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의 왕좌 앞에 세 마리의 괴물이 쓰러져 있다.
하나는 거인. 하나는 악마. 하나는 합성수. 이들 모두 마왕에 다음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한테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쓰러져서 꼼짝도 않는다. 이미 죽어있는 것이다. 한 마리가 천명의 병사에 필적한다고 하는 그들이, 세 마리 모두 단 한 명에게 패했다.
세 시체보다 더 앞선 왕좌 앞에는 현재 완전히 무너져내린 다른 괴물이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싸워온 어둠의 일족을 힘으로 통일하고, 여새를 몰아 사람의 제국을 공격해 멸망하기 직전까지 가게 한 공포의 상징. 마왕이다.
누가 한 것인가. 왕좌 앞에서 시중드는 세 마리의 강력한 마물을 단 칼에 쓰러트리고, 더욱이 마왕까지 격파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물을 필요도 없다. 선택받은 자, 빛의 구세주, 최후의 희망. 용사다.
“끝이다, 마왕. 이것이 너의 최후다”
조용하지만 속에 간직한 강함이 느껴지는 소리가 왕좌 앞에 울리고,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은 마왕의 목덜미에 검이 겨누어진다. 용사가 조금만 힘을 주면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어진 검이 마왕의 목에 박힐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르러서도 마왕은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온갖 마물들의 지배자로서의 긍지―만으로 그러는 건 아니다.
“최후라고? 어리석군.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혼은 불멸이다. 여기서 죽어도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이 대지로 되돌아올 뿐. 유감이구나, 용사여. 나를 쓰러트린다는 너의 행동은 처음부터 헛수고가 될 운명이었던 거다.”
수많은 고난과 슬픔을 넘어선 끝에 마침내 쓰러트린 마왕. 하지만 마왕은 몇 번이고 소생한다고 한다. 그것은 절망적인 사실일 터였다. 그러나 용사의 마음은 한 점도 흔들리지 않는다.
“역시, 그런가. 너는 어둠이 의지를 가졌다고도 말해지는 존재. 어둠이 있는 이상, 너는 불사. 그렇다면―”
용사는 검을 지니지 않은 손으로 표식을 그으면서, 입으로 작은 소리로 언어를 구사했다.
“그, 그 주문은―”
처음으로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마왕.
“성 밖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너의 군세와 싸우고 있다. 모든 것은 나를 여기에 다다르게 하기 위한 것. 평화를 바라면서 진 그들의 희생을 절대로 헛되이 할 수 없다. 네가 이 땅에서 부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금단의 차원마법. 마왕이여, 너를 이 세계로부터 추방한다.”
영창을 끝낸 용사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서서히 검을 찔러넣는다. 마왕을 향한게 아니다. 발 아래, 석조의 바닥을 향해 찌른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데 검은 목덜미로부터 떨어져 도중에 바닥에 박혔다.
반격의 실마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마왕은 최후의 힘으로 최대한으로 쥐어짜 왕좌를 향해 기어가면서 팔을 편다.
그 꺼림칙한 손가락이 왕좌의 가장자리에 접촉하려는 그 순간
마치 위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마왕의 신체가 떠올랐다.
“이, 이까짓 게……”
마왕은 돌바닥에 손톱을 세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포기해라, 마왕. 저항할 힘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땅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꽉 쥔 용사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투구에 가려진 눈으로 머리 위를 바라봤다.
왕좌 위의 높은 천장. 거기에 작은 구멍이 열려있었다.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다. 색이 다르다. 잿빛이지만 이 저주받은 땅을 덮는 구름의 색이 아니다. 구멍의 저편은 성 밖이 아닌―여기가 아닌 무의 공간, 차원의 경계. 잘 보면 뚫려있는 것은 천장조차 아니다. 구멍은 공간을 열던 것이다. 그리고 강한 인력을 가지고, 아래의 인간과 마물을 빨아들이려고 한다. 땅에 박힌 검을 쥔 용사는 인력에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석조 바닥을 붙든 마왕은―
“네놈, 이 용사 녀석. 차원마법을 쓸 줄이야, 실수했군.”
