고 싶은 건 우리라고!”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반드시 당신들을 경찰에 넘기겠어!”
“뭐, 뭐라고, 품행방정으로 알려진 나한테 경찰이라고―”
겐지의 얼굴이 김이 보일 정도로 빨개졌다. 요시카와와 오카지마와 겐지가 서로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옆에 카츠아키가 멍하게 있는 코마다의 목덜미를 잡고 필사적으로 흔들고 있다.
“정신 차리세요! 증언이 하나 부족하니까 모두 혼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면 전부 해결됩니다!
저기, 제정신으로 돌아와 주세요! 부탁합니다!”
내 머리 위를, 종류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비슷한 목소리가 난무한다.
조용할 터인 주택가의 한 모퉁이가 단번에 소란스럽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근처주민한테 신고 당하는 거 아닌가―
“다들 그만해!”
별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하늘에 절규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 때였다.
소란스러움이 물이 빠지는 것처럼 멈췄다.
그리고 코마바를 뺀 전원이 새된 소리를 지른 인물―칸다 카스미한테 시선을 보냈다.
“싸우면 안돼……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인데……”
나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인 칸다의 볼에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먹이는 그 눈동자는―슬픔으로 가득 차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겐지하고 카츠아키의 입이 칠칠치 못하게 열려있었다. 그 무릎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이제 여기까진가.
이런 곳에 함정이 있을 줄은 생각 못했지만, 이제 어찌할 수 없다.
나는 각오를 하고 그 때를 기다렸다.
칸다가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것이 쭉 계속되었다.
―아직인가. 그렇게 애태우지 말고 단번에 되살아나줘. 각오는 돼있으니까.
마음 속으로 생각해도, 눈꺼풀 저편에서 무언가 일어난 기색은 없다.
―이상한데. 아직인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그렇게 생각했을 때, 다른 소리가 들렸다.
“뭐야 나,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나와버렸네.”
눈을 여니 얼빠져 있던 상태에서 제정신을 차린 코마바가 벅벅 머리를 긁고 있었다.
“그, 그래. 너! 너는 왜 여기에 있는거야!”
“왜냐니―”
“키타세 일행과 짜고 카스미한테 못된 짓을 하려고 했잖아!”
“짰다고? 아니야, ‘소재를 독점하려면 취재는 항상 단독으로’ 이것이 내 모토다.”
“……그러고 보면, 그런 것을 교내신문에 써놓았었지. 그럼, 왜 여기에―”
세 사람은 수상쩍은 눈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코마바는 역까지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이 양키같은 남자와 관련된 현장에 있었던 것 같다.
‘이거 재밌겠는데’하고 몰래 따라갔더니, 우리들이 역에서 칸다와 합류하고 있었다.
묘하게 즐거워보여서 ‘신문의 소재가 될 냄새가 난다’싶어서 미행을 계속했다.
아무도 눈치 못챘지만 그 카페까지 쫓아온 것 같다.
그리고 가게를 나선 후 따라가 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미행대상이 멈추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전봇대의 그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들키는 것을 알고도 가까이에서 셔터를 누르려고 단번에 달려나왔다…….
오카지마와 요시카와 두 사람은 이 근처에 사는 듯 하다.
두 사람이 소속된 발레부의 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 칸다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밤길에 왜 카스미가 남자하고’하고 모퉁이에서 상황을 엿보고 있으니, 그들은 갑자기 그 장소에서 다리를 멈췄다.
‘혹시 나쁜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저쪽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달려와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 자신들도 달려나오게 되었다…….
양쪽의 이야기를 각각 요약하면 대체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나는 바짝 마른 입술로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다.
뒤에 미행자가 있는 것을 눈치챈 것, 길을 구부렸더니 앞쪽에 수상한 그림자가 2개가 나타난 것.
그래서 계획된 기다림이라고 여겨서 멈춰선 것들을…….
“결국 다들 다 착각했다는 거야?”
“바보같지만, 그런 것 같아.”
“일부러 카페에서 2시간 이상이나 감시하고 있었는데 시시한 결말이네, 정말.”
말다툼 했던 애들의 소리에서 완전히 독기가 빠졌다.
그 말 대로다, 이유는 정말 시시했다. 뭐가 위기에 대한 마장의 감이냐, 그런 것은 아주 오랜 옛날에 녹슬어 있었을 텐데.
하지만 초래한 결과는 터무니없이 커다란 것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꿀꺽 숨을 삼켰다. 목소리의 주인이 칸다였기 때문이다.
나는 육체가 거부하는 것을 힘껏 강제로 굴복시킨뒤, 기기기……녹슨 소리가 나올 것 같은 동작으로 목을 그쪽으로 돌렸다.
“싸움의 이유는 착각이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각자 사정을 제대로 이야기하면 오해를 풀 수 있어.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매우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거기에 있는 것은 용사가 아니었다. 우는 얼굴도 아니다. 전등에 비춰진 것은 미소였다.
“……뭐, 그렇게 말하면 그럴지도. 미안해, 뒤를 따라가서.
다음에는 밝을 때 따라가는 걸로 할게.”
“따라가는 걸 그만둬! ……그래도 우리가 사정도 듣지 않고 데리고 가려고 엄하게 단정한 것, 나빴을지도.”
“조금 더 있으면 경찰을 불렀을 테니까.”
우리 3명도 어색하게 머리를 내렸다.
"응, 이걸로 서로 화해했네. ―그럼 돌아갈까.“
“우리도 길까지 같이 갈게.”
“이 녀석들만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또, 또 그런―”
칸다는 요시카와와 오카지마하고 수다를 하면서 앞서 가버렸다.
그 뒤에는 남자만 남겨졌다.
여자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겐지가 말했다.
“……어떻게 된거지, 이거. 저걸로 용사의 기억이 부활한 걸까? 아무리봐도 아닌 것 같은데.
용사라면 문답무용으로 다 무찔렀겠지, 우리들을.”
“이상하군요. 상당히 슬퍼한 것 같은데. 슬픔의 양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그건 아니겠지. 저렇게 슬퍼하는 얼굴, 드라마에서도 여간해서 볼 수 없어.
우리들의 오해가 풀리니까 간단히 회복한 것 같지만. ‘타인의 싸움인데 왜 그 정도로’라고 할 정도로 슬퍼했다고 생각해.”
“그럼 어째서……”
나는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슬픔으로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추측한 거, 카츠아키 너였지.”
“네, 그렇습니다만.”
“그거, 예상이 틀린 거 아냐?”
“……에?”
“그럴 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잖아. 실제로 칸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상태는 없었고.
애초에 용사가 슬픔으로 마왕님 토벌 사명에 눈뜬 건가? 난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었어.
그냥 단순히 갑자기 마왕님을 쓰러트리고 싶어져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럼, 기억의 부활은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내가 알겠냐.”
“뭐야, 틀린 거였나. 그럼 원점으로 되돌아왔네.”
겐지가 야단스런 손짓을 하며 질린 듯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카스미양의 기분을 신경쓰며 보낸 지 10일이라고.
카츠아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네 책임이야. 뭘로 때울건지 생각해둬.”
“뭔 소리야 너도 그 말을 믿고 있었으면서.”
여기서 칸다 일행으로부터 웃음소리가 밤의 공기를 타고 전해져왔다.
지금 상황을 바로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 같은 3명의 웃는 소리가.
칸다에게 용사로서의 기억이 없다. 슬픔으로 되살아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무슨 일이 있어도 깨어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이 아는 용사같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 신비한 특성은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은 용사의 몫이 아니라 칸다 본인의 몫이겠지.
“저기, 이봐. 잠깐 괜찮을까.”
느닷없이 굵은 소리로 권유되었다. 모처럼 감동적인 기분이 사라져버렸다.
“뭐야 코마바, 아직도 있었어. 너도 빨리 돌아가.”
“용사라든가, 마왕이라든가, 뭘 말하고 있는거야?”
“그냥 애들끼리 하는 이야기야. 신문의 소재로 못써먹어.”
“흐음, 그럼 상관 없는데. 그것보다 뭐였어 아까 전거는?”