서서히 신체가 떠오르면서 나온 말은 패배를 인정한다는 증거였다. 마왕은 이 세계로부터 사라지고 있던 것이다.
그런 숙적을 바라보는 용사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는 투구의 안쪽에 가려저서 알 수가 없다.
발끝이 바닥에 질질 끌려 자국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였다. 마왕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래, 좋다. 이 세계는 마침 싫증나던 참이다. 차원의 경계를 넘은 다음 세계. 새로운 육체를 얻고서 그곳을 나의 새로운 영토로 삼아주마.”
진심인가, 그냥 홧김에 한 말인가. 어느 쪽이든 용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세계에서 나타낸 재앙을 다른 세계에 떠넘기는 행위. 그런 자가 용사라고 불릴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너를 봉하는 것이 나의 사명. 그렇다면―”
용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의 손잡이를 쥔 손을 놓고 이미 신체 대부분이 허공에 떠오른 마왕한테 달라붙으려하고 있었다.
“뭐, 뭐하는 짓이냐. 무슨 속셈이냐?”
“여기가 아닌 세계에서도 지배를 꾀한다면, 나도 같이 가지. 그리고 몇 번이라도 너의 야망을 막아주겠다.”
“바보 녀석! 정신이 나간거냐. 너는 나를 무찌른 영웅일 텐데. 부와 명예도 네 마음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전부 다 버리고 나를 쫓는다고 하는 건가.”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차원의 경계는 무의 공간. 네놈의 육체도 소멸을 피할 수 없다. 새롭게 얻은 육체가 강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그런데도 네놈은 나를 쫓는다는 것인가!”
고함치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용사는 마왕을 붙잡은 자신의 왼팔, 그 손목을 조용히 바라봤다. 억센 그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의 브레슬릿. 그것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그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것이었다. 용사는 동료이면서 연인이었던 그녀가 없는 이 세계에 미련이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공간이 생긴 구멍의 흡인력, 그리고 달라붙은 용사에 의해 결국 손끝으로 버티는 마왕의 힘도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용사의 등에 세 개의 꺼림칙한 기색이 쫓아왔다.
“가지 못한다, 못간다. 용사”
“우리 삼마장, 죽어서도 마왕님을 위해서”
“너는 이 세계에 우리들과 헛되이 죽는거다”
“오오, 마장들인가”
그것은 단칼에 베어진 세 마리의 죽은 마물들, 그 원념이었다. 용사를 지옥의 길에 데려가려고 비열하게 등 뒤에서 덤벼든 것이다.
그러나 용사는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흡하고 힘을 집중할 뿐.
단지 그것만으로 원념들은 매달리는 일도 못하고 튕겨 날아갔다.
용사의 신체 안에 넘치는 빛의 힘, 그것이 악한 자를 막아준 것이다.
그렇게 튕겨진 원념들은 공간의 구멍에서 발생하는 흡인력에 말려들었다. 3체가 싱겁게 차원의 경계에 사라졌다.
“에잇, 쓸모없는 녀석들. 이렇게 된 바에는 너희들, 먼저 새로운 세계에서 사전 작업을 해놓고 있어라”
“삼마장, 너희들이 좋을 대로 놔두지 않겠다. 너희들이 다시 마왕 밑으로 모인다고해도, 내가 반드시 너희들을 쓰러트리겠다. 꼭― 반드시 그러겠다.”
그것이 서로 간에 최후의 말이었다.
돌바닥을 붙든 마왕의 손톱이 마침내 바닥에서 떨어졌다. 마왕 그리고 달라붙은 용사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용사와 마왕은 자신의 신체보다 훨씬 작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나중에 왕좌의 방으로 뛰어 들어온 인간의 병사들이 발견한 것은 세 마리 마물의 시체와 격렬한 싸움의 흔적 그리고 왕좌 앞에 박혀있는 검뿐이었다.
너희들의 주인은 어디로 간 것이냐?
물어봐도 검도 왕좌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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