“아까 전이라니?”
“그러니까, 그 쪽의 키다리에다 얼굴이 고운―우라카와 카츠아키였나?
그 녀석이 뿜은 물안개가 강렬하게 차가웠단 말이야.
한동안 멍해지는 게 당연할 정도로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차가웠어.
나는 엉겁결에 앗하고 소리를 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힘을 사용했던 것을.
카츠아키만이 아닌 나하고 겐지도 선보인 불가사의한 현상.
그것은 예전 세계에서 마장으로 불린 괴수였던 우리들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 환생해도 정말 조금만 남아있던 힘이었다.
마계의 주인으로 수십만의 악마를 지배하에 두던 겐지는, 불길하다고 불리는 동물.
즉 아까같이 박쥐, 점심후 쉬는 시간에 나무 위에 있던 검은 고양이, 거기에 까마귀 같은 것에 말하는 대로 행동시키는 게 가능하다.
합성수로서 3개의 머리에서 얼음이나 불, 독같은 걸 뿜는 것이 특기였던 카츠아키는, 입안에 머금은 액체의 온도를 바꾸거나 음식물 쓰레기같은 냄새를 덧붙여 뿜는 힘이 남아있다.
그리고 거인으로서 장사급의 팔뚝보다 더 두꺼운 팔을 살려 투석을 잘하던 나는,
손바닥에 쥘 수 있는 사이즈의 물체라면 탄환같은 속도로, 게다가 바늘 구멍도 통과할만한 컨트롤로 던지는 것이 지금도 가능하다.
예전의 우리들이 가진 힘과 비교해보면 김빠진다. 몹시 허접한 것이다.
명확히 말하면 평소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쓰레기통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때나 이 능력을 고맙게 여긴다. 그래도 이건 아직 제대로 된 편이다.
겐지는 쓸쓸해졌을 때 고양이를 불러들여 기분을 달래고……
카츠아키는……뭐였지? ‘능력을 써서 좋았다’라는 상황이 이제까지 인생에 한번이라고 있었을까?
이렇게 허접하고 도움 안되는 힘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세계에서는 초현실적인 현상인 건 변하지 않는다.
“이봐, 키다리군. 왜 그렇게 차가웠던 거야?”
“그, 그건 말이죠,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기업비밀로 부탁합니다.”
“뭐야, 숨기니까 괜히 더 알고 싶어진다고 나는. 입 안에 비밀이 있는 건가? 좀 열어줘봐.”
“용서해주세요, 치열에 자신이 없어서…….
그것보다 디지털 카메라는 괜찮은 겁니까? 젖지 않았으면 다행입니다만.”
“방수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런 것보다 아까는―”
이렇게 됐을 때 코마바는 끈질기다. 카츠아키도 쩔쩔매고 있다.
나한테 온 상대가 이 녀석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냉큼 두 사람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했을 때 빛의 파동이 접근해왔다.
칸다가 종종걸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두 왜 그래?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가 기다리고 있어.”
“그래, 바로 갈게.”
“키테세, 잠깐 기다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너, 엄청난 강속구 던졌던데.”
“봐……봤어?”
“역시 그런가. 멍하게 있어서 잘못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건 뭐야? 칸다, 너도 가까이서 봤지?”
“아니, 눈을 감고 있어서 잘 모르겠어……키타세군, 뭔가 한거야?”
두 사람의 호기심 어린 눈이 이쪽을 향한다.
요시카와하고 오카지마까지 왔다. 도망갈 장소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소년시절 어깨를 부순 한때의 유리몸 에이스, 카츠아키는 친척인 악역 프로레슬러한테 독무살법을 전수받은 자.
그리고 박쥐의 무리는 박쥐조교사의 겐지가 불러들였다.
우리들이 필사적으로 그렇게 강조하며 말해도, 코마바도 요시카와도 오카지마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야 그렇다. 이런 돼먹지 않은 이유 믿으려면 착하다 수준이 아니라 착해빠졌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랬구나! 잘 모르겠지만, 셋 다 대단하네!”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 납득한 칸다가 조금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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